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비극들 중 하나를 소재로 삼아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의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무척 낡아보이는 구식 탱크가 눈에 들어왔다. 이 탱크를 앞세운 채 일단의 군대가 전진해간다. 용감한 적군의 용사들 앞에 놓인 평지는 그냥 아무나 지나가는 길이 아니다. 그 위에는 농부들이 한여름 흘린 땀으로 만들어진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제발 멈춰달라는 농부들의 하소연에도 군대는 이미 잡은 진로를 바꿀 줄 모른다. 농부들은 이 상황에서 어느 노인에게 달려간다. 상황을 바로 판단한 그는 말을 타고 달려와 지휘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진로정정을 명한다. 혁명전쟁의 영웅인 코토바 대령의 위세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위세 좋은 사람이 그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을까 하는 아찔함이 느껴진다. 이미 혁명에는 관료주의의 냄새가 짙게 배이기 시작한 것이다. 말단 조직에게 순간순간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순발력을 키우게 하기 보다는 무조건적인 충성만이 요구된다.

그냥 천천히 비추어 주는 화면은 정말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울리는 사이렌은 민방공 훈련을 나타낸다. 이 시점에서 피아니스트를 가장한 젊은 청년 하나가 나타난다. 그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는 이 사람이 가진 사연의 무게를 나타낸다.
이제는 대령의 아내가 되어버린 옛날 애인과 잠시 만남을 가지고 옛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 나타난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대령과 사적인 대화를 얼마간 나누었고 처음에는 정중히 차로 모시는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 그가 드러낸 정체는 정보부 요원이었다. 둘 사이의 갈등이 얼마간 나타났지만 저 건너편에 떠오르는 스탈린의 초상화는 잠시 침묵을 갖게한다. 둘 다 같은 초상화를 향해 경례를 붙인다. 한때는 대령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했던 바로 그 스탈린이지만 이제는 냉혹한 독재자로 변모해서 자신의 권력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존재들을 숙청해가고 있다.
그래서 이어지는 장면은 대령의 처형이었다.
어제는 전장에서 목숨을 걸어 영웅이 되었고 이제는 선량한 노인이고 마을의 어른인 그가 이렇게 죽어야만 했다.
이 때 단지 목격자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죽어야만 했던 사람이 있다.
가끔 어떤 목적지를 찾아서 트럭을 몰고 헤매며 다니는 운전수가 있었다. 그에게는 분명 목적지가 있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도 그곳에 대해서 대답해줄 수 없었다. 그는 누구의 상징일까? 그가 그렇게 안타깝게 가려고 했던 곳은 결국 아무도 모르는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
바로 이 사람이 여기서 같이 죽게된다.
이는 스탈린의 숙청이 기존의 당과 군의 관료 뿐만이 아니라 그저 열심히 유토피아를 쫓던 무수한 평민층에까지 미쳤다는 점을 상징하게 된다. 아울러 한걸음 나아가 유토피아를 추구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위협을 받았다는 점까지도 나타낸다.
트로츠키주의, 개량주의, 인민주의 운동 등 같지 않은 모든 의견들이 배제되었다. 그 과정에서 고려인들의 피해 또한 적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이 나타나게 되는 배경을 상징적인 기법으로 잘 표현해낸 영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