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버려라
이성용 지음 / 청림출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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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맞는 소리가 많이 담겨져 있다.

삼성차가 무너지자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수많은 전문가들이 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당위론을 들고 나온 것은 대표적으로 부끄러운 사례다. 조금 확장하면 대통령이 레임덕이 되면 갑자기 아들의 비리가 나타나 구속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힘이 있을 때 숙이고 없어지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행태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다.

모두가 문제로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는 개혁에 대한 실망도 많다. 수십년째 진행되는 교육개혁은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적당히 어길 수 밖에 없는 법의 대목은 준수하지 못할 높은 기준을 앞세우고 덕분에 행동하는 모두가 범법자가 되면 이를 적당히 봐줄수 있는 권한을 관료가 누리는 기형적 체제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다. 최근의 성매매 관련법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런 부분들에 솔직한 지적과 충고를 할 수 있는 저자의 태도를 우선 높이 산다.

하지만 한국이 꼭 버려야 할 것들로만 가득차지는 않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국사람의 적응력은 매우 뛰어나다. 드러커의 <새로운 현실>이라는 책 서문에 보면 한국에 대해 결코 빈말이 아닌 진정한 격찬을 길게 서술한 것을 볼 수 있다. 폐허에서 공장건설 그리고 전세계 수출로 1위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단 수십년만에 이루어내는 역동성에 대한 감탄이다.

이 과정에서 속도와 결과를 위해 과정의 합리성 이해당사자의 동의를 만들어내는 민주적 절차의 부재 등 여러가지 문제는 한편으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나타나게 된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과거의 성과에 대해 부정할 필요도 한국인의 속성에 대해 자기 비하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된다. 장점은 장점대로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구의 합리적 정신에 충실한 컨설팅 회사 - 저자가 근무하는 - 의 관점들은 모두 한국이 부실기업을 처분하는 구조조정을 철저하게 하라고 외쳤고 대표적인 예로 하이닉스를 거론했지만 하이닉스는 결국 한국인들의 여러 노력으로 살아나서 자신을 사려고 했던 마이크론 보다 훨씬 높은 영업이익율을 내고 있다. 다 망해가던 대우조선도 LNG에서 발휘한 놀라운 적응력으로 회생한다. 이런 점들이 숫자와 지표에 나타나지 않는 숨은 저력이고 바로 한국인의 장점이다.

영미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의 수명이 짧다. 자본과 노동이 빠르게 헤쳐모여를 한다. 하지만 한국이 IMF 이후 추진한 구조조정에서는 흩어진 노동을 재수렴할 자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는 오늘의 청년실업과 소비불황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정책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적용되서는 안되는 점이다. 그럼에도 많은 컨설팅 회사가 best practice라는 이름 하나를 무기로 삼아 한국을 재단하면서 엄청난 수수료를 챙겨갔다. 이것 또한 합리적인가?

컨설팅 산업은 원래 영미에서 발달해서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여기에 대해 동양권에서 유일하게 독창적인 내용을 내세운 사람이 일본 매킨지 전사장 오마에 겐이치다. 일본 제조업의 세계 1위 도약과 함께 일본적인 것의 강점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며 미국을 누볐다.

반면 한국은 지금 삼성전자라는 1위 기업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컨설팅 업계가 해외에 대해 당당히 자부심과 노하우를 전파한다는 소리는 못 듣고 있다. 왜 일까? 한편으로는 H/W적 기술 빼내기 위해 혈안이 된 중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존재하지만 컨설팅 업체가 당당히 한국적인 강점을 정립하고 이론화해서 보급하지는 못한다. 노력부족일까 인식의 착오일까 아니면 여전한 자기 비하일까?

한국에서 버려야 할 것 위주로 찾은 이 책의 저자에게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한국에서 찾아야 할 것을 담은 책을 만드는 사람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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