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코폴라 감독의 <대부>는 뉴욕의 이탈리아 마피아 세계를 그려낸 영화다. 
영화의 시작은 대부의 앞에서 어느 중년 남자가 딸이 당한 모욕을 갚아달라는 하소연 하는 장면이다. 미국의 사법제도는 배심제라 주류 사회의 구성원이 유리하게 되어 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백인은 백인편에 서게 되니 마이너 집단은 늘 차별 받는다.
딸을 망쳐 놓은 백인 청년들이 사소한 처벌 만으로 넘어가는 것에 분노한 아버지의 발걸음은 대부 앞으로 가게 된 것이다. 대북는 정의에 대한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고 그의 패밀리 하에서 보호되어 사적인 복수를 하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이탈리아 사람들은 감히 건드리기 어려워지니 자연스럽게 보호가 된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서 사적 복수는 흔한 편은 아니다.
그럼 억울한 이는 어떻게 하면 될까?
잘 풀리지 않으니 결국 한을 노래한 문학이 그렇게 많았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는 멀리 80년 5월의 광주로 우리를 데려간다.
애니메이션으로 순화해서 처리되었지만 그날의 비극들은 잔혹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우리는 고단한 삶들을 본다.
부모를 잃고 홀로 남은 이들의 삶의 어려움은 쉽게들 짐작 갈 것이다.
그러다가 세상이 바뀌어 정권교체,문민화 그리고 민주화까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건 웬 일인가? 
호남 출신 대통령은 모두의 권리를 대신해서 가해자를 선뜻 용서해버린다.
보안법 수감자들에게 집요하게 전향서를 요구한 것에 비교해서 아무런 사죄도 용서도 구하지 않은 전두환,노태우는 무조건 사면을 해준 것이다.
아마 전도연 주연의 걸작 <밀양>을 보신 분은 비슷한 난감함을 발견할 것이다.
나로부터 용서의 권리조차 빼앗아 버린 자를 보는 황당함을 말이다. 

다른 국민들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친족을 직접 잃은 이들의 아쉬움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느닷없이 제안이 온다.
이제 직접 나서보지 않겠냐고.

법도 지나가버리고 막강한 경호체제 하에서 국가의 권력도 잘 이용해먹는 그 분을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역시 주인공들은 복수단을 만들어 길을 떠난다.
하지만 이 길은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들이 간 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그 분은 제왕과 비슷한 수준의 악인이지만
주인공들의 활솜씨와 용기, 지략은 그 만 못하다.
현실은 상상속의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수단의 복수극은 때론 유치하고, 황당하고, 조잡하고 하여간 안타깝다.
무언가 될 듯 될 듯 하지만 결코 쉽지않다.
꽤 머리를 쓴 듯 하지만.. 어쩌랴..
영화 제목이 26년인데. 그렇게 보면 결말은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영화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면서 숙제를 던진다.

복수단의 주인공 하나는 조폭이었다. 사실은 황당한 설정이다. 
예전으로 돌아가자면 그의 위치는 학생이어야 했다. 
학생들은 그분을 권좌에 계속 머물지 못하게 만들었고, 체포단도 만들었고, 여러가지 활약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자리는 조폭의 유치함으로 변모해버린다.

그만큼 영화는 역사가 아닌, 역사에 있었으면 하는 팩션으로 바뀌어간다. 
그렇지만 그 속에 여전히 심각한 물음은 남는다.
광대의 우행을 보면서 촌철살인을 느끼듯이 팩션은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왜 그들이 그렇게 뻔뻔하게 살 수 있는지, 그게 과연 정말 샌델의 정의론이라는 책이 100만부 팔리는 사회가 맞는지? 등 난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그 원인을 만드는데 일조를 한 사람이 나 자신은 아닌가?
복수단의 유치함,황당함,조잡함은 사실은 나의 내면에 있는 성격 고대로가 아닐까?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마음은 무거워졌다.
다시 이탈리아의 대부가 떠올랐다. 그는 매우 간단하지만 무게 있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동포들을 보호했다.
정의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집단이 받는 대우는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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