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SF 작가들은 대부분 비관론자라고 합니다.

영화도 미래의 현란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 안에 놀라운 비밀을 숨겨 둡니다.

그 비밀은 대체로 관객의 상상을 넘는 뒤집기 한 판이죠.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은 매우 기계화된 미래세계입니다.

남과 녀가 나옵니다.

녀는 BOSS로 본부와의 콘트롤, 남은 톰 크루즈가 분장한 잭인데 테크니션이라고 지상 관제.

외곽은 드론들이 역할을 합니다.

휙 날라다니며 무기를 쏘아대는 막강한 기계죠.


드론이 쏘아대는 대상은 보통 외계인 적들입니다.

그렇게 임무를 수행하던 주인공 잭은 어느날 미묘한 문제와 부딪힙니다.

외계에서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나온 인간들을 드론이 공격하는 것입니다.

로봇헌장에도 나오죠. 인간을 공격해서는 안된다고.. 

여기서 의문을 가지고 드론을 막아서서 한 사람을 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비틀어져 전개됩니다.


이 대목에서 나오는 기억의 망각은 토탈리콜에서 본듯한.

꿈인가 생시인가는 장자에서 본 듯한.


혼란 속의 관객에게 힌트가 하나 주어집니다.


오딧세이라는 이름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을 들추어냅니다.

호머의 오딧세이였던가?

고향으로 가기 위해 지중해 곳곳을 10여년 헤메고 다녀야 했던 바로 그 남자가

머리에 지나가겠죠.

그렇지만 현대 과학의 성취로 우리는 또 다른 오딧세이를 알고 있습니다

아서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딧세이>라는 걸작이죠.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는 바로 HAL입니다.

여기 까지 이야기하면 이제 결말과 맞닿습니다.


영화의 또 다른 코드는 희생과 재생입니다.

이건 매우 기독교적인 관념이죠.

죄,대속,재생.

교회를 다니시거나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신 분들은 쉽게 이해하실 수 있는 관념들이죠..


이 모두를 꼴라쥬해서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오블리비언입니다.


끝나고 나가는데 누군가 찬반이 엇갈린다고 하더군요.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단조로운 전개 이외에 우리에게 생각할 주제를 준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드론이 인간을 공격하는 세상이 과연 올바르냐고 영화에서 물으면 당연 아니라고 하겠죠.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상황을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무수히 보고 있습니다.

미국이 개발한 전투용 로봇들은 이 지역들을 누비며 새로운 전쟁을 선보이죠.

미국 본토에서 안전한 공군기지의 조정실에서 움직이면 비행이 이루어지고 무기가 날라가고 적은 죽어 나갑니다.

영화는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종교가 다르다 이념이 다른 인간을 우리는 혹여 괴물로 생각하는 게 아닌지, 

이 세계가 둘로 나뉘어 한쪽에는 기계의 헤택을 입고 이를 방패삼아 편안함을 누리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기계들에게 공격당하는 불운한 피정복민의 설움이 가득한지..

그런 고민을 해보면서 극장을 나왔습니다.

이 꿈은 정말 옳은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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