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손견과 손책

 

손권의 집안은 강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병법으로 유명한 손자의 후손이라 자칭하지만 마찬가지로 근거는 불확실하다. 실제 가문은 명문가라고는 말할 없었고 좋게 말하면 독특한 무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주어야 한다. 나쁘게 말하자면 거의 깡패 수준이었다. 손권의 아버지 손견은 일찍 한실의 고관인 정원을 보좌해서 서방을 순시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장군 동탁을 만났다. 동탁은 자신의 위명을 믿고 중앙에서 나온 감찰관인 정원에 대한 태도가 매우 불손하였는데 손견은 죄를 물어 동탁을 베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일 정원은 동탁의 난에서 가장 먼저 희생이 보면서 손견의 안목이 탁월함을 알아 있다.

손견은 황건적의 난때 무리를 모아 한차례 활약을 했고 전쟁이 끝나자 고향에 내려와있었다.동탁의 난이 일어나자 다시 무리를 만들어 반동탁 연합군 진영으로 달려갔다. 길을 가는 동안에 형주의 자사가 자신에 대한 대우를 소홀히 하자 잡아다가 죽여러리는 극단적인 행동도 보였다. 이러한 지방 군벌들의 오만함과 무법성은 이때부터 한나라의 법치가 무너지면서 천하대란이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반동탁 연합군의 선봉에 서서 용감하게 싸웠고 활약이 컸지만 다른 연합군들에게 시기를 받으며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서운한 마음으로 물러서게 된다. 당시 남쪽 오나라는 한나라 말기에 개발이 진행되었기에 당대의 중국에서는 한참 시골로 취급되었다. 지금도 북경과 상해가 말이 서로 틀리고 서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삼국지의 시대는 더욱 그와 같은 지역간 차별이 강했다.

연의에는 손견이 옥새를 얻고 이를 감추어서 빠져나왔다고 묘사되지만 이는 가장 먼저 황제자리에 오른 원술하고의 관계를 만들기 위한 창작이라고 보여진다. 하지만 실제 돌아오는 길에 형주를 지나치는 과정에서 유표가 인솔하는 형주의 군대가 기습 공격을 해와 부하를 많이 잃는 타격을 받았다. 앞서 형주자사를 죽였던 행동에 대한 보복이라고 추정된다. 어쨌든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세력을 모아 싸우러갔지만 유표의 기습에 이번에는 손견 자신이 죽고 만다. 너무 짧은 생이었지만 대단한 무인 기질과 오만함을 있었다.

 

기질은 그의 맏아들 손책에게 고스란히 물려진다. 아버지를 잃은 손책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아버지와 가까웠던 원술에게 의탁하러 갔다. 싸움 마다 앞장서서 용맹스럽게 싸운 활약이 컸지만 원술이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아서 불만이었다.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약간의 군대를 빌려 강동으로 가서 차곡차곡 나라의 기틀을 만들었다.

여기서 손책이 보인 리더쉽의 특색이 나온다. 숫자도 적고 기반도 없는 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헌신과 모범이 필요하다. 그래서 손책에 대한 기록에는 싸움터의 가장 앞에서 두려움이 없이 싸웠다는 것이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태사자와 직접 무기를 들고 싸웠다는 것인데 옛날 초나라의 영웅 항우의 기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도량 또한 작지 않아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던 태사자를 용서하고 부하로 받아들였다. 용기와 포용력 두가지의 기질은 손책이 능히 남들의 위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후일 강동의 젊은이들을 이끌고 중원으로 나아가 조조와 맞붙어 천하를 놓고 다투는 한판승부를 하겠다는 기개는 삼국지 어느 영웅에게서도 쉽게 찾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유분방한 행동과 정복전쟁의 결과 만들어진 많은 적들은 위험요소로 남아 있었다. 그도 혼자 사냥을 나가다가 자신이 죽인 적장의 부하들에게 보복을 당한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 죽고 만다. 손견과 손책 사람을 종합적으로 매력은 용기에 기초한 모범이었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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