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스타벅스
마이클 게이츠 길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경제민주화 바람이 한국을 강타한다. 
이제 기업을 볼 때 성과 만큼이나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 관심 두게 된다.
최근에 스타벅스에 대한 몇 가지 새로운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온워드>에서는 오너가 컴백하면서 회사의 중심을 잡아 추락해가는 기업을 재부상 시킨 것,
<습관의 힘>에서는 마약중독자 부모를 둔 청년이 사회부적응자로 고전하다가 재활하고 어엿한 10만불대 연봉자가 되는 이야기. 그의 직업은 스타벅스의 매니저이고 그의 변신의 핵심에는 스타벅스의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바로 이 책 <땡큐 스타벅스>를 통해 한 노인이 자신의 삶을 재활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기업이 사회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기여는 무엇일까?
다른 무엇보다 아마 일자리일 것 이다.
기업의 투입에는 사람의 노동이 있다.
노동이란 누군가의 삶이다. 귀하게 만들어져 어렵게 키워진 삶이다.
그런 삶이지만 기업이라는 조직은 이를 잘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손발을 샀는데 왜 머리까지 따라오지?"
이 말을 한 사람은 헨리 포드, 자동차왕이다. 의미는 아마 부연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주실 듯 하다.

얼마전 나도 약간 안타까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영화관에서 간단한 서비스 개선 제안을 카운터의 아가씨들에게 했다.
하지만 그들의 답은 그런 말씀은 윗분들에게 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포드의 말이 상기 되었다. 손발만 사려는 조직, 이렇게 보낸 그들의 젊은 시간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스타벅스 이야기는 분명 이런 기업들과 대조가 되었다.
나이 차별이 없고, 사람을 존중한다.
이 부분은 분명 한국과는 다른 환경인데 미국은 의료보험이 너무나 비싸서
상당수의 파트 타임 일들은 절대로 회사에서 지원해주지 않는다.
덕분에 이야기에도 나오지만 안경,치과 서비스를 아예 받지 않고 참아야 하는 
소외된 사람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스타벅스에서 파트타이머에게도 의료보험을 지원해주는 건 상당한 
서비스다. 적어도 밥을 같이 먹는 공동체라는 의미가 확실히 만들어진다.

선배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미처 겪지 못했지만 중요한 교훈들을 듣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줄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 마이크 또한 점점 답변이 돌아오지 않는 휴대폰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예일대학 출신에 좋은 가족 배경, 광고회사의 고위급 임원이던 그도 노년의 몇번 실수로
아무것도 들고 있지 못한 노친네가 되어버렸다.
그런 그에게 손길을 내밀어준 스타벅스는 정말정말 구세주였다.

일을 하면서 하나씩 자신의 잠재력을 다시 움직여보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시작은 화장실 청소였지만 나중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명함으로 상징되는 사회적지위가 사라져도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들이 남는다.
지승룡이라고 민들레 영토를 만드신 분의 전직은 목사였다.
이혼으로 모든 사회적 관계가 끊어진 그에게 독서는 재활의 도구였다.
그렇게 만든 커피숍에서 그는 꾸준히 손님들에게 상담을 해주었다. 
목사의 본분은 아픔을 듣고 치유하는 일이니 그는 여전히 잘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주인공 마이크의 스타벅스 분투기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나이 젊은 매니저의 파워포인트 준비에도 힐끗 참견하고
못 미더워하는 그 표정에 차마 내가 왕년에 PT 한가닥 했거든 하고 잘난체 하지 않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이야기 솜씨는 아마 단골을 모아 놓고 하는 커피 강좌에서 더 잘 발휘되었을 것이다.
한동안 그에게 말은 영광의 길을 개척하는 도구였다.
잘 나가는 광고 카피라이터로서..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에게 더 이상 생존의 도구가 되지 못했다.
고객의 차가운 외면은 그를 점점 절망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작게 만들어진 공간에서 그의 말은 모두를 즐겁게 한다.
기대를 낮추면 된다, 낮게 시작하면 된다라는 훌륭한 이치를 잘 드러내준다.
전에 오마에 겐이치의 <하프타임>이라는 책에서 은퇴자들에게 지방으로 내려가라
기업의 격을 낮추려면 두 단계를 낮춰라 등 유익한 조언이 있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성공학 책이 아니라, 지겨워지는 힐링 책이 아니라
잔잔하지만 솔직한 고백,
나보다 분명 나은 조건을 가졌지만 더 처참하게 망가졌고
그럼에도 타박타박 자신을 추스려 다시 산을 오르는 노친네의 모습에
너무나 진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아픔이 점점 치유됨을 느낀다. 마치 훌륭한 비극 작품 하나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환경을 만들어준 스타벅스라는 기업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기업이 이 사회 모두의 삶의 행복에 좀 더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며
경제민주화 넘 어렵지 않아용.. 바로 이거에요 하고 싶구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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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6-17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나이 50만 넘어도 '잡'을 유지하기가 힘든 형편인데, 기존 직장에서 '아웃'되고 난 이후 '후반전'을 새롭게 시작할 기회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현실을 절감합니다.

지난 주말에 (24년 전에 한 부서에서 근무했던) 옛 직장 선배분들과 북한산을 함께 다녀왔는데, 주된 관심이 '누구 누구는 아직도 밥벌이는 하고 있나'더군요.. 벌써 오래 전부터 언급되던 얘기지만, '기업'이 중심이 되어 너무 일찍 '아웃'된 사람들의 능력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늘 자주 하게 됩니다.

'구인과 구직 서비스'를 하는 회사들로 봐선 엄청난 '잠재고객들'이 매년 쏟아져 나오는 셈인데, 정작 기업에 꼭 필요한 '나이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찾기가 어려운 걸까요?

사마천 2013-06-17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계란 믿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사회는 특히 저신뢰 사회니 말입니다. 그래서 구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연결이 되는 사람은 상당한 인덕이 있다고 보아야겠죠. 반면 대부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수백명의 전화번호부가 퇴직과 함께 대부분 무용화되는 게 현실이죠. 그래서 더 서운하고 더 외면하다가 자기 안에 갖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사회적관계가 기능적인 미국 사회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기능으로 평가하고 나이를 덜 따지니까 이렇게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저도 주시하지만 좀 더 중지를 모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