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를 물리치고 간신히 본거지를 회복한 조조에게 하나의 기회가 왔다. 바로 한의 천자인 헌제가 이각과 곽사라는 무력집단 사이에서 벗어나 유랑하다가 조조에게 의지하게 것이다. 그냥 하나의 군벌에 불과하던 조조가 외면적으로나마 황제의 명을 받드는 형식을 갖추게 것은 이때였다.

패라는 외곽 지역의 소군벌에서 황제를 모시는 중앙정부의 승상까지 올라간 조조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하나의 벽을 넘어야 했다. 이전의 동탁이 그랬듯이 신참이 권력을 잡으면 기존 중앙귀족의 반발이 심하다. 덧붙여 조조는 정복전쟁을 해나가면서 새로 점령한 곳의 지방호족들의 도전도 받고 있었다. 이를 요령껏 무마해가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은 물리적 정복이 아니라 정치의 역할이다.

조조의 시대는 한편으로는 황건적의 난을 통해 구질서의 파괴가 진행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전쟁이야 위에서 싸우면 되었지만 질서의 수립에는 정치가 필요했고 이는 관용이라는 미덕이 없다면 결코 이루어낼 없는 일이었다.

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 나라가 가진 기존 권위로부터 최대한 물려받아야 했다. 아직 조조가 차지한 지역은 극히 일부였고 한나라 조정의 말을 듣고 있지는 않지만 이를 대체하겠다고 나서는 위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조도 자신을 낮추어 죽을 때까지 한의 신하라는 틀에 남는 모습을 보였다. 지위도 시종일관 승상이라는 자리를 고집했고 주변의 적이 거의 없어졌을 때에서야 왕으로 한단계 올라섰다.

 

한의 마지막 천자를 헌제라는 시호로 부르는데 시호는 보통 다음 대의 황제가 죽은 사람에게 덧붙이는 이름이다. 한의 마지막 황제에게 이러한 시호를 붙이고 대우한 것은 위왕조였다. 한의 마지막 황제는 조조는 물론 아들 조비보다도 오래살았고 죽은 다음에 위왕조에게서 시호를 받게 된다. 시대 상황을 고려해보면 헌제에 대한 대우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이후 왕조의 황제들 중에는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웠던 경우와 비교해본다면 괜찮은 마무리를 것이다.

난세에 황제가 되어 꺼져가는 왕조를 살려보려고 여러 모로 노력한 헌제의 모습은 자체로는 애처롭게 보인다. 잠깐 시선을 현대로 돌리면 영화 <마지막 황제> 나오는 부의의 모습을 보는 것과 비교할 있을까? 헌제에 대한 이야기는 기회 있을 하기로 하고 다시 조조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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