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기행 학고재 산문선 5
시바 료타로 / 학고재 / 1998년 2월
평점 :
품절


일본의 대문호, 시바 료타로가 1971년에 한국의 부산,경주,부여를 방문하고 쓴 기행이다.


시바는 한국(남한)과는 썩 가깝지 않았다.

이는 그가 일본사회에 다수를 차지한 조총련 계열과 더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술회한다.

한국과의 인연은 재일사학자인 김달수씨를 높이 평가하면서 이어져갔다. 

나중에 진순신과 시바,김달수 이렇게 세 명이 아시아 문명과 역사를 이야기한 대담집을 내었는데 새로운 시각을 주는 재밌는 독서였다.


한 나라를 떠나 넓게 보면 세계 속에서 아시아라는 영역이 나타나고

이들 사이의 오랜 교류가 드러난다. 때론 주고 때론 빼앗으면서 친했다가 싸우기도 하면서 세월을 같이 쌓아온 면면이 재미있다.


그런 관점에서 시바는 일본과 한국이 오랜 옛날부터 인연이 많았다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우선 오사카 근방, 교토에서 약간 올라가면 오미라는 호수 부근 지방이 나타난다. 이 지역은 예전 백제가 망하고 유민들이 개척한 곳이라고 한다. 처음 이 말을 듣고는 긴가민가 했는데 여기 저기를 다녀보면 '백제'라는 이름을 가진 다양한 공간들이 나타난다.

오사카가 활동무대였던 시바는 이곳을 둘러 보면서도 다시 뿌리를 찾아 나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한국으로 오게되었다.
오늘 보는 편린 하나에서도 수백,수천년 역사를 읽어 가는 예리한 관찰력을 보인다.

일본의 조상이 백제다, 임나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도 많았다 등


백제계는 오사카 근방, 신라계는 에도에서 개척을 했다고 한다.
동로마제국이 망해자 학자와 기술자가 이탈리아로 넘어가면서 르네상스가 꽃피웠다.
마찬가지로 한반도의 백제,신라인들은 일본에 문화 충격과 도약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뿌리를 찾는 작업은 시바에게 꽤나 재미와 의의를 주었던 것 같다.

그의 관찰은 해박함과 연결되어 재밌는 사실들을 전해준다.

동래가 왜관이었고, 임진왜란에서 일본군 성이 있었다는 것

가등청정의 왜군은 처음에 조선을 그리 괴롭히지 않았다 등

쓰시마는 오랫동안 조선의 쌀 7천석이 없었다면 생존이 안되었고 그래서 왜관을 통해

물건을 바치고 쌀을 얻어가는 교역에 사활을 걸었다 등.


임진란 흔적 찾아 왔나 하는 시점에서 시바가 놀라운 인물을 거론한다.

항복한 왜구, 사야가 김충선의 고향을 찾아간 것이다.

이 때만하더라도 한국은 촌이었고 대도시를 제외하고 깊은 산골 가보기는 쉽지 않았다.

모하당이라는 사하가의 제2의 고향과 그의 뿌리를 찾아가는 노력은 무척 흥미로웠다.

지금이야 이런 저런 경로로 이 이야기가 역사화되었지만 71년이라는 시점에서의 등장은 꽤 일본사회에서 흥미로웠을 것이다.


백제에서는 정림사지 탑을 보다가 소정방이 벅벅 남긴 자화자찬의 글귀를 보게 된다. 국가 하나를 소멸시킨 것을 자랑으로 삼는 당나라 군대의 장수의 모습이 읽히며 부여의 쓸쓸함과 대비되면서 우울해진다. 

마침 일본에서 왕자와 함께 왔다가 전투가 벌어졌는데 수는 많아도 작은 배라 순식간에 큰 바다 건너온 당의 수군에 격멸된다.


수천년 역사의 감회에 젖었지만 여행은 여행이다.

소소한 이야기도 나중에 영향을 크게 주었다.


조선왕조실록으로 유명한 신봉승 작가는 이 책에 시바가 한국에서는 용 문양이 없다고 서술한 점을 물고 늘어졌다. 한참 지나서 한국을 방문한 시바에게 이 대목을 집요하게 질문하였더니 제대로 답이 없었다는 대목을 자신의 책에 자랑스럽게 서술했다.


제일 웃겼던 해프닝은 대구에서 여관에 묵으면서 나온 안마였다.

무려 10배의 요금 바가지를 씌우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시바가 분기 탱천한다.

그럼에도 역시 작가는 작가다. 

한국역사에서 나오는 관료들의 부패와 한탕주의 등이 어디에서 왔을까?

이슬람 상인들이 원나라를 유지시키는데 막대한 기여를 했는데 이들의 착취기술이 전파 된 것인가? 일본에는 관료라고 해도 부패가 상대적으로 적다 등.

생각이 휙 이어져 아시아 문명론으로 발전한다.

참 대단한 상상인데, 잘 음미해볼 가치가 크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기업,국가 조직 등으로 확대시켜 볼 수 있는 포인트다.


신봉승 작가도 용 이야기 고집하기 보다 아시아적 식견이 어디서 나왔는지 등을 '논'하면서 노하우를 끌어내는 대화술을 발휘했으면 어땠을까?


오래된 책이지만 대가의 안목이 골고루 녹아 있어 흥미로웠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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