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베스트셀러 한국문학선 20
채만식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호남평야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물이 바다를 만나며 힘을 다하는 곳에 군산이 있다. 물은 얕고 어두웠다. 호남의 넓은 평야는 풍요를 가져왔고 백제의 여유로움을 만들었다. 이제는 부스러진 기왓장이나 무덤 속 벽돌에서 볼 수 있지만 그들의 미소는 평야의 여유를 잘 보여준다. 
옛부터 평야의 여유를 탐내서 무장한 집단들이 밀려왔다. 백제를 세운 부여족,신라,고려,조선 그리고 왜군 까지 이 땅과 쌀을 노렸다.

그렇지만 군산의 근대는 유쾌하지 않았다. 외세가 이 땅에서 가장 탐한 것은 쌀이었다. 바다를 헤치고 항구가 만들어지고 세관이 세워지며 철도와 도로가 놓여진다. 이 모든 것이 쌀 때문이다. 
과일에 빨대 하나 꼽고 쭉쭉 빨아들이 듯이 군산의 기능은 호남의 너른 벌에 꼽힌 빨대였다. 
빨대의 주변에 여러 사람들이 놓인다.
근대의 규칙은 돈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의 관계는 돈과 가치의 교환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장치로 세관,은행과 미두장이 놓인다.
막대한 거래가 수치화 되면서 이루어지는데 결과물은 숫자로 측정되고 각종 증권에 기표된다. 이 기관들 모두 그 핵심으로 역할을 한다.

도시는 새로 반듯이 정비되어 혼마치니 하나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깔끔한 상하수도가 만들어진다.
화려함 만큼 유쾌함도 생긴다. 근대인의 오락을 위한 기생집이 생기고 소리가 울린다.
이 모두는 돈이 필요로 한다.

돈의 맛을 보려다가 시골 지주는 땅을 팔았고 고종은 벼슬자리를 팔았다. 덕분에 서울 시장에 해당하는 한성판윤이 수백번 갈렸다고 한다.

근대는 어떤 세상이었을까? 
매력이 있었다. 새로운 물자가 있고 새로운 기술이 있었다.
세상을 보면 크고 작은 욕망들이 움직이고 가만 보면 근대는 노력하는 이에게 성취를 안겨준다.
약국,병원 등은 제법 훌륭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신분을 올리는 사람도 다수 나온다. 
반면 과거의 신분에 기대거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성질 급한 사람들의 몰락은 자명하게 보여진다.

자본주의의 꽃은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신분이 사라지고 주도권이 없어졌지만 땅을 가졌던 이들이 돈 시장으로 몰려간다.
처음 군산에 올 때 고향집과 논을 팔아 한 몫을 가졌던 이들이지만 근대라는 체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그 맛에만 취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새로운 게임의 속도와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패배는 그들의 몫이다. 밑천은 점점 줄어 마지막에는 딸랑 소리가 난다.
왜냐고?
군산의 거래는 오사카(대판) 시세를 전화로 받아서 이루어졌다. 바로 그 오사카는 세계 최초의 선물시장이다.
1600년대 중반 이후 만들어진 쌀 거래소에서 그들은 사고 팔기를 반복했다. 거래에서 이기려고 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땅에서 움직이는 농부의 욕심 까지 다양한 변수를 공부해서 그들의 노하우를 축적했다.
그들에 비해 조선인들은 생초보였다. 판판히 털려나간 조선인들의 눈물은 못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넘어간 땅문서들을 차곡 차곡 챙긴 일본인들이 대농장들을 만들었고 지금도 군산벌 주변에 널려 있다.

손자가 말했듯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중요한데 미두장에서의 싸움은 백전백패이니 싸움에 뛰어들지 않음이 능사였다.

자 땅 빼앗기고 벌이도 없는 이들이 살아나려면 어찌하려나?
마지막 수단인 몸을 팔게 된다. 그걸 못하겠다면 자신의 몸이 아니면 딸자식을 파는 것이다.
배우지 못한 가난한 이는 기생집에 팔지만 글줄 익힌 정주사는 초봉이를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팔게 된다.

좀 큰 눈으로 보면 겨레의 전승 심봉사와 심청 이야기가 반복되는 꼴이다. 군산 바로 아래에는 변산이 있다. 변산의 죽막동에는 고대 뱃길의 안녕을 바라는 제사터가 있다. 
본시 서해 바다는 얕기 때문에 물길이 겉과 달랐다. 이에 제대로 적응 못하는 배들은 침몰하기 일수였고 이를 막아보겠다고 인신공양이라는 극한 수단을 택했던 것이다.
심청은 그냥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때는 용왕이라는 구세주를 문학으로 만들어내어 원혼을 달래었지만 과연 오늘 그런 용왕이 있을까?

채만식은 그 참혹한 현장에서 마구 희생당하는 초봉의 원함을 그냥 잊지는 않으려고 했다. 세세한 묘사를 통해 속고,강간당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종국에는 살인범이 되는 그녀의 삶을 기록했고 더해서 변명을 해주려고 한다.
착하디 착한 그래서 더 참혹한 비극속으로 끌려가는 그녀의 삶에 누가 돌을 던지랴. 후일 발생하는 정신대 문제 등의 씨앗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눈물을 닦아주려고 한다. 펜대로만 말이다. 그게 인텔리겐차의 한계 아닐까? 아무리 큰 생각을 해도 오직 손에 쥔건 펜 뿐이니 말이다. 그것도 총독과 일왕도 수상도 읽지 않는 변방의 신문지 종이 쪼가리 밖에 올릴 수 없으니 그가 느낀 절망이 얼마나 컸겠는가?

심청의 위로 다음으로 비난의 화살이 날아간다.
누구냐면 심봉사에게 말이다.
눈이 봉사인 걸 모르면서 덕분에 딸을 팔아 삶을 유지하려는 무지하고 한심한 인간들에 대한 통렬한 공격이 된다.

그렇게 근대판 심청전은 흘러간다.

나는 그의 소설을 통해 근대를 제대로 읽게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돈앞에서 탐욕을 발휘하는 은행원 태수, 친구인척 수발을 들다가 종국에는 등에 칼을 꼽는 형보라는 인물의 묘사는 정말 탁월하다.
특히 형보라는 악인의 구체성을 그려내는 건 대단한 솜씨다. 현대사회에서도 먹물이 급하게 돈 맛 알면 태수가 되기 쉬운데 꼭 그 주변에 형보와 같은 인간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과 속을 알기 어렵다는 건 평생 배우지만 평생 깨닫지 못한다.
이를 내다 보고 그려내는 작가의 글솜씨에 정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간은 공간 자체로는 이해되기 어렵다. 삶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근대박물관의 사진 속에서나 찾을 수 있다. 모형이나 디오라마 등도 그냥 일면일 뿐이다.
중요한 건 마음이다.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도구는 소설만한 것이 없다.
채만식은 정말 훌륭히 그 역할을 해낸 것이다.
큰 재주를 가졌으나 다 쓰지 못했다. 왜냐? 올라갈 자리가 없다. 근대의 기회는 극히 일부에만 열려 있던 덕분이다. 그 차별에 분해서 변호사 간디는 독립운동가가 되었지만 채만식에게는 그런 용기는 없었지만 대신 기록자로 소임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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