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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월 스트리트
올리버 스톤 감독, 대릴 한나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뉴욕은 신비한 마력을 가진 도시다.
세계적 미술품을 담고 있는 박물관, 명품으로 가득찬 5번가, 세계 최고 수준의 오페라와 뮤지컬 등 마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단 돈이 있어야 한다.
돈, 맞다 돈 하면 뉴욕이다. 세계 최고의 증권거래소가 이곳에 있다.
돈이 가장 필요한 곳에 돈을 놓고 다투는 싸움터가 함께 있는 셈이다.
주인공 폭스는 이제 막 뉴욕 월가의 증권사에 들어간 신참이다. 출신은 평범하다. 근로자 집안출신으로 학교는 뉴욕에 소재한 명문대학을 나온 수재다.
그는 가난하고 똑똑하고 무엇보다 성공을 갈망한다.
그에게 증권사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올라가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
증권사는 밖에서 보면 신비한 공간이다. 돈이 돈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영화에서 내부를 들여다 보니 꼭 그런 건 아니다.
사람들은 증권사를 언제 만날까? 이 건 꼭 오릅니다 하는 권유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말 이들이 미래를 내다 보는 것일까? 영화속 증권사 직원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보면 아니올시다다. 나이 든 직원은 이 질문에 내가 그걸 알면 여기 있겠냐고 반문한다. 전화통을 붙들고 고객에게 아이디어를 전파하던 이들도 지나가는 누군가가 흘린 정보에 갑자기 말이 바뀐다.
증권사는 몇 가지 유형의 사람들로 나뉜다. 고객으로 부터 모집한 돈을 모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 기업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가 있다. 폭스의 일은 둘 다 아니다. 고객계좌관리자로 영업에 가까운 편이다.
왜 영업일까? 그래야 바깥의 큰손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업이나 브로커는 어떤 고객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진다. 큰손을 잡으면 거래도 커진다. 수수료도 당연히 많아지고 회사내에서의 위치도 달라진다.
증권사의 수익은 주식의 거래에서 나온다. 쉽게 돈을 번다는 아이디어를 고객에게 전파해서 거래를 일으키고 수수료를 챙긴다.
그렇다면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할까?
큰손을 잡아야 한다.
큰 손을 물기 위해 폭스가 하는 노력은 정말 가상하다.
생일선물 들고 직접 방문하는 건 기본이고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한다.
돈을 벌려면 미래를 알아야 하지만 미래를 읽는다는 일은 예언자가 아닌 다음에야 정말 정말 어렵다.
큰손들은 그래서 정보를 원한다. 남이 모르는 아주 신선하고 생생한 정보를 원한다.
이런 정보가 세상에 널려 다닐까? 누구나 아는 정보로 돈을 벌기는 어렵다.
남보다 빠르게 정확한 돈 되는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남과 방법이 달라야 한다.
폭스도 이제 오토바이 타고 비행장 쫓아가서 행선지 알아내기, 청소부로 둔갑해서 남의 회사 서류 뒤져보기 등 각종 비기가 튀어나온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인쇄소에서 상대방 제안서 빼내는 일도 기업 경쟁에서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기업간 합병거래를 하는 변호사 친구를 만나 정보를 받고 이익을 주는 거래를 한다. 그러면서 세상일을 돈으로 해석하는 사고방식에 점점 익숙해진다.
참고로 우리 나라에서도 특목고나 토익 명문 학원을 보면 문제를 빼내서 가르치는 방법을 택했다. 이기기 위해 게임의 규칙을 바꿔버린 것이다.
하여간 노력에는 대가가 주어진다. 고객이 만족할수록 대가도 커진다. 상류사회가 보여주는 단맛은 작지 않다. 한가지씩 맛 보면서 폭스는 변해간다. 자신의 수입으로는 들어가보지도 못했던 레스토랑 등 상류사회의 공간을 하나 하나 살피게 된다.
달콤함에 취할수록 그는 그 사다리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진다.
맨하탄의 전망 좋은 아파트, 고급 가구와 예술적 취향으로 채워진 공간 그리고 함께 할 멋진 애인 등이 보상이다.
미술품,명품가구,미식,미인 이 모두에는 아름다움이 들어간다. 귀족의 취미인 아름다움을 현대인이 즐기기 위해서는 새로운 신분인 돈으로 치장한 노블리제가 되어야 한다.
이런 그에게는 이제 아버지의 고지식함 정도는 매우 우스워보인다.
세상은 일하는 형태에 따라 두 가지로 그룹으로 나뉜다.
한쪽은 블루칼러다. 물건을 만들거나 다룬다. 근면하고 성실하지만 벌이는 작다.
다른 한쪽은 골드칼러다. 돈을 숭배한다. 발빠르게 움직이고 모든 것을 거래대상으로 만들어 높은 수익을 만든다. 그리고 매우 이기적이다.
금융은 원래 불임산업이다. 아무 물건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이로부터 가치를 만들어낸다.
그것도 엄청난 규모의 가치를 만들고 이를 독식해버린다.
바람직한 현상인지는 다른 각도의 질문이다. 아마 불만 많은 이들의 투정으로 취급될 것이다.
85년이라는 시점을 보면 미국은 70년대 말 베트남전쟁과 석유파동에서 나온 인플레 압박을 고금리로 대응하고 있었다. 금리는 증권의 적인 덕분에 증권시장은 침체를 거듭하고 있었다. 오래된 트레이더들도 갈피를 못 잡고 증권시장은 죽었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덕분에 주가는 내려가서 종종 기업 가치보다도 아래에 머무른다. 이 때 새로 등장한 기법으로 돈을 끌어 모아 기업을 인수하고 이를 잘게 쪼개 팔아 단기차익을 얻는 레버리지 바이 아웃이 인기를 끌게 된다.
고든 게코는 이 분야에서 개척자였다.
이 시대를 다룬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의 리차드 기어도 같은 역할을 했다.
자유주의 경제에서는 신종 기법은 규제보다 앞서간다. 도덕적으로 비난받더라도 일단 돈부터 챙기기 마련이다.
그런 세계에 푹 취해있던 주인공은 옳게 살고 있는 것일까?
화는 복 속에 있다.
영광속에 그늘이 있고 올라가면 내려와야 한다.
자연은 우리를 여름이나 겨울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가 노조위원장으로 있는 항공사의 경영권 인수를 적극 권했지만 차익만 원하는 게코의 술수에 놀아났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돈을 만들어주는 페이퍼와 금융거래의 숫자 안에 놓인 사람들을 발견하면서부터다. 페이퍼 속의 숫자들의 조정이란 그 숫자와 연결된 사람들의 삶이 바뀌는 것이다. 오래 일한 엔지니어들의 실업, 그들 가정의 파탄, 자부심의 사라짐 등 피와 살이 있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자신이 하나였던 시절을 생각해낸다. 방학이면 틈나는대로 공장에 가서 더위에 기계 기름을 몸에 묻히면서 땀을 흘렸던 기억들이 새록새록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바로 그 사람들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삶을 파괴하는 몬스터의 맨 앞에서 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부터 벌어진 갈등으로 치열한 주가 조작전이 이어진다. 게코의 수법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를 역이용해서 주가를 흔들어 엿을 먹인 것이다.
원래 포커에서 패를 읽힌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돈을 벌 수는 없다.
폭스는 중간에서 패를 훔쳐 보아 상대에게 넘기는 역할을 한 것이다.
덕분에 게코를 엿먹인 것 까지는 좋았지만 워낙 튀는 행동으로 그는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타협책으로 그는 게코의 말을 훔쳐 검찰에 넘긴다.
영화는 월스트리트의 단면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누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행동하고 그렇게 해서 세상이 돌아가는 지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깨달아야 할 세상의 이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깨닫지 못한다. 먼 훗날인 2008년에 이 욕망은 더욱 커져서 파열음을 일으키고 전세계를 뒤흔들어 버린다. 올리버 스톤은 이들의 모습을 담아 속편 월스트리트2를 2010년에 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