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중앙정부의 붕괴 및 지방군벌의 발호
당장 눈앞에 닥친 황건적의 난에 대처하기 위해 잠시 중지된 중앙의 권력투쟁은 난이 어느 정도 진압되자 재발되었다. 외척의 대표인 황후의 오라버니 대장군 하진은 지극히 무능하고 유유부단한 인간이었다. 환관과 사이가 나빴지만 직접 제거할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멀리 변방의 정예군을 이끌고 있는 동탁을 수도로 불러들였다. 이정도 했으면 환관들이 숙이고 들어오겠지 했지만 군대의 이동을 전해 듣고 이제 막바지에 몰렸다고 생각한 환관세력이 먼저 하진을 암살해버렸다. 여기에 원소라는 청년장교가 앞장서서 환관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피의 보복을 하게 되자 궁전의 안팎이 모두 피바다로 변했다. 나이 어린 황제와 황후는 난리속에 도망다니기 바빴고 조정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이 시기에 동탁은 이민족이 많이 포함되어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수도에 막 도달한 상태였다. 그는 권력의 공백을 보고 자연스럽게 군대의 물리력을 기반으로 자기식의 군정체제를 수립해나갔다.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첫번째로 시도하는 것이 우두머리를 직접 자기손으로 세우는 것이다. 동탁도 황제를 바꾸어 새로 옹립하니 이가 곧 마지막 황제 헌제다. 이어서 기존 조정의 권위를 이용해서 새롭게 중앙과 지방의 질서를 재편하려고 시도했지만 전반적으로 민심이 따르지는 않았다. 먼저 청년장교들의 대표주자인 원소와 조조가 각기 자신의 본거지로 떠나버렸다. 표면적으로 이들은 아직 조정의 중간급 장교이기 때문에 당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변에 흐르는 반감을 나타내주는 지표 정도로는 볼 수 있다. 나아가 동탁은 중앙의 기존 고관들의 추천을 받아 새로 지방수령들을 임명했는데 이렇게 임명된 수령들이 일제히 힘을 모아 동탁에 대해 토벌군을 일으키게 되자 동탁은 큰 위기를 맞게된다.
반 동탁군은 크게 나누어 막 동탁에게 임명장을 받은 지방관들이 한 부류이고 조조와 원소, 손견과 같이 직급은 낮지만 황건적의 난을 통해 한차례 자기 세력을 형성하고 전투에 참여했던 청년장교들이 또 한 부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이 모여서 동탁을 꺾어보자는 시도는 좋았지만 색깔이 다른 세력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다들 자기 욕심을 가지게되니 힘이 한데 모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방의 이민족을 끌어안고 있는 동탁군이 너무 강했다. 조조는 이 때 지정학적인 인식을 통해 수도로 들어가는 물류를 막아 장기전을 승리로 가져가기 위한 대국적인 전략을 제시했지만 대다수가 그를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동탁 토벌은 실패하고 말았는데 결과는 다들 물러서서 각기 독자적으로 지방권력을 수립하는 무정부 상태였다. 다음부터는 나름대로 자신의 힘을 키워서 주변을 하나씩 병합해나가는 약육강식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명분이야 어찌하던 간에 이 순간부터 중앙정부의 인사권이 지방에 작용되지 않게 되어 중앙은 중앙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서로 갈라서게 되는 대난리가 시작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왕조는 이때 무너진 것이다.
대결의 과정에서 각 지방권력들은 자신의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서 민초들에게는 엄청난 수탈을 가했다. 자기 지역의 군벌이 전쟁에 이기면 그나마 낫지만 졌다면 민초들은 승자에 의해 다시 한차례 더 큰 약탈을 겪게 된다. 소농들은 몰락해 주변의 권세있는 호족에게 자진해서 예속되거나 자신의 고향을 떠나 여러곳으로 유랑하게 되었다. 정상적인 질서와 생산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식량의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