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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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파워블로거나 파워 트위터리안인 학생들을 뽑아서 열정 챌린저니 청춘 서포터니 하는 이름을 붙여 주고 온라인 홍보 대행사 대신 쓰겠다는 거죠. 그편이 훨씬 더 싸게 먹히니까요. 아이디어도 더 참신하고. - 책중에서


대학생으로 <대외활동의 신>이라 불리우는 <신>은 그렇게 세상 이야기를 했다.

거창하게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몸으로 뛰어들어 알게 된 그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생의 다음 진로는 취업이고 그 사이에 서 있는 커다란 <관문>은 엄청난 통행료를 요구한다. 핵심 스펙인 학력,학점,자격증 등

기본 출발선이 뒤쳐진 지방대학생들에게 그나마 대외활동은 뛰어볼만한 수단으로 보였다.


두 시간 남짓 인형 옷을 입고 춤을 췄더니 땀으로 팬티까지 축축하게 다 젖었고 나중에는 다리가 풀리면서 눈이 저절로 감겨 왔다. 결국 신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책중에서


그렇게 노오력으로 뛰어든 결과는 어떠했을까?


의미 없었나고? 기껏해야 취업준비뿐인 것 아니냐고?

돈 많은 집 아이들이 헬기 타고 히말라야 가서 쿨한 스토리 만들 때

찌질하게 한국에서 고생만한거냐?

그렇게 던져지는 냉담한 세상의 시선에 대해 <신>은 뭐라고 답할까


단편이라 더 긴 이야기는 과도한 스포일이 될 것 같다.


학생에서 취준으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모습의 귀결은 소설책에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 <장강명>의 신작이다.


우리 삶은 언제부터인가 점점 더 팍팍해져갔다.

공장지대에서는 해고자가 입구밖에서 농성하고, 취준생 몰린 학원가에서는 지쳐버린 청춘들의 얼굴이 컵밥 먹으러 몰려나오고

동네 프랜차이즈 빵집 하나 오픈 행사할 때 이곳이 앞으로 또 얼마나 치열한 전쟁터가 될 것인가 걱정도 되고..


작가는 우리가 그렇게 스쳐갔던 공간들에 들어가 취재수첩 들고 한명 한명 붙들고 그들의 고통을 옮겨 적었다.


현수동 빵집 이야기 하나를 보자


동네빵집의 주인장 누구도 악인은 없었다. 퇴직해서 집안생계가 걸린 가장, 오랜 시간 빵굽기에 헌신한 기술자 등.. 


누구도 악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지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결국 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명분으로 나를 부추기는 존재들에 있는 셈이다. 프랜차이즈 업주들은 상인을 돕는다고 마케팅 기법을 화려하게 자랑하지만 결국 그들의 장사속인 셈이다. 더 열심히 일해라 더 늦게까지 일해라.. 희망을 가지고 노력을 해라.. 그렇게 부추긴다.


이렇게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은 빵집을 넘어서 대기업 입사시험, 아나운서 취준생들의 수백대 일 경쟁, 음악 스트리밍 순위판 등 곳곳에 있다.

그 안에서 각자 더 빨리 뛸수록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은 커질 뿐이다.


4년간의 발품이 담긴 소설집은 단편들의 모음이었다.

기자 출신 답게 심층 기사인가 하는 리얼리티 위주의 글이었다. 글솜씨 보다는 주인공들이야말로 내가 한번은 만나서 붙들고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 삶들이었다.

그 고통을 퍼올려 세상의 공감을 늘려가는 일이야말로 소설가의 책무구나 하고 다시 감탄하게 한다.

개인적인 희망은 <대외활동의 신> 등 취준생 이야기를 더 확대해서 <청춘 이야기>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세대간의 갈등은 커져가고 있다.

각자가 처한 고민이 개인 차원이 아니라 뒤에서 조종하는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걸 깨달아 줘야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해법이 나온다.

모든 여행의 출발은 아픔이다. 소설가의 손에 이끌려 느껴지는 아픔.. 

그렇게 출발이 일 전체의 반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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