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팔부 세트 - 전10권
김용 지음, 박영창 옮김 / 중원문화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오래가는 물건에는 남다른게 있다.

김용의 천룡팔부는 내가 대학교 시절 처음 본 책인데 이제는 드라마로 영화로 무협지로 만들어져 사방에 퍼져있다.

과연 무엇이 천룡팔부에는 들어 있을까?

인간이 만들어 오래된 것으로는 종교를 들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은 카톨릭이다.

카톨릭 보다 더 오래 유지된 생각 중 하나가 "불교"다.

천룡팔부는 불교를 잘 녹여낸 소설이다.


시대는 송과 거란,대리,서하 등 여러 나라가 대립할 때다.

이 세계에 단예라고 무공 하나 모르는 집 나간 귀공자 하나가 돌아다니며 사건들을 만들어 낸다. 


웃다가 울다가 겁도 나고 놀라게도 만드는 기상 천외한 사건들이 쉬지 않고 지나간다.

드라마로 보니 더 재미있었다.


당대의 무림의 고수들이 여기 저기 이름을 날리는데 남으로는 모용, 북으로는 교봉이라고 한다.

이들은 이미 오랜 기간의 수련과 영재교육으로 이름을 날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면 단예는 우연하게 내력과 기술을 얻게 된다.


나중에 보면 허죽이라는 못난이 승려도 기이한 만남을 통해 무공을 이룬다.

어찌 보면 불공평한 듯 보이는 세상이다.

무수히 노력 하고 연성하는 사람들은 지존의 자리를 쟁취하지 못하고

모자란 듯한 인물들이 더 앞서가는 불공평한 세상이다.


여기서부터 불교의 가르침 하나가 나타나는 셈이다.

인간은 욕망하지만 그것을 쉽게 이루기는 어렵고 인연을 만나야 한다는 이치다.

그런데 이 인연은 우연하게 주어지는 것인가? 
마지막 권까지 다 읽어 보면 그렇지도 않다.

단예가 오락가락 하면서 만나는 승려 구마지는 욕망의 화신이다.
무공비급을 얻으려 남의 목숨을 빼앗겠다는 전혀 승려 답지 않은 행동을 보인다.
또 다른 공자 모용은 황제가 되겠다는 마음에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이미 명성을 날리던 교봉은 우연한 시비에 휘말려 커다란 갈등속으로 들어간다.
남의 죄를 뒤집어 쓰고 가까운 사람에게 추방되며 정체성을 모르고 세상을 떠돌게 된다.
억울해 하지만 이것 또한 다 이유가 있었다.
억울하게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저지른 일들이 죄로 포개져 버린 것이다.
누굴 탓하랴. 
무인들은 은원을 이야기하지만 원수를 꼭 갚는게 진정 올바른 일인가를 묻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흔히 빠지는 내편 남의 편의 갈등과 옳은 것에 대한 회의를 짙게 만들어낸다.

또 다른 주인공 허죽을 이야기해보자.
못난이가 고수가 되 가는 과정은 우연의 연속이었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바둑시합이었다.
난이도 높은 문제에 우연히 맞닥트린 그가 스스로를 죽이는 수를 놓자
바둑이 풀려버린다.
나도 바둑을 좋아하지만 먼저 내 것을 죽이고 전체를 살리는 수는 정말 고수의 경지에서나 나온다.
왜냐하면 살고자 하는 집착,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욕망이 한 차원 높은 수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우연하지만 먼저 죽이고 시작한 허죽의 수에 의해 주변 무수한 고수들의 실력이 무색하게 되어버렸다.
살신성인. 이겄도 꽤 묘한 불가적 가르침이다. 

자 이제 다시 교봉으로 가보자.
거란의 남원대왕으로 오랫만에 평안히 부귀를 누리는 듯한 교봉을 고민에 빠트리는 건 거란의 황제의 욕망이었다.
송을 정복하는 군사를 일으키려는 황제에 교봉은 동의하지 않아 위기에 빠진다.
자라난 곳 송나라나 지금의 거란이나 사람의 목숨은 귀하고 특히 부처님 앞에서.
그러니 누구를 위해 누구를 더 죽이는 것이 과연 세상을 위해 큰 일인가 묻게 된다.
그렇게 그는 두 세력이 부딪히는 충돌의 장소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수많은 이의 목숨을
건진다.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거란군을 뚫고 들어가 황제를 위협하면서
약속을 받아낸다.
황제에게서 3번 목숨을 빚지게 만든 그 이지만 이번의 평화를 영구히 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여기서도 불교의 일화가 연결된다.
부처가 몸을 주어 주린 호랑이를 구해주며 깨우침을 얻게 했다는 오랜 이야기의 교훈과 이어진다.
허죽에서 보여진 살인성인의 모습이 교봉에게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무상에 대한 깨달음이 이렇게 지나가는데 스스로 이루지 못한
교봉과 모용복의 아버지 모두 커다란 힘에 의해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이렇게 여러 갈등이 모두 불교적으로 해결되는 데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건
단씨 집안의 삶과 죽음이었다.
무척 황당한 듯 보이는 단예의 출생 비밀도 불교와 연결된다.
관세음 보살이 몸을 던져 중생을 구한다는 이야기도 오래 오래된 불교의 이야기다.

그리고 마침내 단예는 무예를 연성해내고 최고의 고수가 된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이제 불교의 가르침의 최고 단계인 원수도 포용하는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아버지,어머니 죽음의 원수인 모용복이 미쳐 있는 걸 보면서 그의 삶을 거두어 준다.
정말 불가적인 내용이다. 지금 세상에서도 그게 어디 쉽겠나?
그럼 여기서 왜 단예에게 최상승 무공과 내력이 전수되어질 수 있었는지,
그가 왜 이 소설의 주인공인지에 대한 의문이 풀어져간다.
단예와 말로 부처에 닮을 수 있는 불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삶에 얽힌 인연들이
그만큼 기이하였기 때문이다.

불교의 깊은 가르침을 담아 오래 오래 남는 이 작품의 매력은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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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3-08-12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밀도있는 천룡팔부의 리뷰를 보게 될 줄이야!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사마천 2013-08-12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 감사, 이 책 정말 좋아요.. 너무 놀랐습니다.. 젊어서 보고 최근에 다시 보았는데.. 감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