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통치
조조의 능력 중 하나가 전쟁이고 다른 하나가 정치라는 것을 앞에서 지적했다. 정치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관용의 미덕이다. 물론 이 미덕이 애초부터 그에게서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위에서 지적했다. 하지만 한번 깨달은 그는 시종 서주의 교훈을 잊지 않는다.
우선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조조에게서 가장 높게 평가할 만한 일 중의 하나는 그가 장수라는 지방군벌을 용서했다는 점이다. 장수는 처음에 자신에게 항복했지만 바로 번복하는 바람에 조조 자신 또한 거의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었고 결국 조조의 아들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복수를 위해 여러차례 정벌을 하려했으나 실패했었는데 원소와의 대전을 눈앞에 두고 이 작자가 자신의 군대를 들어 조조에게 항복해왔다. 보통사람의 기분 같아서는 자식의 복수를 위해 칼을 뽑을 수도 있겠지만 조조는 깨끗하게 용서하고 그를 매우 공정하게 대우했다.
여기서 잠시 이전의 고사를 하나 살펴보자. 유방이 항우를 격파하고 첫 논공행상을 할때 주저주저 하자 주변의 공신들이 모두 동요하여 반란이 일어날 뻔 하였다. 이때 조언을 받아서 자신이 가장 미워했지만 공은 아주 없지 않은 사람에게 첫번째 포상을 내렸던 일이 있다. 포상받은 사람이 고마워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주변사람들이 보는 눈이다. 이런 시범조치를 통해 다른 여러 사람들이 아 그렇다면 나는 그보다는 더 나은 대우를 받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다.
유방의 고사와 조조의 장수에 대한 조치는 이와같이 서로 맥이 통하는 면이 있다. 후일 조조에게 원소의 아들이나 형주, 한중 등이 자발적으로 귀순하게 되는 것은 일관된 관용정책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예는 계속 이어진다. 조조가 오랜싸움 끝에 원소를 격파하고 보자 원소에게는 조조 쪽 진영의 사람들이 보낸 편지들이 잔뜩 있었다. 이 내용의 상당수는 조조쪽의 정보를 원소에게 보내려는 시도들이었다. 이를 열어보자는 측근들의 주장에 대해서 조조는 웃으면서 모두 태워버렸다. 한마디로 과거는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반면에 이전까지는 싸움에 진 장수를 처벌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지고 돌아오면 상응하는 벌을 주겠다고 공표하였다. 과거에 약할때는 무조건 자기 편에 남아있기만 해도 고마왔다 하지만 이제는 명실상부한 중원의 패자가 되었기 때문에 상벌을 엄히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두가지 조치는 과거를 덮어둔 대신 철저히 미래지향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여포에게 쫓겨 귀의한 유비를 죽이라는 정욱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받아들여서 여러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거꾸로 한 사람을 죽여서 여러 사람이 떠나가는 것도 자명한 이치다. 이 당시 조조도 유비의 능력을 인정했고 쉽게 자기 밑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순간 순간의 이해보다는 자신이 수립한 큰 원칙에 맞추어 행동해나갈 정도의 책임과 여유가 생긴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