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미제라블 O.S.T.
휴 잭맨 외 / 유니버설(Universal)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이 그전에 나왔던 여러 레미제라블에 비해서 왜 더 높이 평가 받아야하는지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하고 싶다.


레미제라블을 처음 접한건 동화 속에서였다.

명작. 그렇지 세계소년명작을 꼭 읽도록 권장받아왔다.

그건 국민학교 길어야 중학교 초년까지였다.

그 다음에는 학업이 바빠서 채 읽지 못하다가 대학교가 되어서야

다시 책을 잡게 되었다.

국민학교에서 얇은, 길어야 채 150페이지 정도의 책이었는데

대학교에서 집어들어보니 각권 공히 400페이지가 넘는 책 3권 분량이었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작품 속 시대를 잘 보아야 한다.


책 내용 상당수가 당대 프랑스의 사회상이다.

그리고 그 사회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혹은 박애주의적 인간상 만 담긴 것이 아니다.

작품속 프랑스 사회는

사람이 집단을 이루어 서로에게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고 

이를 무력으로 강제하면서 벌어지는 살육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마지막에 포도(돌로 깔린 길)에는 피가 강물처럼 흐른다.

그것도 잘생긴 젊디 젊은 청년들의 피가 말이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혁명을 진압하려는 제도의 아들들이 그렇게 누워있다.

그 사이 사이에는 정말 가난을 뼈저리게 느낀 소년과 처녀가 누워있다

테나르디에의 아들과 딸이다.

정말 레미제라블이라는 말에 걸맞는 인물들은 바로 이들이다.

처녀는 가슴 드러낸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이라는 작품의 깃발든 주인공이 되면 딱이고

그 옆의 소년이 바로 이 작품의 가브로슈로 인정된다.


그림이야 성공의 장면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대부분 죽음으로 끝맺는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증오심은 결국 파리 코뮨에서 절정을 이룬다.

독일에 패전하고 나서 총구의 방향을 자국민에게 돌린 프랑스 군대는

전투가 끝나고 나서도 수만명을 학살한다.


위고의 고민은 쉽게 해결되지 못했다.

그가 그렇게 외쳤던 박애의 정신의 구현체였던 장발장과 자베르는

결코 현실에서 보여지지 못한 것이다.


이 작품이 왜 위대한지 잠시 돌아가보자.

마지막 바리케이드 전투 장면을 충실히 묘사했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다.

보통 영화나 소설에서 이 부문에 대해서는 과감히 생략을 해버린다.

혹 나타나더라도 가볍게 묘사되고 만다.

하지만 이 갈등은 1800년대 프랑스 역사를 관통하는 매우 어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젊은피가 흩뿌려진 거리, 그 위에서 피어나는 부활의 노래 

이런 이야기는 결코 가볍게 이해될 수 없는 고통의 산물이다.

그 점을 이 작품에서는 최대한 부각시켜 나가 준다.


자유가 퍼져나가 이제 신자유주의는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자유가 꼭 진보일까하는 의문을 한번 품을 때가 되었다.

자유가 강조될수록 1대99까지 쏠림이 극대화되는 사회가 된다.

소리 없이 고통은 커져가면서 분노가 한국 사회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모두에게 행복일까 고민하는 문호의 모습이 한국에도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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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2-2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EBS에서 방영된 작품을 보면서 두 가지 배경화면에서 꽤나 놀랐습니다. 하나는 코제트가 마리우스를 만나던 무렵, 장발장이 빈민들에게 무료급식을 나눠주던 당시의 파리의 무질서하고 가난한 모습이었고, 두번째는 바리케이트 전투에서 정부군에게 무자비하게 진압되는 장면이었죠. 그 모습들이 우리나라의 해방후 또는 한국전쟁 직후의 가난하고 무질서했던 모습과 겹쳐졌고, 또 80년대 초 대학 다닐 때 군부통치에 맞서 '거리시위'에 나서고 투석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끌려가던 여러 모습과 오버랩되더군요.

지금 신자유주의의 만연이 갈수록 빈부격차를 확산시킨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또 앞으로도 그런 경향은 (아무리 신자유주의를 억제하거나 개선시킨다 하더라도) 결국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게 불보듯 뻔할 듯싶어요.

문제는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만큼 전반적으로는 생활이 윤택해졌고 앞으로도 조금씩은 더 나아질 가능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감'은 계속 커져갈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에 있는 것 같아요.(우리가 북한 주민들과 비교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소설 '레미제라블'에서는 어쩌면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했던 '여러 난점들'이 그런 대목에서 생기는 것도 같아요.

아무튼 레미제라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시대적 상황에서나 지금의 시대환경에서나, 널리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이웃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상생과 포용과 '박애정신'이 두루 환영받지 못할 이유는 하등 없는데, 요즘처럼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또 그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는 시기에 MB정부는 왜 그토록 시종일관 줄기차게 '레 미제라블'과 '장발장'과는 정반대의 길을 고집했는지 참 이해가 가질 않더군요.

2012-12-27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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