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 Sunn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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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삶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 때는 훌쩍 학창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친구들은 서로 비슷했고 사이는 열려있고 덕분에 자주 다투기도 했던 시절로.. 요즘 내게는 그 기능을 페북이 하고 있다. 추억이 비슷하고 고민이 비슷한 또래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명지대 김정운 교수는 40대 남자들의 고독한 심리를 풀어주는 작용을 골프가 하고 있다고 분석해내었다. 공통된 추억 속에서 속 깊은 이야기를 하면서 바쁘고 치열한 사회 속 공간에서 받은 압박을 덜어낸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40대 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 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수다라는 여성들 특유의 무기도 있다. 하지만 수다의 대상도 일정한 범위에만 머문다면 근본 해결은 못 된다. 사회에서의 앎이란 가면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말 속 깊은 문제해결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이 이 영화 써니에 얼마간 담겨있다.

영화의 화면은 고민하는 현재에서 바뀌어 25년 전 여고시절로 돌아간다.
때는 바야흐로 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철권 통치 시기다.
거리에는 전경이 경비를 서야 자유질서(?)가 유지된다. 철모르는 폭도들로부터. 국기하강식 때는 엄격하게 경의(?)를 표해야 하는 사회다. 학교 또한 엄격한 선생님의 권위적 통치가 작용되는 공간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수 천년 전부터 중국사서에 묘사되는 음주가무의 전통이 뿌리 깊은 민족이다.
덕분에 공적 공간에서 소화되지 않는 자유에 대한 갈증은 사적으로 출구를 찾는다. 노래방도 나오기 전이니 부모님 출타하신 빈집을 찾아 나선다. 노래하고 흔들면서 꽉 막힌 감정을 풀어낸다.

그런데 오늘로 돌아오면 그 소녀들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여유 있는 집의 조신한 주부, 빈한한 집에서의 착실한 며느리 또는 ..
모습은 다양하지만 어째 다들 돈과 가족이라는 고민을 안고 있는 듯 보인다. 어떤 사람은 많이 어떤 사람은 적게 하지만 돈에서 아주 벗어난 경우는 드물게 보인다.
작가의 재치 하나는 보험 아줌마를 캐릭터로 넣은 것이다. 무척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혹 이 표현이 보험업계에 종사하는 여성분들에게 실례가 된다면 죄송 ^^; 영화의 표현이 그런지라..)
보험은 매우 유서 깊은 산업이다. 워렌 버핏, 삼성 등 많은 기업이 보험을 잘 활용했다. 그럼 거꾸로 보면 가입자와 종사자에게는 그렇게 좋은 사업은 아닌 것이다.
그런 일에 열심히 열심히 매달리며 보험왕을 위해 뛰는 삶의 우울함을 영화는 상징적으로 표현해준다.

자 이 추억과 고민들의 간극은 어떻게 메워질까?
세월의 거리 만큼이나 꿈과 현실의 거리도 잔뜩 커져있는데..
영화의 감독은 수수한 유머로 터치하면서 실마리를 제공해간다.
다 이야기하면 스포일이 되고 근래에 재미있게 만들어 준 작품이라고 과감히 추천드리고 싶다.
한국 영화 이만큼 노력했으면 한번 밀어 주어야 겠다는 의무감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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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6-0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 동창들끼리 보기 좋다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였군요. 하강식때 부동자세로 서 있었던 추억들이 새로운데, 이 영화를 보면 여러모로 느껴지는 게 많겠군요. 사마천님의 리뷰를 읽어보니 시간을 내서 이 영화를 보러 가고 싶네요.

사마천 2011-06-07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도 가슴 뭉클함도 함께 있었습니다. 386 세대에게는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영화였습니다. ^^

oren 2011-06-09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께 '써니'를 보기 위해 모처럼 영화관엘 갔었습니다. 아내는 이미 여고 동창생이랑 한번 봤는데, 저와 두 번째로 봐도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40대쯤 되어 보이는 아줌마들이 세 명씩, 다섯 명씩 떼를 지어 영화관으로 모여 드는 것도 흥미로웠는데, 영화도 진짜 재미있더군요. 실로 모처럼만에 실컷 웃울 수 있었습니다. ㅎㅎ

사마천 2011-06-09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덕분에 즐거우셨다니 저도 기쁘네요.. 영화의 감동이 다시 밀려옵니다. 조금 생각을 자유롭게 하면 영화도 잘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내일 6월10일을 맞아 촛불집회가 열린다니 영화의 장면과도 포개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