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남한산성이라는 하나의 작은 공간 안에 정말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생각들이 함께 놓여 있게되었다.
청과 조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비 된다. 강함과 약함 그리고 빠름과 느림이다. 국경을 단숨에 넘어 얼어 붙은 강을 건너 서울까지 단숨에 달려온 청나라 기병의 빠름에 비해 조선의 판단과 행동은 너무 느렸다. 도성에서 움직일 것인가, 강화로 피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이미 진로가 막혔고 임금 이하 대소 신료들은 남한산성이라는 공간으로 몰려들어가 포위되어 갇히고 말았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공간을 넘어 추운 겨울에 굳이 만나 된 이유는 서로의 다름 때문이다. 여진족이 만든 청은 나라를 세워 단기간에 급속히 세를 확장해가면서 자신을 존중해달라고 주장한다. 어제는 잠시 국경을 넘어와 약탈하고 가는 소규모 오랑캐였지만 이제 중원을 차지해서 동아시아 전체의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큰 포부를 가진 형님이자 어른으로 대접받기를 원한다.
반면 조선은 어제의 시선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여진은 국경에 빌 붙어 식량이나 구걸하는 수준 낮은 문화의 존재로 감히 맞먹으려 드냐 깔아 뭉갠다.
이렇게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있다 보니 두 개의 사고는 누가 옳은지 확인하고자 충돌하게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게 되었다. 말과 정신의 싸움이 아니라 직접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는 진검 승부가 된 것이다.

다름은 조선 안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조정 내에도 대의 명분에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쳐야 한다는 사대부의 비분강개가 있는가 하면 치욕이 짧고 삶은 길다는 실용주의도 있다. 그리고 더욱 큰 다름은 전각 안의 조정의 고관들 사이에서 보다 바깥 성곽 위의 병사나 마을의 촌민들과 사이에서 나타난다.
성곽에 처음 농성 할 때는 다름 대로 전략이 있었고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이견이 적은편이었다. 병졸들은 추운 겨울에 굶주리면서도 사대부와 고관대작의 허우대를 믿었다.
하지만 그 전략은 사실은 낡디 낡아 효용이 거의 없는 무용지물이었다. 임진전쟁 때 조선의 수법은 성을 지키고 있다가 덤비는 적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 것이었다. 임진전쟁의 3 대첩에 포함된 행주와 진주 모두 같은 방식으로 나가서 싸움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성곽에서의 농성전이었다.
지키는 것 만으로는 결단코 적을 땅에서 내몰지는 못한다. 그냥 지쳐 물러가게 만들 따름이다. 임진전쟁에서도 전세를 바꾼 것은 기본적으로 명의 원군이었다. 즉 우리 기준의 3대 대첩이라고 외치는 싸움들로만 이길 수는 없었다.
이번 싸움을 보아도 조선은 전략을 바꾸지 않았지만 이미 청은 이를 간파해 내었다. 그들은 산성을 제쳐놓고 얼어 붙은 강을 넘어 빠른 속도로 왕성으로 몰려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임진란에 도와 주었던 것처럼 원군이 올 희망은 없었다.

하나 더 해서 청은 신기술인 홍이포를 들고 있었다. 외곽 고지 위에 올려 놓은 이 무기만으로도 충분히 조선의 왕이 머무는 농성장안 단박에 박살을 낼 수 있었다. 고전적으로 병력을 직접 동원하게 되면 성곽 한 두 곳은 무너지고 싸움은 단박에 끝난다.
실제 왕명에 의해 바깥으로 나가 청과 대결해 본 장졸들은 상대의 강함을 충분히 알기에 고관대작의 머리에서 나온 전술의 허망함을 잘 알았다. 반면 전각 안의 신료들은 여전히 도상에서의 게임이 주는 호쾌한 결말을 그려내고만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장졸들의 무능함과 불충함을 몰아세웠고 다시 장졸들은 그 명령을 들어가며 허탈함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성곽 내에서의 서로 다름은 점점 커져만 갔다.

성곽 밖을 보면 조선에서의 다름은 더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 한 것은 나루터의 살인 사건이었다. 조선의 고관 대작 김상헌은 백성 하나를 죽여 철 없는 어린 딸아이를 고아로 만든다.
그에게는 왕의 길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여린 백성들의 주림에 대한 공감은 없었다. 그의 칼에 힘 없이 쓰러져간 백성이 한 가정의 아버지이기에 그가 오늘 좁쌀 한 줌을 못 가져가면 그의 어린 딸이 주려야 한다는 그 아픔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려가 없었다. 칼은 휘둘러지고 소녀는 고아가 된다.

서양의 예 하나를 들어 보면 로베스피에르가 만든 단두대는 천하의 공적을 넘어 대의에 불충한 어제의 동료들을 무수히 처형해나간다. 자유여 너는 그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가 하며 비통해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모택동의 문화혁명 또한 대의에 덜 충분한 지식인과 백성들에게 더 제대로 충실하기를 원하면 낙오자에게 과감히 칼날을 날렸다. 과연 그런 혁명들이 영원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답 중에 하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남한산성으로 돌아가 보자. 식량이 부족해져가자 처음에는 초가 지붕을 헐어 말을 먹인다. 기병의 돌진을 통한 과감한 승리를 위해 말이 필수였다. 이제는 성벽에 머무는 장졸들이 기력의 쇠함이 도저히 안되기에 말을 잡아 병사들을 먹인다. 모순과 광기, 이상과 현실의 차이 속에서 서서히 현실론을 우세를 차지해간다.
밥은 모든 문자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답지 못한 삶이라도 사는 것 자체는 하나의 은총이기 떄문에 말이다. 왜 오딧세이를 보면 죽은 영웅이 산 동료들에게 지상에서 천대받는 노예가 되더라도 다시 살고 싶다고 말하지 않던가.

다시 시선을 밖으로 돌리면 산성을 둘러싼 청의 군대가 보인다. 이상할 정도로 그들은 정적이다. 절대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갸우뚱 기울여 본다. 답은 단순하다. 그들은 조선보다 더 멀리 더 크게 보고 있었다.
성곽을 부수어 임금을 죽이는 것은 간단하나 머리가 잘려 팔다리가 따로 노는 조선을 다시 통제하기에는 시간이 급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왜냐면 그들은 중원으로 나가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의 군대는 조선의 궁궐을 굳이 태우지 않았다. 그것 또한 궁궐을 다시 지어야 하는조선 백성의 노고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참 이점은 임진란 때의 일본 보다 한 수 위라는 증거다. 청은 조선 왕의 무덤을 파헤치는 불구대천의 원수 짓도 안 했다. 참고로 칼의 노래를 보면 조선의 왕이 끝까지 추적하려던 것이 선릉 등을 파헤친 일본의 만행이었다.

그럼 청을 이토록 강하게 만든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당시 청은 일종의 사회 혁명을 통해 내부의 에너지를 한데 모으고 이를 밖으로 돌리고 있었다. 사회 구성원 하나 하나를 차별하게 대우하지 않고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다 보니 싸움의 최전선에서 압도적 힘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과거 징기스칸이 몽골족을 통합해서 세계 정복에 나선 것과 비슷한 원리다.
같은 방식의 사회 혁명이 이미 한차례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도하에 발생했다. 히데요시 또한 사회의 가장 바닥에 근접한 곳에 머물렀고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아 천하를 통일하고 동아시아를 흔드는 큰 싸움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주변의 사회들이 내적으로 크게 변하고 다시 그 힘으로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동안 조선은 어떠했는가?
임란 전 조선은 사회와 기술에 무심했다. 기술만 보더라도 일본이 총포를 사들일 수 있던 힘이 된 은의 제련술은 조선의 백성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모두 전쟁을 부른 무지였다. 그렇게 어렵게 몰려 전쟁을 치르는 중에도 임금은 백성과 전장의 장수 이순신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칼의 노래에 잘 나타났듯이 말이다.
그 힘든 전쟁을 끝내고서도 조선은 힘들게 고난을 이겨낸 백성들을 다시 내리쳐갔다. 각종 부역을 부과하고 세금을 뜯어내고 공리공론을 하며 당파 분란만 일으키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렇게 조선에서 버려진 천한 백성 하나가 청으로 가더니 역관의 지위에 올라 조선을 쥐어 흔드는 장면은 일종의 소극이지만 따지고 보면 쉽게 웃지도 못하게 된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다름도 시간이 가면서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싸움이란 승자와 패자를 갈라내면서 이견을 강제로 조정해버린다. 그렇게 청이라는 밖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조선 안에서의 의견도 통일 될 수 밖에 없었다.

모래시계가 마지막에 몰리면 더욱 빨리 내려가듯이 성안에 확 몰려든 사람들을 다 먹일 식량이 더 이상 없었다. 배고픔은 인간을 매우 동물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만들어간다. 인간적인 존재는 대의명분을 찾으며 다양하게 의식의 분화를 겪을 수 있지만 동물에 가까워진다면 대개 비슷한 니즈와 감정을 겪을 수 있게 된다.
소설은 다수의 평범한 대중의 가장 일상적 문제 바로 밥에 초점을 맞추어간다. 아무리 고상한 존재도 먹고 자고 싸는 일상이 없다면 존립할 수 없다. 백성은 곧 땅이요 하늘 인 것이다.
성곽 위 졸병들의 불만, 촌락의 백성들의 불안은 점점 커져서 관료들의 위신으로도 쉽게 제어되지 않게 된다. 이런 압박 속에서 결국 임금은 결단을 내려 성밖으로 걸어 나오게 된다. 임금의 자존감이 죽어 거의 대부분이 사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정말 죽은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사념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인조라는 임금을 만든 서인들이란 광해군의 현실 외교론을 부정하며 대의를 주장하던 인간들이다. 그들이야말로 보고 싶은 곳에 머물러 자족하며 살고 싶었던 존재들이었지만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힘은 그들을 되돌려 똑 바로 자신을 보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지불해야 했던 비용은 무척이나 컸다. 수레 위에 앉아 청으로 끌려가는 양반집 아낙들의 웃는 모습을 씁쓸히 묘사하는 대목은 가슴을 슬프게 한다. 훗날 그들도 환향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많은 백성들이 받은 고통 속에서도 조선에서는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는 못했다. 인조는 머리는 숙였지만 마음을 열지 못했다. 삼전도의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현세자가 가져온 서양 문물과 천주교라는 새로운 대안을 한번에 거부하고 독살이라는 형벌을 내린다. 다시 문은 닫혔고 조선은 효종이라는 과대 망상 환자에 의해 북벌이라는 이념적 대오로 몰려간다. 대의명분을 들고 자신만이 옳다고 하는 리더는 모든 자원을 별 유용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은 사업에 소모해버리면서 대내적으로는 절대 복종만 강요한다.
그렇게 닫혀버린 시간이 오래 오래 계속되다 보니 훗날 박지원과 같은 실학자들이 연행길에 올라서 보니 조선은 너무나 너무나 낙후된 나라가 되어버려서 안타까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베스트 셀러로서 이 소설이 현대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냥 읽어가면 슬픈 옛 이야기를 다룬 하나의 소설이지만 읽히는 방향은 여러 갈래가 될 수 있다.
좌에서 읽는 방법이 다르고 우에서 읽는 방법이 다르다. 덕분에 나도 내 방식의 독법으로 주장을 해보고자 한다.
소설을 처음 다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존재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었다. 다음은 노무현, 또 그 다음은 한나라당의 극우 보수 골통들이었다.

김정일이 얼마 전 노무현을 만나면서 나온 정상회담 기사를 보면 메추리는 몇 일간 키우면 가장 맛있다거나 와인 고르기 등 화제가 나온다. 백성이 굶어 죽지 않으려 국경을 넘어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국가의 수장이 과연 할 짓이 이건가. 왜 스스로 백성을 버렸던 조선의 임금들, 그리고 밖에 변화에 문을 닫고 내식대로 살면 충분하다가 강제하는 효종의 모습을 다시 보아야 하는가? 물론 그들도 할 말은 있다. 역사를 이끌어간 힘이 자신들의 편에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청춘을 바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하지만 말이다 정말 진보라고 주장하려면 나아갈 진, 걸음 보라는 의미에 맞게 내일 그 세상이 온다고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미 저바린 꿈을 강조만 한다면 사이비 종교집단과 무엇이 다를까? 현세에서 천국을 만들겠다고 외치고 이를 방해하는 미제에 항쟁하라고 백성을 독려하는 행위는 이미 도그마다. 덕분에 북한은 인조 시대의 거대한 남한산성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최근에 반가운 일 하나는 이제 그들이 막 그 문을 걸어서 나오려고 하는 점이다. 종전 선언을 통해 한국전쟁을 끝내고 진정 민족의 힘이 하나되려고 하는 순간이 막 닥치고 있다. 그런데 이 시대를 거꾸로 하며 안보론을 외치는 한나라당의 골통들은 어떠한 존재들일까? 그들 또한 인조와 효종의 또 다른 모습이다.
무릇 골통은 좌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우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노무현과 그를 따르는 빠들도 골통이다.

이 모두의 공통점은 바로 닫힌 세계에 사는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스스로를 높이고 현명하다고 주장하는 소피스트 같은 자들은 사실은 어리석은 인간이요 오히려 자신이 알지 못하기에 끊임없이 물어가는 소크라테스야 말로 진정한 현인이기 때문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보자.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가. 바로 교훈을 얻지 못한자는 다시 한번 그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쟁으로 갈라지고 자신의 이상론에 푹 빠지고 그 이상을 다시 백성에게 가하면서 그 백성이 느끼는 진정한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존재들 이 모두가 인조요 서인일 것이고 그들의 통치에 눌린 백성은 모두 남한산성이라는 공간에 갇힌 존재가 된다.
가장 아픈 비극이야 말로 우리를 깨우쳐 주고 한 단계 위로 고양시켜 줄 수 있다. 진정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남한산성이라는 비극을 통해 우리를 성찰 할 기회를 맞지 않았는가? 바로 그점이 김훈과 이 소설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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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7-11-15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남한산성.이 '인조'때의 파란만장한 사건들 얘기 였군요. 저는 조선왕독살사건.이라는 책을 통해 그때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었는데요. 극단적 보수주의의 극치 '서인'들과 '인조'의 우물안개구리식 사고방식에 한숨이 다 나오더라구요. 화도 나구요..요즘 정치인들 하는 꼬락서니와 선조들의 행태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발전 가능성이 없는건가..라는 비관적 체념까지 하게 되더군요. 기회되면 한번 남한산성 읽어보고 싶네요. 비록 김훈 작가의 책이 저랑 코드가 좀 안 맞는것 같긴 하지만..리뷰 잘 읽었습니다.

사마천 2007-11-1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에는 코드가 잘 맞지 않더군요. 마초,보수,조선일보 반면 경력을 꼼꼼이 읽어보면 한겨레도 있어요. 어느편인지 처음에는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이 책도 좌에서 읽는 방식과 우에서 읽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쨌든 양쪽에 읽혔다는 점에서 작가는 마케팅에 성공했던 것 같아요. 참 한명기님의 <광해군>이라는 책이 참 유익했습니다. 아마 그 책이 마음에 꼭 드시리라 보입니다 ^^

perky 2007-11-16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한명기님의 '광해군'. 언제 기회되면 읽어볼께요. 제목부터 확 끌리네요. ^^

사마천 2007-11-1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학 책도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줍니다. 비슷하게는 스펜스의 <옹정제> 등의 책 스타일입니다.

상념 2007-11-16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선조 중후기의 사고 방식을 보면서 김정일의 북한을 떠올린 점이 눈에 확 띄네요. 우리의 정당정치는 그 시절의 당파싸움을 극복 한 것일까요? 왜 당파싸움의 형태는 그리 변치않고 300여년전의 구태를 답습하는지... 논문 꺼리 같네요.

짱구박사 2007-12-06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이제 김훈을 읽지 않아요...
사람 맘 속에 있는 슬픔을 죄다 긁어내 상처를 도지게 만드는
신비한 능력이 그에게 있지요.

2007-12-07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