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복잡한 무대를 만들어 놓고 여기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영화다

언뜻보면 말도 안되는 설정이라고 불만을 토로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쉬지않고 머리는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움직이게 된다. 매트릭스라는 제목에서 옛날 수학시간을 괴롭게 만들던 행렬이라는 단어를 떠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몇은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듯이 세계를 꽉 채우는 모호하지만 거대한 무엇을 행렬이라는 수학 개념만으로는 소화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뒤져본 영한사전에는 “place where sth begins or develops 모체, 기반” 이라는 해석이 달려있었다.
자 그럼 영화를 들여다보자. 처음 시작은 숫자가 가득채워져 나오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들리고 화면은 여자의 모습을 비쳐주게 된다. 뭔가 갸름한 얼굴에 진지한 분위기를 주는 그런 존재다. 곧이어 경찰이 쳐들어오고 총을 겨누며 손들어라고 외친다. 아무런 무기가 없는 갸녀린 여인은 손을 천천히 들며 자리에 일어선다. 여기까지는 흔하게 보는 체포의 현장이고 체포되는 여자에게 동정이 쏠리지만 다음 장면부터 영화는 관객에게 문제를 던지기 시작한다. 게으로고 평면적으로 보이는 경찰들의 무리에 낯선 존재들이 나타난다.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보고 이들이 수사관이겠구만 하는 짐작은 하지만 뭔가 이들의 얼굴 생김새와 행동은 Man in black에서 고대로 옮겨오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갖게된다.
그리고 이들이 던지는 “그 여자를 잡으러간 경찰 양반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오” 말은 관객들에게 의심스러운 느낌을 강하게 주기시작한다.  
다시 카메라는 여자를 비추게 된다.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그녀는 자신의 등뒤에 권총이 겨누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바로 이어지는 몸을 공중에 띄우며 발길질하는 동작은 일반영화의 무술유단자과 엇비슷하면서도 뭔가 색다른 느낌을 준다. 가볍고 빠르게 경찰들을 해치워 여유를 보이던 그녀도 곧바로 들이닥친 수사관들을 보고는 무조건 달아나기만 한다.
묘한 먹이사실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보통사람, 여인 다시 수사관으로 이어지는 힘의 관계가 나타난다.
도주와 추적은 공중전화에 들어간 여인에게 검은제복의 수사관은 트럭을 몰아 전화박스를 박살내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여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수사관은 다음 표적이 네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뜨게된다.
여기까지만 도달해도 사람들은 무엇인가 묘한 것이 있지않냐는 호기심을 꽤 강하게 가지게 된다.

다음 등장인물은 물론 네오다. 젊고 똑똑한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네오는 졸린 눈으로 자신의 컴퓨터에서 메시지를 받는다. 매우 평판있는 SW회사의 우수한 프로그래머인 이청년에게 곧이어 깔끔한 디자인의 전화가 배달되고 막바로 신호음이 울린다. 이 전화의 목소리는 청년의 주변과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 그리고 분명히 하나의 목적에 따라 가이드를 제시한다. 계속 그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니 고층빌딩의 창밖으로 나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까지 놓이게 된다. 낯선 전화에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이건 얌전한 회사원이 시도할수 있는 모험은 아니다.
화면은 곧 체포되는 청년의 모습으로 바뀌어가게 된다.
이 청년의 얼굴에서 키아누 리브스라는 원래 이름을 알고 있는 영화매니어들은 자연히 주인공다운 역할을 기대하게 된다.
우선 이 청년에게는 남과 다른 호기심이 있다. 낮에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 밤에는 더 열심히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를 헤메다니며 자신의 호기심을 쫓아다닌다. 그의 물음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도대체 매트릭스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답을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의 이름은 모피어스. 수사관의 움직임보다 한발앞서 네오에게 접근했던 존재다.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네오 앞에 우리가 처음 보았던 여인이 나타난다. 이제 우리는 그녀의 이름이 트리니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이 단어를 가지고 무언가 해석을 해보려고 했지만 잘은 모르겠다. 어쨌든 여기서 영화 처음에 현란한 발길질을 보여주었던 그녀가 바로 국세청 컴퓨터를 다운 시켰던 대단한 솜씨의 해커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자 두사람에게는 해커 그것도 매우 뛰어난 솜씨의 해커라는 공통점이 생겨났다.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그녀에 이끌려 모피어스까지 만나게된 네오는 막바로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빨간약과 파란약으로 각기 상징되는 두가지 길에서 한쪽은 안정과 일상으로의 회귀를 다른 쪽은 진실의 탐구를 목표로 고난을 감수하는 모습이다. 주인공이 앞서 빌딩의 창문에서 닥쳤던 상황에서는 어려운 쪽을 선택해야할 이유를 발견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좀 더 분명히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네오는 주저없이 빨간약을 선택하고 진실을 찾아 떠나는 그의 여행은 관객들에게 무엇인가 낯설고 기계적인 상황으로 화면을 이동시킨다. 그동안 관객에게 꿈과 현실을 왔다갔다하게 만드는 영화는 눈앞에 나타나던 SF적인 상황이 전혀 꿈이 아니라고 분명히 주장한다.
이대목에서 키아누 리브스 주변에 나타나게 된 상황들로부터 몇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벌거벗고 빡빡 깍인 그의 몸에 붙어있던 고무파이프와 그가 담겨있던 캡슐로부터 이곳이 바로 인간을 자연스럽지 않은 방법으로 생성시키는 기술문명이라는 것을 알아채릴 수 있다. 자 이제는 인간과 인간의 산물이면서 인간을 지배하려는 기술문명의 갈등이라는 세기말적 주제로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머리에 구멍하나를 달고 돌아온 네오에게 모피어스는 견학을 시킨다. 발을 움직이면서 천천히 세상을 보는 그런 견학이 아니라 침대에 눕고 머리 뒤쪽에 생겨난 구멍에 쇠파이프를 꼽으니 머리속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는 그런 견학이다. 꽤 예전에 <환상특급>이라는 TV시리즈가 있었다. 이곳에서 그려낸 미래세계의 모습 하나가 바로 캡슐에 담긴 인간이 주어진 프로그램에 따라 꿈을 꾸고 그 꿈을 현실로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영화작가들의 상상력은 이 작품과 거의 비슷한 모습의 미래세계를 만들었지만 모양은 약간 달랐다.

모피어스가 설명한 이 영화속의 매트릭스의 정의는 바로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공간으로 모든 인간들은 조금전에 네오와 모피어스가 보여주듯이 그 세계에 기계적인 방식으로 접속한다는 것이었다. 즉 이 공간은 참여한 사람들에게 모두 공유되는 것이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네트워크 게임이 서로 떨어진 여러 사람들에게 하나의 세계를 열어주듯이 말이다. 인간의 감각을 전통적인 세계와 유리시켜 오직 신경에 주어지는 자극으로만 관리시킬 수 있는 이 새로운 공간을 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우리는 먼저 이런 세계는 왜 만들어졌을까 하는 물음을 가지게 된다. 첫번째로 이 시대가 1999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2199년이라는 제법 한참뒤라는 설명을 이해애햐 한다. 200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엄청난 과학의 발전을 가져왔고 특히 AI로 약칭되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놀라운 정도였다고 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오딧세이>를 보면 벌써 컴퓨터의 능력이 연산과 추론을 넘어서 자신에게 닥치는 위협에 감정적인 대응을 하는 수준까지 발전해나가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인간의 산물인 컴퓨터들은 그런식으로 발전해서 거꾸로 인간을 종속시키는 세계를 만들게된것이다. 이제 인간은 단지 에너지의 확보를 위해 적당히 만들어지고 길러지는 그런 존재로 전락하게 된것이다.
터미네이터를 비롯해서 무수한 SF영화들이 만들어낸 비극적 미래들 중에서 가장 빡빡한 상태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들이 사육되고 있기 때문에 전혀 이 세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결론이라면 영화가 더 진행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영화에든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려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고 이는 당연히 주인공들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
모피어스, 트리니티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기계가 지배하는 세계에 저항하려는 집단의 일원이다. 이들의 배후에는 시온이라는 유태교적인 냄새가 다분히 나는 본거지가 있다. 모피어스가 지금 놓인 곳은 하나의 저항선으로 이곳 저곳을 움직이면서 매트릭스에 들어갔다 나왔다하며 저항을 계속 한다. 영화 맨처음 공중전화를 통해 트리니티는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다시 이런방식으로 거꾸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영화는 전화선 하나를 통해 많은 움직임이 있는 그런 규칙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매트릭스를 만든 사람이 일부러 열어놓은 것은 절대 아니고 체제의 통제에서 벗어난 소수의 사람들이 제멋대로 해킹하는 것이다.
영화속의 수사관들은 잘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해석된다. 이들은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매트릭스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무조건적으로 뛰어넘을 수는 없다. 매트릭스안의 존재 누구나의 몸에 들어가 대신 활동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원적인 한계들 가령 날 수 없다든가하는 것들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이영화의 구도가 주인공의 적인 수사관들에게 주는 중요한 한계의 모습이다.

적들에 맞서기 위해서 주인공은 열심히 무엇인가를 배워야한다. 배우는 과정도 또한 조그맣게 만들어진 매트릭스와 엇비슷한 가상공간이다. 여기서 쿵후도 배우고 공중점프도 배우고 하면서 빠르게 적응을 해간다. 이 시점에서 모두들 네오를 쳐다보는 눈이 특이하다. 네오는 지금 저항군 중의 한 존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은 이 모든 저항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존재인 “그”가 아닌가 하고 생각되는 것이다.
다분히 유태-기독교적인 세계관이 표방하는 구세주의 대망이라는 모티브가 여기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모피어스를 제외하고는 다들 반신반의하고 있는 상태다. 이 연약한 듯 보이는 청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구원의 세상까지 이끌어낼까?

네오가 정말 “그”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오라클이다. 오라클이라는 단어가 원래 신탁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라는 배경을 안다면 만나게 되는 사람은 신을 모시는 무녀이고 그녀의 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느 것도 짐작해낼 수 있다.
오라클을 만나기 전에 여러명의 소년소녀들을 보게된다. 그들 모두 “그”의 후보들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한 소년은 숟가락을 마음대로 휘는 능력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그 소년이 네오에게 던진 말이다. 존재하는 것을 부정해서 휘게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을 바꿔먹는다는 투의 말로 이는 네오에게 점차 많은 변화를 만들게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그녀는 기대와는 다른 형태의 답을 한다. 실망스럽게도 네오는 “그”가 아니고 더구나 조금만 지나면 모피어스와 네오의 목숨 중 하나가 위협을 받는다는 불길한 예언까지 던져준다.
지나가는 말로 네오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투의 언급도 있다. 똑똑한 관객이라면 트리니티라고 짐작을 해낼 것이다. 왜냐면 지금까지 등장한 여인중에 괜찮은 얼굴을 한 것은 트리니티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돌아가는 길에 막바로 위험이 닥치게된다.
배신자에의해 위치가 노출됐고 그 덕분에 매트릭스는 그 건물 자체를 수정해버렸다. 눈앞에 고양이가 똑 같은 모습으로 두번 지나가는 일이 벌어진다. 원래의 자연환경이라면 이런 일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어차피 매트릭스란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이고 따라서 수정이 가해졌다는 증거라고한다. 그 덕분에 건물의 바깥은 벽으로 막혀있고 밖에는 적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쪽도 바뀐 건물의 설계도를 알아낼 수 있는 해킹 능력은 가지고 있다. 도망의 과정에서 모피어스는 네오를 위해 자신이 대신 잡힌다. 주저함을 남기고 돌아가려는 일행들에 새로운 문제가 닥친다. 배신자가 먼저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막고 서있는 것이다.
여기서 매트릭스의 규칙 한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몸은 비행선에 남아있고 정신만 매트릭스에 들어왔지만 매트릭스안에서 정신이 죽는다면 몸도 따라서 죽게된다. 거꾸로 비행선 안의 몸이 죽어도 죽는다. 한걸음 나아가 둘 사이에 연결고리인 쇠파이프가 끊어져도 죽는다.
이 과정에서 네오가 정말로 “그”인가 아닌가 하는 물음은 계속 이어진다. “그”라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우연찮게 그 물음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모피어스가 놓인 위험에 대해 모피어스를 죽일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닥친다. 네오는 과감히 그 문제를 자신이 떠 맡는다. 얼마전 오라클이 분명히 예언하였고 여기에 대해서 자신의 “그”가 아니라고 확신한 네오는 미래를 위한 가능성을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걸게된다.
막강한 능력을 가진 수사관들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누구나 도망가려고만 했지 결코 맞서보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네오는 비록 많은 총을 들었지만 그에게 덤벼들었다. 여기에서 보통 총잡이하고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우선 눈앞의 몇몇 경비원은 총으로 해치울 수 있다. 하지만 다음으로 건물에 폭탄을 터트려 많은 전원을 끊어버리는 것은 지혜로운 사전공작이다. 다음으로 보통 총이 아니라 헬기의 기관총을 가지고 수사관들을 공격한 것은 정말로 똑똑한 전략이다.
헬기 앞에서 수사관과 벌인 싸움은 두 가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벌써 네오가 수사관과 비슷한 속도로 몸을 움직이면서 총알을 피하는 흉내를 낸 것이고 다음으로 자신의 바로 앞에 다가온 수사관을 옆에 있던 트리니티가 해치우게 만드는 똑똑함을 발휘한 것이다. 그는 원래 대단한 솜씨의 해커였으니 이런식의 행동이 부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기관총으로 마구 쏘아서 수사관들을 해치우고 모피어스에게 도망쳐라고 외친다. 이때 중요한 것이 모피어스를 제어하던 전기의자가 건물의 전원으로 차단된지 꽤 시간이 지났다는 점이다. 그냥 모피어스가 맘대로 일어선다고 하면 좀 웃길 것이다.
다시 건물에서 빠져나오려는 모피어스의 발이 총알에 맞자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졌고 네오는 즉시 몸을 내던져 공중 구조를 시도한다. 다시 헬기는 총에 맞아 흔들렸고 이번에는 건물의 옥상에 내렸던 네오가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솜씨를 발휘한다.
이 몇번의 동작에서 우리는 영웅의 탄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혜와 용기를 가졌고 세계를 구한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아름다운 영웅이 우리 앞에 서있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야말로 책무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제 깨닫게 된것이다.
이 대목에서 눈앞에 놓인 세계가 자연스럽지 않고 매트릭스에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이 하나 보여진다. 건물에 충돌한 헬기가 벽면을 휘게 만든 다음 조금 지나 폭발하는 것이다.
영화감독의 배려가 돋보이는 구성이다.

매트릭스에서 빠져나가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둘을 먼저 돌려보내고 난뒤 막바로 수사관이 전화기 옆으로 나타난다. 여기서도 매트릭스안의 수사관은 누구의 몸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규칙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제 단 둘만 남아서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이 되었다. 처음에야 주인공이 밀리지만 점차 점차 네오의 능력이 발휘되어갔다.
마침낸 수사관을 두들겨 패고 밖으로 빠져나가 또 다른 탈출구로 향해 달려간다. 이때는 상대방인 수사관들이 셋으로 늘어갔다. 우연인지 이번의 탈출구는 영화가 처음 시작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덕분에 기껏 방문앞까지 도망해낸 네오의 앞에 수사관이 나타나고 이어지는 총격에 네오는 쓰러진다.
상황은 끝났을까?
당연히 그러면 서운할 것 처럼 보일 것이다.
네오는 잠시 쓰러져있었지만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다시 자신에게 가해지는 총알을 멈춰세운다.
무엇이 있었을까? 유머스러운 영화도 아니면서 현실을 이렇게 무시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다시한번 이 공간이 “가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가정을 이해해야할 것이다. 어차피 0과1의 집합으로 만들어진 세계라면 그것을 마음대로 넣고 빼고 수정하는 작업도 굳이 컴퓨터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책상위에 놓인 컴퓨터에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이름 모를 제작자의 바이러스도 움직이듯이 매트릭스도 만들어낸 컴퓨터의 의도와는 다르게 동일한 능력을 가진 사람의 의도에 맞추어 움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들은 탁월한 컴퓨터 해커였던 것이다. 이제 주인공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존재가 숫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는 연산의 세계는 이제 조정할 수 있는 사람에게 모든 가능성을 주게된다. 손을 한번 움직여 총알을 세우는 것 정도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네오의 동작은 그런 자신감의 표현 중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이다.
화면은 컴퓨터 시스템이 정지(halt)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원래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네오의 선언을 전하게 된다. 그리고 네오는 하늘을 날아간다. 이것 또한 수사관들은 결코 보여주지 못하던 모습이다. 이미 네오로 대표되는 인간은 기계에게 빼앗겼던 주도권을 되찾고 훨씬 강력하게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의 기획이 참신했고 진행 또한 탄탄하고 긴장감이 있었다. 그래도 남는 물음은 굳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었던 기계문명이 인간을 유지할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점과 하나의 매트릭스에 모든 사람을 모아둘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 등이다. 이런 식으로 물음을 던지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게되어 끝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 일단 접어두자. 그 보다 네오의 행동으로 대표되는 전자화문명의 극복이라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제시되는 근본적인 메시지가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싶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네오는 몇가지 면에서 영웅이 가져야할 중요한 요건을 충족시켜주었다. 그 이외에는 전자화문명 시대에 맞는 요소를 꼽으라면 딱 하나 우수한 해커라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기계에 빼앗긴 주도권의 회복, 상실된 주체성의 회복을 통한 자기회귀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소화한 것 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네오로 대표되는 문제해결 역량에 대해서 물음은 남는다. 어떤식으로 해야 우리의 문명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고 또 설혹 주도권이 빼앗긴다고 해도 다시 찾아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네오의 해결방식이 이러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컴퓨터의 파괴까지는 우리 시야에 들어오지만 그 다음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들은 계속 남게된다.

원자폭탄을 생물무기를 만들어 같은 인간들 위에 던졌던 20세기 인류문명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던 여러가지 노력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문명은 걸프전에서 보았듯이 컴퓨터 스크린위에서 움직이는 객체들이 만들어가는 움직임을 통해 세상을 물화시켜보고 있다. 물건의 움직임은 나에게서 저만치 있고 중요한 것은 물건이 내는 아픔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나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아픔은 지금 러시아의 공격을 받는 그로즈니에서 또 예루살렘에서 혹은 앞으로 미군 폭격기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북한에서도 나오고 있고 또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을 굳이 우리시대의 매트릭스라고 비유한다고 해서 무리라고 반론할 만한 사람들이 많을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도 그런 매트릭스의 주인공 일지도 모른다. 검게 입고 움직이는 보통사람 아니면 검은옷을 입은 수사관 심지어 모든 일을 지시하고 기획하는 컴퓨터까지도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역할일지도 모르겠다.

미덕과 방향, 문제 그런 것들을 남기고 영화의 자막들은 스러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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