2.1.3 군사력 조조는 작은 무력집단에서 출발해서 계속 성장해나가 결국 중원을 통일해가는 대장정을 밟아나갔다. 동탁의 제안을 거절했기에 주요 지방관으로 임명되지 못했다. 가문의 배경이나 친족의 도움을 받았지만 3대가 재상을 지내며 지방에서 권력을 쌓았던 원소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다. 유비처럼 밑바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배경은 아니었다. 이런 조조가 다른 경쟁자를 누르고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그가 전쟁에 나가서 거의 대부분 이겼던 상승장군이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동탁,여포,공손찬 등은 대부분 이민족을 포섭하여 자기 군대로 거느릴 수 있었고 이 군대 자체가 그들의 경쟁력이었다. 반면 조조의 강점으로는 조조 자신이 가진 지략을 꼽을 수 있다. 세상의 흐름을 크게 보고 거기에 맞추어 자신의 위치를 알아 보아 해야 할일을 순서대로 잘 배치하는 것이 전략이다. 그렇게 수립된 전략을 바탕으로 실제 하나 하나의 목표를 이루는 것은 전술이다. 조조가 처음 가진 전략은 거점을 중심으로 주변의 적을 물리쳐 영역을 하나씩 넓혀가는 것이다. 가장 껄끄러운 적인 여포, 원술 등을 제거하기 위해 우선 친분이 있고 거점이 멀리 떨어진 원소와는 동맹관계를 가져갔다. 중국의 고대 전략으로 유명한 원교근공 전략이다. 이렇게 일정한 영역을 확보한 다음에는 중앙으로 나서게 된다. 중국의 수도는 거의 대부분 낙양이나 장안이었다. 이곳은 천하 어디로든 쉽게 나갈 수 있고 각 지역의 물자를 수송 받을 수 있는 상업과 교통의 요지였다. 그리고 이 지역 자체가 옛날부터 경지가 넓고 농경이 발달하여 인구가 많은 중심부였다. 사회가 안정되고 정부의 힘이 강할 때는 사방을 제압할 수 있지만 힘이 부족하면 거꾸로 사방에서 중심으로 몰려들어온다. 그래서 중앙을 차지하려면 명분과 실력 두 가지를 잘 겸비해야 한다. 조조가 헌제를 맞아들임으로 명분을 확보했고 원소를 제외하고는 일대일로 조조를 꺽을 만한 실력을 가진자가 없을 정도로 실력을 키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시점이다. 내가 나중에 힘을 더 키웠다고 해도 남이 황제를 차지하고 있다면 싸워야 빼앗을 수 있게 된다. 어쨌든 조조로서는 이 때가 자신이 나서기에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었던 바탕은 조조의 대국적 안목이었다. 처음 동탁에 맞서 군대를 일으켰을 때 다른 장수들과 다르게 조조는 천하를 전체로 한 덩어리를 이룬 시스템으로 보았고 지정학적인 분석을 통해 싸움을 장기적으로 유리하게 끌어가려고 했다. 전쟁이란 칼과 창으로 치고 받는 싸움만이 아니라 자원의 흐름과 민심을 고려해가는 커다란 사회적 경쟁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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