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들의 시대 - 에도시대 300년, 일본은 어떻게 경제번영의 초석을 마련했는가?
와키모토 유이치 지음, 강신규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거상들의 시대>

일본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 놀란 점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오사카 성이었다. 전체적인 넓이도 놀라웠지만 기단부를 이루는 돌 하나의 크기는 사람 키의 몇 배에 달했다.
그리고 만들어진 나의 의문은 “저 돌은 과연 어떻게 가져왔을까?” 였다.
주변에 놓여진 해설을 보면 돌들은 일본 각지에서 가져왔다.
운송수단은 분명 배였을 터인데 그 배의 크기는 엄청났겠구나 하는 감상으로 이어졌다.

경복궁과 오사카 성 단 둘만 비교해봐도 일본은 결코 만만한 나라는 아니었다.
그들의 경제력은 다 어디서 왔을까 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다른 탐구가 필요했다.

도쿠가와 막부 치하의 일본은 사농공상이라는 위계질서가 확립되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매우 활발하게 움직였다.

히로시마와 나고야 등을 기차로 지날 때 나오는 거대한 평야는 한국의 여러 평야와 비교해서 훨씬 규모가 컸다. 일본은 국토의 10-20% 정도만 경작지라고 하는데 그래도 전체 규모로 볼 때 한국보다 많은 편이다.

전국의 잉여 쌀을 모아 유통하는 거대한 쌀시장을 오사카에 만들었다. 처음 이런 제도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했는데 실제 그 움직임을 이 책에서 세세하게 묘사한다. 뱃길은 혼슈와 시코쿠 사이의 세토내해 뿐만이 아니라 동해 바깥으로 돌아서 멀리 훗카이도까지 가는 길과 오사카에서 태평양 쪽으로 도쿄까지 가는 길도 있었다.
바깥으로는 나가사키를 통해 네덜란드와 중국과 쉬지 않고 교역을 했다.

이런 활발한 상업적 교역에 핵심이 되는 존재가 이 책의 주인공들인 거상들이다.
가까운 후쿠오카의 상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용되면서 조선 침략의 지원부대가 되고 어떤 이들은 나중까지 가문을 이어 근대재벌까지 발전하게 된다. 무사의 칼날아래서 자신의 전문영역을 만들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는 모습이 놀라웠다.

일본은 돈 맛을 한국보다 훨씬 빨리 알았다. 각종 광산이 먼저 개발되었다.
일본이 임진란 때 조선을 침략할 수 있었던 수단도 광물이었다. 금,은,동을 파내서 이를 네덜란드 등과 총포로 바꾸어 그 무기로 조선을 쳐들어 올 수 있었다. 참고로 일본의 활은 매우 품질이 낮아서 별 도움이 안된다.

이 돈을 구하러 네덜란드 상인들은 쉬지 않고 달려와서 한동안 일본 사회를 융성하게 만들었다. 그런 광물이 다 파헤쳐지자 상인들의 발걸음은 뚝 그쳐버렸다.
교역이 줄자 각종 분야에서 자급자족 하려는 노력이 나온다.
특히 면화를 가져다 자체 양성하는 방법에서는 고려의 문익점 모습이 떠오른다. 일본의 각 지역이 면화를 재배하고 이를 판매하면서 또 하나의 시장이 만들어진다. 각종 대체작물이 재배되고 이를 유통하면서 전통적인 무사의 지위는 내려가기 마련이다. 농부와 지배자의 관계에서 기준은 옜날식으로 쌀만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커져버린 상인의 힘은 오사카의 유명한 지명 도톤보리에서도 나타난다. 도톤이라는 상인이 굴착한 운하 위의 다리로 지금도 제 1번의 관광포인트다.
오사카는 이렇게 사방을 모두 상인의 힘으로 재건했다고 한다.
나아가 당시 오사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대규모 선물거래서가 만들어졌다.
시카고가 운하를 통해 사방에서 유입되는 곡물과 상품의 선물거래를 하면서 발전했던 것과 비교된다. 오사카는 전국을 연결하는 해운 네트워크의 핵심이었다.

인상적인 상품의 하나는 다시마였다. 멀리 훗카이도까지 이어지는 다시마 길은 오사카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다시마를 핵심으로 하는 오사카의 특유한 맛을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야마자키 도요코의 집안도 다시마 상점인데 오사카 남쪽 센바에 가게가 있다고 한다. 다음 기회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나는 오랜 동안 가졌던 의문이 있었다. 왜 조선은 일본처럼 근대화를 하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했을까?라는 의문이다.
점점 깨닫게 되는 사실은 일본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낙후되고 몽매한 섬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은 서양과 일찍 교역해서 그들의 선진 문물인 총과 선진사상인 사민평등의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안경을 또 망원경을 사용했을 정도다.
서양의 의학 또한 네덜란드를 통해 전파가 돼서 상인 중에는 장수한 사람들이 꽤 나왔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근대화를 이루는데 일본 에도시대의 상업적 경험이 적지 않은 기반이 되었다고 보인다.

반면 조선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보듯이 청에 비해서도 너무나 낙후된 나라였다.
아 슬픈 한반도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