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정유재란 1597
허남린 외 지음, 국립진주박물관 엮음 / 푸른역사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경남 사천을 가면 임진왜란에 지어진 왜성이 있다.

일면 선진리왜성이다.

한때 높았을 누각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 일본 본토에서 보는 독특한 양식으로 기반이 축조된 성의 기반만 보인다. 그래도 문짝을 만들어 성 모습을 유지하려고 관리하고 있다.

이 성의 주인은 큐슈 가고시마 시마즈 가문으로 이 가문이 메이지유신의 주역이다 보니 일제시대는 사적지 겸 일본인들의 관광지였다. 벚꽃이 가득한 모습이 지금의 오사카 성을 연상하면 될 것 같다.

1598년 이 성 바깥에서 명나라 군대와 격전이 벌어져 명군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을 위로하는 묘 하나가 덜렁 별로 관리되지 못한 모습으로 놓여 있다.

시마즈의 경우 이 전투에서 소수의 병력으로 압승을 거둔 덕에 이후 일본 패권전쟁에서도 나름 상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전투는 한국에서는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다.

아마 독자들도 이 책에서 처음 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 전투에서 보듯 

정유재란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이었지만 국제전으로 올라가버렸고 덕분에 

조선 말고 명,일이 보는 주요 전투는 우리 생각과 다르다.


전북 남원성 전투는 일본의 압승으로 이후 전라도 지방이 초토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몇 달 뒤 충청 직산 전투는 명이 일군의 북상을 저지한 주요 전투였다

울산성 전투는 가토를 저격하려는 명-조 양군의 돌격이었지만 노력 대비 성과가 적었다.


이렇게 조선이 참여하지 않은 전쟁에 대해서는 이땅의 역사는 관심이 매우 적다.


그럼 하나 하나 전투 말고

임진란 동안 명과 일본이 쓴 총비용은 얼마였을까?

이를 조선의 GDP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이렇게 질문이 돈으로 넘어가면 더더욱 풀기가 어려워진다.


이 책에서 보면 명군의 비용은 최소 800만량, 많게는 2000만량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그 돈이 아니라면 군대도 없었을 것이고 일본을 막아내는 승전도 어려웠을 것이다.

쓴 비용을 절반으로 줄였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은 보다 자유롭게 사천,울산을 위시한 왜성을 거점으로 남도를 수탈해나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조선의 GDP는 추정하기 쉽지 않지만

당시 명이 군대만 보내면 안되냐고 하면 조선에서는 절대 먹일 식량이 없다고 호소한다.ㅅ

전쟁 초기에 실제 명군대가 왔다가 더 이상 진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유는 식량 부족이었다.

전쟁터에 그들이 은을 들고 왔는데 이를 교환할 식량 자체가 없었다.

그만큼 여유 식량이 없는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전투지 까지 식량을 날라오는 과정에서 엄청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급료가 1이라면 식량구매가 1, 운송이 다시 1 이상이 붙는 구조다. 


왜성이 모두 바닷가에 자리해서 본토에서 식량을 날라오기 쉽게 해놓은 것도 같은 이유다.

덕분에 일본 또한 적어도 명의 반 정도는 비용을 쓰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합치면 총 3000만량이 되는 셈이다.


이는 당시 일본이 전국시대를 거치며 개발된 거대한 은광들이 있었기에 감당 가능한 비용이다.


전쟁은 결코 우리의 영웅이 활약한 덕분에 우리의 승리로 끝난 것이 아니다.

배후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여되고 일본의 야망과 명의 패권 유지 노력이 맞물려 밀고 당기다가 어느 순간 종결된 것이다.


그렇게 거대한 힘의 대결 과정에서 조선의 민낯은 어떠했는가?

더 자세한 내용은 책을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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