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선거가 떠올랐다.

민주화는 쉽지 않은 투쟁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그 어려운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낸 선거라는 행위는 축제가 될 것이라 당연히 믿었다.
결과는 정말 정말 뜻 밖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광주의 살인마가 대통령? 
지금까지 경험은 무지하고 가난한 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모르고 표를 팔고 공무원들이 부정하고 군대에서는 강압투표하고 이래서 만들어진 결과라 생각했다.
오죽하면 선거가 끝나고 천주교 사제님들께서 결과를 믿지 않고 이건 컴퓨터의 조작이니 받아들이지 말자고 했을까?

여기서 나의 새로운 깨달음은 보수가 매우 두텁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겉으로는 명분, 속으로는 실리다. 특히 배우고 가진 사람이 더한다.
남들이 경멸스럽게 보던 가난한 관악구 달동네는 김대중으로 의식화가 되었고 부자 동네는 매우 급속히 우경화되었다. 
이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내 돈을 지켜야 한다는 보수의식이 형식적 민주화라는 탈을 쓰고 일어났다.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
사람의 저 아래에는 욕망이 있다. 매우 원초적인 욕망이다. 가진 것이 있고 이를 지켜야 한다는 욕망은 지켜주는 자가 누구이든간에 지지하겠다고 나서게 된다.
명분은 그저 명분이어도 된다. 심하게 말하면 새사람으로 얼굴만 바꾸어도 된다.
이 상황에서는 논리로 설득이 되지 않는다. 거창한 명분도 아니다.
정말 내게 도움이 되나요 하고 묻게 된다.

이번 선거는 어떠했는가?

지방선거의 승리에 취해 보수가 두텁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었다.
좌와 우를 오가며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만드는 중간세력의 실체, 그들의 목소리를 너무 쉽게 재단하였다.

박정희의 딸은 이 사회에 상당한 규모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성장의 물질적 혜택을 누린 이들이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는 빚이 그녀의 지분이다. 
이는 논리적인 대화로 정리되지 않는다. 과거를 붙들고 도덕 논쟁을 하려 들어도 이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나타나는 돈을 쫓아 무엇이든 하는 시대를 헤쳐나온 사람들은 생존논리에 강하다.
그냥 그들이 마음의 빚을 갚아야 한다고 마음먹으면 어지간한 대안으로는 극복이 어렵다.
평소에 더해서 이번 선거에서는 어머니의 고향까지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총선이 대선의 전초전이고 이번 아니면 박근혜에게도 기회가 없겠다는 인식이 퍼져나간 셈이다.

박정희에 비해서 민주화시대의 지도자들에 대한 애틋함은 덜하다.
마지막이 대부분 돈과 연관된 문제가 터져나왔다.
반면 박정희는 직무 수행중 사망이라는 비극적 최후도 맞았다.

사람의 업적은 시대가 지날수록 평가하기가 쉬워진다.
특히 중요한 사회간접자본의 경우 지나보아야 그 가치를 제대로 알게 된다.
인천공항을 보면 딱 그런 예다. 반면에 일본을 보면 그런 투자가 점점 헛발질을 하는 모습을 본다.

박정희가 만든 경제적 위업은 시대가 갈수록 빛이 나고 있다. 
특히 지금처럼 자유는 얻었지만 젊은이들이 꿈을 잃어가는 시대에는 그 시대가 점점 로망화될 수 있다. 
역사를 약간 되돌아보면 프랑스 제2의 제정 시기의 나폴레옹 신화같은 모습이 아닐까? 
나폴레옹 시대가 꼭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징집,전쟁으로 프랑스 젊은이들은 수도 없이 이국 땅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지긋지긋해지고 힘도 부칠 때 황제는 몰락했고 이후 경제는 안정되어 제법 살만한 시대가 왔다. 
세월은 나쁜 기억을 더 빨리 떨어내어준다. 그리고 영광의 순간들을 모아 로망을 쓴다.
아마 지금 퍼져있는 시대의 고통이 그런 로망을 만들어내는 동인이 되는 것 같다.

이를 이기고 싶다면 다른 로망을 쓰거나 같은 스토리에 주인공을 바꾸어 새로움을 만들어야 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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