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나온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비디오로 소개된 것은 최근이었다. 이유는 물론
상관 살해나 베트남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마음씨 좋은 한 시골 청년이 어떻게 살인기계로 변해가고 마침내 훈련교관을 죽이고 자신까지 목숨을 끊는지 그 과정이 쭉 다루어진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이 청년의 눈모습이 변하는 것은 동료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다음이라는 점이다. 늘 약한자를 보호하라는 가르침이 있는 사회였지만 때로는 이것이 실천되지 않고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여준다.

장면이 바뀌어 베트남으로 이동하게 된다. 전방을 향해 헬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하나의 범죄를 알게 된다. 헬기의 전투병은 그냥 발 아래의 논위의 농부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기관총을 날린다. 그들이 정말 적인지 아니면 그냥 양민인지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물론 주인공들은 구역질을 하면서 전쟁 자체의 목적에 회의를 가지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한국의 ‘노근리’를 보게 된다. 얼마전 경의선 복구를 위해 나온 철도기관사가 신문과 인터뷰 한 내용을 보면 자신이 몰고 안 마지막 기관차를 세운 미군이 잠시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다고 한다. 느낌이 이상해서 밖에 나와 서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미군 부대가 기차안으로 무차별 사격을 했다고 한다.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전쟁의 실체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전쟁의 의미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사용한 기법은 은유를 담은 대조법이다.
잠깐의 여흥거리를 위해 오토바이에 실려 몸을 팔러 온 여인이 있었다. 쫙 빠진 날씬한 몸매였지만 결국 많고 적은 달러에 자신을 내맡기는 그런 욕망풀이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정찰에 나선 분대는 스나이퍼의 예리한 솜씨에 막혀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한명씩 희생을 당하자 전진할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 결정하지 못한채 본부에게 탱크를 지원부대를 보내달라고 아우성 친다.
도대체 저 너머에 얼마나 많은 적들이 있어서 우리에게 이렇게 예리한 공격을 퍼붓는가 하고 고심을 했다.
계속 전진할지 아니면 후속부대와 탱크의 지원을 받아야 할지를 놓고 서로들 한참 싸우다가 복수심에 불타 모두들 목숨을 걸고 돌격을 해보았다. 그렇게 적에게 접근해 보니 상대는 단 한명의 스나이퍼 였다. 총격을 날리자 뛰어났던 솜씨의 스나이퍼가 뒤돌아서는데 그 모습을 보니 젊은 여인이었다. 청초하고 제법 배운 듯한 그녀의 얼굴은 아직 무척이나 어려보였다. 총을 맞고 쓰러져서 최후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정말로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신에게 명복을 빌기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씩씩한 미군들은 조물주 앞에서는 유한한 존재들끼리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껴간다.
앞서 값싼 욕망의 대상이었던 한 여인과 지금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던 이 여인 둘을 놓고 비교해보자. 하나는 한없이 무시하던 존재였지만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은 바로 이렇게 예리한 스나이퍼로 나타난다.
힘도 그리 없고 자원도 무기도 별로 없지만 정신력과 삶의 지혜로 거대한 제국을 어떻게 물리쳤는지를 웅변적으로 나타내주는 장면이다.

플래툰이 엄청난 흥행을 거두며 베트남 전쟁을 화두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쟁에 찬성했던 사람이나 반대했던 사람 어느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심하게 말하면 제 멋대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했다. 진지한 고백이라는 측면에서는 큐브릭의 이 작품이 훨씬 뛰어난 성과를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