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문화가 뒤섞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우선 성격부터가 그렇다. 눈앞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는 칼의 놀림이 보인다는 점에서 무협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무협영화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우선 선과 악이 분명치 않다는 점을 주의 깊게 의식해야 한다. 주인공들을 결코 선인과 악인으로 양단간에 나눌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의 관계는 서로 간에 교묘하게 얽혀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어떤 사람과 애정이라는 관계로 이어져있다.
심지어 어머니, 아버지를 모두 잃은 젊은 여인도 가슴에 담은 연심을 원수를 갚기 위해 준비하는 순간에까지도 표현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정이라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지만 놀라운 것은 가까이 있던 사람들도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들도 서로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수련은 리무바이가 자신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고 호는 용이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모르고 여우는 사랑하는 제자가 자신을 배반한지도 모르고 용은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결국 확실한 것은 어디에도 없는 혼돈스러운 세계다.

가장 악에 근접한 ‘여우’의 경우부터 살펴보자.
살인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는 면에서 그녀는 분명 악인이다. 그래서 리무바이가 복수로 갚아야 할 일생의 원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도 실은 리무바이의 스승과 살을 섞을 정도로 매우 밀접한 사이였다. 욕망으로부터 초월해야 할 도가의 도사께서 여인과 관계를 가지는 것도 우습지만 정작 둘 사이가 잘 되었다면 리무바이가 하늘 같은 사모師母로 모셔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천하제일의 무사 리무바이가 수행하려는 복수의 과제라는 것도 실은 파렴치한 행동을 했던 파계한 도사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된다면 좀 우습지 않은가?
여우를 위한 변명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강호를 누비며 악행을 저질렀던 여우에게도 아끼고 감쌌던 존재가 있다. 바로 그녀의 유일한 제자 용이다. 자신의 무예를 거의 전수했고 후계자로 삼아 노후의 동반자로 삼으려 했지만 어느 순간에 바로 그 제자가 자신을 배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소망만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바로 그 소망이 무너져내린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혼란스럽기는 리무바이 또한 마찬가지다. 무술과 도학에서 가장 완벽해 보이는 그도 실은 솔직하게 사랑 고백 하나 입밖으로 못 내어보낸 정말 ‘난 바보 같이 살았군요’라고 해야 할 사람이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진기를 득도라는 고상한 목적에 집중하기 보다는 인간으로서사랑 고백을 하는데 쏟아야만했다.
이런 바보 같은 삶은 상대역인 수련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보여진다.
리무바이 또한 자신의 무술의 계승자로 용을 택하였지만 이루지 못하고 만다. 그가 그녀의 마음을 바로 잡기 위해 쏟아내었던 무수한 말들이 모두 쓸모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두가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도 없다. 용을 확실히 붙들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고 만 것도 여러 번이고 결국 자신이 바라던 것은 이루지 못한다.

여기에 비해 가장 단순해서 우리가 알기 쉬운 사람은 호다. 비록 마적떼의 두목으로 약탈을 일삼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소년의 순수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서역에서 용을 대하는 행동 하나 하나는 섬세함과 배려가 배어있다. 먼길을 마다않고 물을 길러오는 것이나 그 물에 데운 돌을 넣어 온도를 맞추어 주는 것 노래를 불러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것 모두 지극한 정성이다.
하지만 그도 완전히 용을 얻지는 못했다. 북경에서 만난 용에게서 거절의 메시지를 받았지만 그의 솔직하고 담백한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왜 용은 호를 돌려보내려 했을까? 여자가 한 남자에게서 마음을 떠나게 되는 가장 쉬운 이유는 다른 남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용이 결혼을 앞두었기에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좀 상상력을 발휘해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답은 리무바이다.
이미 용은 변한 것이다. 그녀에게는 더 넓은 세계와 더 높은 목표가 아른거리며 나타난 것이다. 그 시작은 검으로부터 였지만 본질은 최고의 무사가 되는 것을 통해 얻어지는 끊임없는 그리고 결코 눌리지 않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다.

딸자식을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중국적인 전통을 고려한다면 용에게 주어지는 삶은 너무나 뻔한 것이다. 용은 정말로 처절히 주어진 환경에서 일탈하며 알을 깨는 아픔이 어떠하던가 이를 감수할 의지를 갖고 있다.
용은 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개성이 강한 사람이다. 빼앗긴 빗 하나를 찾기 위해서 무작정 말을 타고 마적떼의 뒤를 쫓으며 목숨을 걸었다. 우선 부모로부터 주어지는 결혼이라는 속박은 정말로 참지 못했다. 검에 대한 욕심 또한 최고를 위한 열망이다. 리무바이는 그런 소망을 이루게 해줄 수 있는 길이다. 그녀는 또한 리무바이가 자신에게 미묘한 마음이 없지 않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용의 개성을 안다면 수련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수련이야 말로 리무바이가 애정을 갖는 여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런 용에게 이제 그 목표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용은 무작정 따라가지만은 않는다. 어떨 때는 투정도 부리고 반항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움직인다.
대나무밭의 실강이는 그런 심리를 묘하게 나타내는 장면들이다.
결국 리무바이가 던져버린 검을 찾으려다가 물에 빠지고 여우에 의해 건져져서 이야기는 틀어진다. 리무바이가 동굴로 찾으러 왔다가 미향에 중독된 용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진기를 끌어올려 그녀를 치료하려 한다. 이때 용이 던지는 “내가 여자로서 좋은 것인지 제자로서 자질이 좋은 것인지”라는 메시지를 담은 말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가지는 미묘한 심리를 잘 드러내보인다.
리무바이가 직접 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혹심이 아주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묘한 관계다. 하지만 이렇게 다정한 공간도 사실은 여우가 최후의 승부를 걸기 위해 만들어 놓은 함정이었다. 본래의 실력대로라면 리무바이를 꺽기 힘들었기에 용의 치료로 힘을 빼도록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여우는 결국 리무바이의 칼에 거꾸러진다. 하지만 그녀가 마지막으로 쏟아내는 말들은 이루지 못한 소망에 대한 아쉬움과 앞길을 가로막은 스승을 배신하는 제자에 대한 서러움으로 가득차 있다.
이제 단 하나의 독침에 의해 리무바이는 사경에 빠지고 그를 구하기 위해 용도 혼신의 힘을 다해 말을 달리고 약을 만들어 가져온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헛되게 되고 말았다. 리무바이는 마지막으로 수련을 사랑했다는 말을 남기고 가버리고 만다.

주인공 용에게 놓인 길을 보면 선으로도 악으로도 열려있다. 많은 가능성을 안고 있지만 결국 아무길로도 가지 못했다. 선과 악의 고수 모두에게서 그런 사랑과 기대를 한몸에 받은 용이야말로 가장 행복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모든 것을 가진 듯해도 다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그런 불가사의한 인생의 법칙이 놓인 것이다.
수련의 마지막 충고에 따라 무당산을 방문한 용은 호를 만난다. 이제 호는 용의 육체를 다시 얻었지만 그 때 용의 표정을 보면 결코 마음을 완전히 내어준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옆자리가 허전함을 느끼고 용을 찾아 호가 뛰어나가보니 그녀는 산과 산을 연결하는 높다란 다리에 서 있었다. 용은 호에게 묻는다. 아직도 병든 부모를 위해 산에서 뛰어내린 소년의 전설을 믿느냐고. 호는 순수하기에 그렇다고 답을 하고 서역으로 같이 돌아가자는 소망을 빈다.

용이 끝까지 바라던 것은 무엇일까?
최고가 된다는 것 그리고 완벽한 자기 컨트롤을 가진다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혼란스러운 ‘속세’를 넘어 존재하는 ‘도’라는 세계로 넘어가려 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거기에는 진리만이 가득해 더 이상 번민도 고통도 없는 것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하늘을 가르며 날라가는 용은 정말 소망을 얻었을까? 도사들이 모여 도를 닦는 무당산이다보니 정말로 신선이 되어 훨훨 날아다니게 된 것일까? 감독은 관객의 상상을 막지 않는 방향으로 화면을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용이 소망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 작품은 어떤 액션 영화보다도 훨씬 관객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소재로 보검이 등장한다는 점은 주인공의 개성과 솜씨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처음에 전문가인 대장원의 주인들이 모여 들어 검을 보고 가치를 인정한다.

갸녀린 여인에게 떼로 덤비는 강호인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그들의 행동은 결코 명예롭지도 못했고 실력 또한 미치지 못했다. 철비완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실은 옷속에 감춘 쇠판에 의지한 것이라면 정말 실소를 참지 못한다.
요즘 세상에도 여전히 나는 대단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속을 까보면 이렇게 팔 주위에 쇳덩이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속물들을 내힘으로 꺼꾸러트리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용과 같은 강호인이 활약한다면 알아보고 박수를 쳐줄 용기는 가지고 있다. 설혹 그런 용기는 없다고 하더라도 철비완이 팔뚝이 정말로 굵은지 아닌지도 모르며 고개 숙이는 그런 이류인간만 되지 않더라도 행복하겠다.

주변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
영화의 앞에 표국이라는 장소가 먼저 등장한다. 이것은 Fedex와 같은 사설 우체국이다. 수호지에 등장하는 것 같은 산적들을 비롯해 많은 위험이 있기에 귀한 물건을 안전하게 운송하려는 사람들이 이용했다. 그만큼 운송을 책임진 사람들은 무술에 능하고 목숨을 걸고 신용을 지킬 수 있는 책임감이 분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배경으로 담은 경관들이 너무 아름다워 넓게 펼쳐진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중국의 산은 잘 보면 한국의 산과 다르게 꽤 높으면서도 봉우리가 완만하게 되어 있다.
구름을 내려보는 무당산의 모습은 정말로 한번 다다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만든다.
서역의 풍경 또한 아름다웠다.
항상 관객의 눈을 위해 아름다운 장소를 탐색하느라 수고하는 제작자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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