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를 따랐던 군인들에게는 그는 왕이기 이전에 전우였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킬레스는 왕이 아니었지만 가장 어려운 적과 맞싸우는 가장 어려운 임무를 자처했다. 그 점이 동료들에게 사랑받는 영웅으로 대접받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알렉산더가 부하들에게 어려운 임무를 지웠지만 통솔력을 잃지 않은 이유도 스스로의 몸에 난 상처를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도왕과의 전쟁에서 난생 처음 보는 코끼리에 밀리고 압박받았지만 그래도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것도 알렉산더의 능력과 용기였다. 전장에서 재빨리 승부의 포인트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그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사막의 여우 롬멜이 비행기를 직접 몰고 적진 위를 날라다니며 정찰하던 것도 마찬가지고 경영자들이 현장을 뛰어다니며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말을 걸고 답변을 듣는 것도 같은 이치다.
알렉산더는 뛰어난 정복자였지만 제국을 건설하는데 실패했다. 권력은 냉엄하여 자신의 이복동생과 또 하나의 어머니를 죽이는 과정을 방조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또한 아버지 보다 못한 결과를 만든다. 자식이 장성하기 전에 너무 일찍 죽어 버렸기 때문에 어머니, 아내 그리고 유일한 혈육까지 모두 살해되는 비참한 결과를 남겼다. 캐사르의 양자인 아우구스투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서 나온 친자를 죽여버린 것과 같은 이치다.
알렉산더 이후의 모든 헬라의 집권자들이 알렉산더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면서 후광을 업으려고 했지만 막상 그의 자손은 보존되지 못했다. 우라누스가 제우스를 삼켜버린 것 같은 권력의 냉정함을 그는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가 직접 죽이고 만 클레이투스도 자신의 목숨을 던져 알렉산더의 목숨을 살리고 전투의 승부를 바꾸어놓았었다. 그 점에 대해서 감사하라고 외칠 때 알렉산더는 창을 던져 값음을 하였다. 신뢰가 무너져갈 때 전투력은 약화된다. 인도왕과 싸움을 할 때 고전한 것도 그런 요소가 더 반영된 것이다.
인도의 일부를 점령하고 약탈만 한 것은 아니다. 인도의 철학자들과 질의응답을 통해 그 철학적 깊이를 확인하고 그리스철학의 전통과 비교하려고 했다. 헬레니즘이 각 지역의 전통을 포괄하면서 장점을 살렸기에 멀리 조선반도까지 날라와 불상들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고집스러운 유태세계에도 영향을 많이 주어 구약 구절들을 보면 당시 제사장들의 불만섞인 목소리가 나오게 만들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는 알렉산더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불을 전해주어 인간에게 큰 힘을 주었지만 제우스에게 붙들려 간이 독수리에게 쪼이는 고통을 당하던 그 신화가 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알렉산더가 그리스 사람들에게 던진 문제의식은 도시국가 시대의 종말이었다. 작은 도시 하나 하나가 전통을 고집하며 갈라져 내것만을 지키려 싸우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탁월한 문화를 만들어낸 아테네는 실제로는 부모가 모두 아테네 출신이어야 시민권이 유지되는 폐쇄적 신분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역사에서 신라가 고집하던 골품제와 유사한데 그 결과는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이 아테네가 조상의 전공을 믿고 주변 도시국가들을 신하처럼 부리려고 하자 반발해서 일어난 것이 펠레폰네서스 전쟁이다. 이 혼란에 최종적인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마케도니아의 필립과 알렉산더라는 두 왕이다. 알렉산더는 한걸음 나아가 페르시아를 포함한 이방인들을 포용하려고 했다. 그리스민족 특유의 우월감을 부정한 것은 사실 알렉산더 자신이 마케도니아라는 변방 출신으로 그리스 측으로부터는 무시당하던 존재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이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서로 인정하면서 모두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고난을 통해 사해평등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런 이상을 부하들은 수용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평생 누릴 만큼 충분한 재화를 바빌론에서 벌었지만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깐이고 계속 어려운 싸움에 끌려다녔다. 박트리아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인데 후일 여기서 싸운 소련과 미국의 꼴을 보면 이 전란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아프칸에서 벌어들인 재화가 있었을까? 아마 한푼도 없었을 것이다. 인도로 넘어오면 우선 풍토가 틀려서 병이 걸리기 쉽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신이라면 그런 전쟁을 계속 따라다니고 싶겠나? 반발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알렉산더에게 그리스 장병들이 맞서서 대항하는 장면에서 왕의 주변에 박트리아 출신 용병들이 왕을 지키려고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실제 역사에서 있었던 장면이고 영화는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정확한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결국 감독이 그려내려던 알렉산더의 모습은 고독한 영웅의 인간적 측면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세계를 정복했고 모든 적을 물리쳤지만 아버지,어머니,아내,자식 아무도 지키지 못했다. 이복동생도 죽여야 했고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부하도, 전쟁터의 동료들도 여럿 죽여야 하는 힘든 상태에 몰렸다. 보통사람 모두가 부러워할 처지라고 하지만 그는 이겨내야 만 했다. 위대한 정복자로 남았지만 실패한 제왕으로서 그의 삶은 결말지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