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

Deep impact와 엇비슷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이쪽이 더 길고 더 유명한 배우를 주연으로 썼고 그리고 무엇보다 더 재미있다.

브루스 윌리스는 드릴을 이용해 땅을 파는 사람이다. 땅을 파서 기름을 찾는 고된 작업을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이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다. 이론적으로도 많은 것을 알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활용하는 측면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다.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드릴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영화의 처음 부분은 그런 생각이 편견일 뿐이라고 관객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여러 장면을 할애한다.

성격적으로 볼 때 브루스 윌리스는 매우 직선적이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기도 하고 바꾸어 말하면 순수하게도 볼수 있다. 부하직원 AJ의 침대에서 딸을 발견하고서는 곧바로 총을 찾으러간다. 거의 좌우를 고려하지 않고 쏘아대는 그의 모습을 보니 얼마전 한국에서도 어느 아버지가 딸의 침대에서 발견한 외간남자를 방망이로 두들겨팼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딸이 이렇게까지 아버지의 뜻과 어긋나게 나가게 된 책임의 상당 부분은 아버지에게 있다. 브루스 윌리스는 일찍 이혼했고 온전한 가정을 꾸리지 못해서 항상 딸을 작업장에 데리고 있었다. 자신의 죄가 있기 때문에 딸에게만 나무라지 못하지만 지금은 무척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딸의 애인에게 처음에는 총질을 했지만 다음에는 가만 놔두었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화해하게 되는 과정을 밟아나간다.

<아폴로 13>에서 보여주는 NASA의 모습은 매우 합리적이고 유능한 인재들의 집단이다. 우주 공간에서 부딪힌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해서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보면서 완전치는 못하지만 충분히 자기 교정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주 아주 영웅적 역할을 한 개인에게 양보하고 가슴을 졸이면서 쳐다만 보는 무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브루스 윌리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몇몇 동료들이 카지노장에서 도박에 빠져있다가 도로에서 질주하다가 혹은 젊은 여인을 유혹하다가 잡혀온다. 이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 보자. 대부분 덩치크고 외골수로서 "머리보다는 몸을 주로 사용해온" 백인 블루칼라들이다. 이들의 속내를 잘 드러내주는 면모는 역시 생명 수당 대신 내건 조건들이다. 카지노 숙박권, 경찰에게서 떼인 교통위반 딱지를 면해줄 것 등 개성에 따라 나오는 여러가지 조건이 내걸리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생동안 세금을 면제해달라는 조건이다. 세금에 대한 양적인 고민과 함께 이런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는 무능한 정부가 세금을 거둬갈 명분은 또 무엇이냐는 반문이 스며인는 듯한 말이다.

고된 훈련을 받으며 다들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가 된 이들이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하자 브루스 윌리스는 하루의 휴가를 요청한다. 엄청난 대사를 치르는데 하루라는 시간이 귀중하지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왜 죽으러가느냐하는 존재의 이유를 각자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희생이다.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큰 작업에 한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모두 동참한다. 역사적으로 보여준 자기 희생의 좋은 예 하나는 데르모필라에서 보여준 스파르타 인들의 행동일 것이다. 위기에 빠진 그리스 전체를 구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고 이들은 데르모필라라는 좁은 계곡에서 페르시아인들의 진격을 막으러 나간다. 몇백 정도의 군사로 수십만 대군에 맞서러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바가 없지만 이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모두의 안위를 위해 자기 헌신을 하게된다. 단 이들 자원자의 조건은 아들을 둔 남자들이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존재가 혈육을 통해 승계될수 있을 때 자기 희생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짧은 휴가를 통해 찾으려는 가치는 다양하다. 사채업자에게 거금을 빌려 카지노에서 마음껏 뿌리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가족을 찾아나선다. AJ는 물론 브루스 윌리스의 딸을 만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가지 대화를 한다. 또 한명의 예비 우주인은 작고 하얀집을 방문한다. 이곳에서 노는 아이는 실은 그의 아들이지만 법원의 판결은 냉혹해서 접견의 권리까지 금지되어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에게 이 사람을 "외판원"이라고 둘러대면서 즉시 물러나 줄 것을 요청한다. 어쨌든 이들이 보낸 시간들은 희생이 이루어져야하는 근거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급조된 우주인들은 모험을 떠났다. 이들이 우주로 떠나는 장면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중간에 구 소련의 우주정거장 미르에서 연료보급을 받는 것부터 예기치 못했던 어려움이 닥친다. 미르의 다 낡은 시설은 보급과정에서 폭파되 버리지만 대신 경험많은 우주비행사 한명이 모험에 동참하게 된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따라 행동해서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되는 복선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이 소행성에서 벌이는 활약은 결국 모험 드라마들의 패러디다. 이런 형태의 드라마의 구조는 장소만 바뀔뿐 대체로 일정한 편이다. 보통사람들이 가보고 싶지만 자주 경험하기는 어려운 공간이 선택되고 주인공은 여러가지 난관을 초인적인 노력과 운을 적당히 결합해가며 해결하게 된다. 영화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이런 장소로 기차가 선택되었고 점차 비행기가 많이 나오다가 이제는 우주선이 활약하는 시대가 되었다.

폭파 과정에서 역시 우리의 영웅 브루스 윌리스의 개성이 드러난다. 본부의 유유부단하고 맹목적인 지시에 대해서 브루스 윌리스는 자신이 결코 주어진 목표를 채우지 못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저항한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자기의 전문 영역 - 바꾸어 말하면 밥줄 - 에 대해서 남이 터치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미국 사람들의 일반적 특성이 잘 드러난다.
어쨌든 구멍파기 작업은 성공하였는데 문제는 한 사람이 남아서 폭파를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비뽑기라는 고전적인 방법을 통해 선택된 영웅은 딸의 연인 AJ다. 흔쾌히 그 역할을 맡겠다는 이 친구 대신에 브루스 윌리스는 자신을 희생한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아주 아주 막바지까지 시간을 소모해가면서 그는 폭파에 성공한다.

살아남은 영웅들이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은 역시 또 하나의 가족 회복 드라마가 된다. 아버지 대신 애인을 맞게된 딸의 희비가 교차되는 모습이 먼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어서 외판원으로 취급되었던 또 하나의 가족상실자가 이제 존경받는 영웅으로 변신해서 떳떳이 아들을 품에안게 된다. 한가지 더하자면 늘 도박과 여자를 좋아하던 놈팽이조차 자신을 마중나온 스트립걸을 만났다.

진행상 몇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먼저 과학적인 차원인데 소행성의 중심을 폭발해서 거의 비슷한 크기의 둘로 나누어 지구를 벗어나게 한다는 해결책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과학적이지 못한 것 같다.
또 지구 곳곳이 파괴되었는데 다른 지역에서 닥치는 위험을 모른채 정상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 70년대에 뉴욕시가 잠시 정전되었을 때 엄청난 폭력이 발생했던 것이나 LA의 흑인폭동때 난장판이 되었던 모습이 머리에 떠오른다. 굳이 이런 면을 배제시키는 것은 역시 영화는 사실성보다는 오락과 교훈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가지 유념해서 보아야할 것은 영화에 나온 주인공이나 일반 사람들이 거의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더기로 몰려나와 자신이 믿는 신을 의지하려는 사람들은 오직 이슬람 밖에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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