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향기 - 아웃케이스 없음
마틴 브레스트 감독, 크리스 오도넬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여인의 향기

감미로운 탱고 연주가 흐르는 속에서의 미인과의 멋진 춤 솜씨, 법정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논리의 공방 속 에서 청중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명연설까지 정말 여러가지 즐거움을 주는 영화였다.

시작은 소년과 어른의 만남이었다. 명문 고교에 장학생으로 다니는 소년은 이제 막 어른이 되려고 한다. 어른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년은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의해 스스로의 운명이 결정 되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교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비행에 대해 증언을 해준다면 처벌은 면한다. 그들이 스스로 죄를 고백해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증언을 거부하면 교장의 분노와 함께 퇴학에 이를 정도의 갖은 불이익을 뒤집어 쓰게 된다. 그 친구들은 부모의 권위에 숨거나 교묘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니 정말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 어려움을 안고 있는 와중에 휴일 아르바이트로 만난 어른이 한 명 있다. 이제 인생의 화려함을 다 보내고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고 있는 어른이다. 그에게 없는 것은 생에 대한 갈망이다. 화려함에 대한 추억을 아직 안고 있고 이를 다시 한번 즐기려고 하는 욕구는 있지만 그것도 잠시 일뿐 순간에만 머무는 쾌락은 잠시 피다가 결국은 꺼지게 되는 불꽃일 따름이다.
그에게는 정말로 멋진 재주들이 있다. 왈도프 아스토리아라는 명문 호텔에 숙박하고 식당에서는 화려한 춤 솜씨를 멋진 여인과 함께 보여준다. 이어서 스포츠카 드라이빙 등 인생의 즐거움에 대한 다양한 만끽도 보여준다. 아 생이란 이렇게 여러 방면의 즐거움이 채워져 있구나하는 느낌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그렇지만 그의 삶에 활력은 없다. 즐거움은 결코 지속적이지 못하다. 매일매일 똑 같은 삶을 유지하기에는 그의 재력도 버텨내 줄 힘이 못 될 것이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은 사람에게 더 한층 갈증을 남길 따름이다.

소년은 그에게 손과 발 내지 눈이 되어주는 조건으로 함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활력을 넘겨주는 것이다. 자진해서 목숨을 끊으려는 그에게 당신의 삶이 멋지고 그로부터 배울 점이 많았다는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한명에게라도 소중하게 여겨지는 삶이라면 그것 또한 의의는 있을 것이다.

그래 바로 이 순간 그가 가지고 있는 귀한 것이 발견된다. 바로 지혜다. 오랜 풍상에 닳아진 마음이지만 그에게는 대의가 무엇인지 아는 분별력, 아무런 거리낌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남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호소력 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것들 모두가 바로 지혜를 구성하고 있다.

그 지혜의 소유자는 이제 막 소년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어디서? 바로 법정에서 말이다. 학생들은 관객이 되고 배심원이 된다. 소년은 주변의 조력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를 변호해 한다. 마치 그리스의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 처럼. 누가 아는가 그 법정이 가장 불합리한 판결을 내려 역사의 웃음거리가 된 것처럼 오늘 나이 어린 소년의 앞날을 끊어 놓을 지 말는지를.

바로 그 순간 어른이 나타난다. 바로 뒤에 앉았고 법정의 진행을 잘 들었고 앞으로 나선다. 교장의 엄격함에 눌려 있는 청중에게는 과연 이 공동체가 지향해야 하는 근본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깊은 곳에서부터 떠올리게 만든다. 올바름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야말로 도덕과 법의 근본을 이룬다. 그리고 명석함을 발휘하도록 논리를 세워준다. 아주 깊은 마음속의 감동을 일으키면서.

판결이 끝나고 밖으로 걸어나가며 또 한 명의 여인의 향기를 맡는다. 남자는 여자와 함께 있으며 빛이 나게 마련인가 보다. 향기로운 여인과 함께 하는 그의 얼굴은 점점 밝아진다. 대통령의 보좌역까지 역임하며 쌓은 정치적 식견, 월남전에서의 치열한 전투를 이겨낸 용기도 이제 새롭게 사람에게 전수되며 가치를 빛낼 것이다.
빙긋하게 웃는 어른, 막 짐을 덜어내어 홀가분해진 소년 서로 생의 의미와 지혜를 나누게 되는 모습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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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2-09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대간에 생의 의미와 지혜를 나누는 모습으로 보셨군요. 저도 그런 점에서
감동이었어요. 탱고, 너무 멋진 장면이었죠. 사마천님의 서재 이름이
책의 향기였군요. ^^

사마천 2008-02-10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늘 머리에 좋은 추억으로 남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영화에 탱고 나오는 레스토랑이 뉴욕에 있다고 하던데 꼭 가보고 싶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