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에 참여해보면 열심히 날밤을 새는게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일이란 input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output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Input이 많고 output이 적으면 노력은 하였으나 무엇이(아마 자질 내지 머리가) 부족한 사람으로 찍히게 된다.
프로젝트 성과를 평가 받는 가장 중요한 자리는 보고회다.
최종, 중간 등 각종 보고회 자리는 수개월 혹은 수년간 일한 결과가 순간에 평가 받는 자리가 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사 대표 혹은 임원 등에 대한 명확한 파악이다.
고위층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세세한 논리나 사실에는 약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랜시간 같은 조직에 머무는 동안 쌓아 올린 지적인 경륜이 있다.
그 결과 일종의 탁월한 감을 가지고 있다.
컨설턴트가 내세우는 것은 논리다.
사실을 근거로 연역 혹은 귀납의 도구를 활용하여 열심히 고리를 만들고
가지를 쳐서 하나의 결론을 가져간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 결론 조차 일종의 가설일 따름이라는 점이다.
가설 수준의 논리를 들고 가지만 고객의 감이라는 허들을 넘어야 한다.
상식에 맞지 않는 수준의 이야기는 한방에 날라간다.
후배 중에 매우 뛰어난 논리로 최근 승승장구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야기하면 대화시간의 80% 이상을 점하고 논리도 탁월하고 사실도 꽤 풍부하게 인용한다.
얼마전 나에게 전화해서 모 그룹 대표를 만나는데 그분이 최근 김훈의 글을 읽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주 관심사를 유추할 정도로 전방위 대비가 뛰어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뛰어난 두뇌로 낸 결론이 열우당 유모씨가 적당한 차기 대권
담당자라는 것이다. 그 자리에 모인 다른 사람들 중 아무도 설득을 못 시켰다. 입만 아플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아픈 경험 하나가 있다. 고객사 임원진이 바뀌었을 때 지난 임원 관심사 중심으로
정리된 과제를 들고 보고를 하다가 한방에 날아간 것이다.
CRM 과제였는데 우수 고객 중심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자라는 결론이었다.
설명을 시도하면서 한페이지 두페이지 넘기는 동안 임원의 눈은 빠르게 결론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쓱 훑고 나서 나의 설명을 끊으면서 결론에 동의 할 수 없고
이 설명을 듣는 시간이 아깝다고 잘라버렸다.
얼마전까지 그 아래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실장님에게서는 매우 호평을 받았던 보고였는데
한방에 날아가버렸다.
방어 할 시간은 잠시였는데 이를 놓치고 나자 아예 과제가 막혀버린다.
어떠한 논리도 고객이 충분히 동의 하지 않는다면 가설일 뿐이라는 전제하에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막히고 만다.
최근에도 가까운 분들이 고생해서 만든 자료가 날아갔다는 아픔을 전해주었다.
아쉽지만 어쩌겠나? 다시 돌아서서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