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적으로 사고하고 느껴야 마음속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작품 전체를 통해 현대미국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위태로운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지만 결코 해결책을 완전히 보이지는 않는다. 현실의 미국 사회가 몇몇 사회개혁가나 전도사의 주장과 설교로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도 마음대로 이상적인 결말을 지어나가려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자세로 유도해나갔다면 흔한 코메디의 하나로 끝났을 것이지만 감독은 과감하게 부담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남겨두면서 단지 여운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그점을 높이 사지 못한다면 영화가 남기는 마음속 무게를 무겁게 여기며 극장을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에 나타나는 가정들은 나름대로 심한 문제를 안고있다. 주인공인 케빈 스페이시와 아넷 버닝 둘 다 연기력이 좋은 배우들답게 파탄나기 일보직전의 가정을 아주 잘 묘사해내고 있다. 둘 사이의 어린 외동딸은 이제 사춘기의 절정에 서서 자신의 삶과 부모의 삶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서로 이해되지 않는 세 종류의 세계는 각자를 멀리하면서 최소한의 것만을 공유한다. 머무르는 집은 하나이고 저녁 모임은 반드시 함께하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세밀히 보면 집에서도 부부는 섹스를 통한 사랑을 나누지 않고 저녁모임은 음식을 준비한 아넷 버닝이 일방적으로 틀어놓는 느릿한 음악으로 둘러싸여서 매우 건조하게 진행된다. 하루를 힘들게 보낸 가장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려고 해도 헤아려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이해와 애정은 없고 오직 무시와 비웃음만이 되돌아오는 그런 시간이 누구에게도 즐거울 수 없다.
케빈은 미국의 평균적이고 흔한 상실감을 가진 Loser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14년을 근무한 잡지사는 이제 새파랗게 어린 친구를 보스로 보내어놓고 감원대상자를 찾으려고 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케빈의 1년치 연봉에 퇴직보너스를 더한 것이 6만불 수준이다. 꼭 패배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지나보낸 세월에 비하면 활기차고 넉넉한 삶은 아닐 것이다. 집 할부금을 비롯해서 꼬박꼬박 밀려드는 영수증은 피로에 차고 희망도 없는 나이든 가장에게 쳇바퀴같은 삶을 강요한다.
이런 그에게는 1년내에 죽을 것만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있다. 그렇게 착 가라앉은 그의 삶을 일깨운 충격은 우연한 곳에서 온다. 딸이 다니는 학교 운동시합에서 치어걸로 나선 딸의 친구를 보면서 말그대로 한눈에 빠져버렸다. 곧바로 분명한 목표가 설정되고 똑 같이 보이던 사물이 이제는 거꾸로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전까지는 아침에 샤워할때만 마스터베이션을 해서 욕구를 배설했지만 이제는 꿈을 꾸다가도 희열에 빠져서 팬티를 적신다.

남편이 보여주는 경제적 비전이 양에 안찬다면 아내가 직접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넷은 매우 활달히 성공적으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중년여성이다. 딸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 자기 독자적인 전문성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녀에게도 결코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남편도 벌고 자기도 벌지만 여전히 모자라다. 왜 남편의 질책성 말을 빌리자면 4000불짜리 소파를 사놓고 뿌듯해하지만 정작 거기에 사랑이 실린 포옹이 들어설 자리는 없게된다. 물질이 만든 욕망이 자신을 구속하면서 다시 물질을 붙들게 하는 구조의 한가운데 놓여있다. 부동산 중개사로서의 전문성도 따지고보면 매물로 나온 집을 먼지뒤집어 쓰면서 하루종일 닦아놓았지만 어떤 고객의 눈길도 끌어내지 못한 그런 솜씨였을 뿐이다.
여기서 같은 직종의 사람들끼리 모인 자리에 남편을 억지로 끌고 나가보지만 결국 경쟁상대로 여겼던 베스트 세일즈맨에게 아양을 떠는 약자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아양이 통해서 둘은 만나게 되고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우아함에 대한 찬사과 교환되면서 결국 뜨거운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에 대조적으로 비쳐주는 가정은 남자 동성애 커플이었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진 두 남자는 아침에 열심히 운동하고 주변에 친절하고 항상 밝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의 끼어들기가 있다. 퇴역 해병대 대령을 아버지로 약간 정신이 나간 어머니로 두고 있는 아넷의 딸 또래 남자애가 나타난다. 항상 VTR 카메라로 주변을 찍으면서 자기것을 만들기에 열중한 이 남자애도 알고보면 정신병원 경력에 다녀오고 대마초 딜러를 하는 불쌍한 친구다.

아버지는 딸 친구와 딸은 이친구와 엮이고 아내는 외간남자와 묶이고 이렇게 여러방향으로 가정은 해체되어간다.
가장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버지다. 어린 소녀에게 던져지는 축축한 눈빛을 보면서 왠 원조교제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영화에서는 성욕보다는 좀 더 아름다운 부분이 담기게 된다. 케빈은 문자그대로 사랑을 통해 자기 삶의 목적을 발견해내었다. 오늘은 내게 남은 날들중 첫번째 날이다. 얼마나 듣기 좋지만 따라하기 힘든 말인가. 이 말을 삶의 격언으로 내세우면서 건조하게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침 조깅, 아령으로 근육만들기, 직장에서 당당해지기, 주변사람들에게 친절해지기 등 모든 면에서 삶은 일변해간다.
하지만 시련도 점점 커져간다. 아내가 이제 완전히 노골적으로 외간 남자와 붙어먹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차갑게 한마디 쏘아붙였지만 아주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집에 돌아오니 자신의 사랑이 눈앞에서 울고 있었다. 누구와도 다르게 특별하고 싶던 안젤라가 조금 전에 받았던 상처는 ‘남들과 똑 같다 (ordinary)라는 모욕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남다르게 정말로 소중한 유일한 존재로 떠 받들어줄 때 사랑받는자에게 행복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정말로 좋아하던 그녀를 품에 안고 이제 막 원하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목까지 왔지만 그래도 그녀가 정말로(?) 처녀라는 것을 알게되자 멈춰선다. 정말 아름다운 사랑은 감싸주는 것이다. 떨고 있는 그녀를 담요로 싸안는 행위는 결국 케빈의 마음의 행위를 밖으로 드러내주는 것이다. 안젤라에 대한 사랑이 에로스에게 좀 더 고양된 상태로 올라가면서 케빈은 가족사진을 다시 본다. 이렇게 귀여웠던 딸이 이렇게 사랑스러웠던 아내가 나에게서 얼마나 멀어져갔나 하는 씁쓸한 생각을 머리에서 넘기고 있는 동안 그의 머리에 총격이 가해진다.
총격을 가한 사람이 간통을 들키고만 아내일까? 아내는 조금 전 한번 더 패배를 맛보았다. 같이 놀아먹던 베스트 세일즈맨은 허겁지겁 꼬리를 빼고 도망가버렸다. 왕처럼 살기에 여왕처럼 받들어주겠다던 호언장담은 어디로 가고 소송에 걸려서 돈이나 왕창 뜯기지 않을까하는 걱정만 내세운다. 이것 또한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끄럽고 황당하고 쪽팔리고 그래서 집어든 것이 권총이었다. 그 권총을 들고 집으로 오던 아내가 범인이었을까?
아니다 총격은 케빈의 옆집 대령께서 선사한 것이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그려지는 나이들고 굳은 표정의 이 대령분은 정말로 꽉 짜인 자기 아집에 갖혀있는 분이다. 밖으로는 근엄함, 질서, 규율을 표방하지만 안으로는 이해받지 못해서 자기가 창조하고 제어할 수 있는 세계로 침잠되어버린 아들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질서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인 폭력으로서의 권총이 상징되고 진열장 깊숙이 숨겨진 나찌 무늬가 새겨진 접시로 질서의 극한이 만들어내는 메마른 사회가 상징된다.
중요한 것은 이 가정에 사랑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들과 케빈이 함께하는 장면을 보고 절반은 오해하고 절반은 두려웠다고 느껴지지만 어쨌든 그가 총을 버리고 뛰어오는 장면이 눈에 띈다. 타인과 자기를 구별짓고 항상 자기것을 내세웠던 그가 보여준 이상형은 결국 요모양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자 어쨌든 느릿느릿하던 영화는 종지부를 찍게된다. 죽은 아버지를 보면서 다들 어떤 느낌을 받을까? 도망가려던 딸은 굳이 그럴필요가 없어졌을 것 같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이제 이혼소송 받을 염려없이 원하던 사내와 즐길 수 있다. 단 살인자라는 누명만 잘 벗어난 다음의 일이다. 그러면 케빈이라는 중년 가장의 삶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의 장애로서만 존재했나? 아닐 것이다. 그가 온몸을 바쳐 사랑해준 우리의 안젤라는 적어도 한토막 만큼은 기억해주지 않을까? 사랑받는다는 것의 기쁨을 특별히 알려준 남자이니까. 축축한 시선과는 좀 더 다른 따뜻한 담요의 추억도 남겨준 사람. 그런 첫남자로서 남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서도 메시지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자기 삶의 가치를 알아채리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남에게 사랑을 베풀기는 참으로 어렵다. 다음 고립된 섬을 넘어서기 위한 첫걸음은 서로의 삶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부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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