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 신문배달원에서 세계 최고 경영자까지
조동성 외 지음 / 이지북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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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의 노인이 쓸쓸하게 공항을 내려온다.
쇠락해진 몸을 이끄는 그가 한때 한국의 4대그룹의 하나였고 전세계를 누비며 세계경영의 기치를 높이들었던 인물인 대우 그룹의 회장 김우중이다.
전성기에 바람처럼 날아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징기스칸과 닮았다고 해서 김기스칸이라고 불리우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달라진 모습이다.
그는 과연 막대한 부채를 안겨준 죄인일까 아니면 한국사람들의 발걸음을 세계로 돌리게 한 선각자일까 여전히 의견은 분분하다.

이 책은 그와 인연이 있었던 여러 사람들이 한 꼭지씩 글을 모아 만들어졌다. 작가 이문열에서 시작해 서울대 교수 조동성, 대우의 전 임원 등 필자가 다양하고 그만큼 글의 성격과 수준 또한 편차가 크다. 그 글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인간 김우중이 가졌던 긍정적 면모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이문열은 문인들이 어려울 때 특별히 요청했더니 선뜻 생활비를 보내주게 되었다는 이야기, 해외 출장에 동행시켜서 안목을 넓혀주었다는 이야기를 적었다. 예전에 도올 김용옥과 나눈 대화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빠른 식사, 골프치지 않기 등은 그의 시간에 대한 애착을 잘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그 남는 시간에 그는 정말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그의 기행은 이런 지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운동권 출신들이 사회주의 몰락 후 갈피를 못 잡자 대거 채용해서 당신들이 목숨을 바치려 하던 그 정열을 이제 기업의 성장에 기여하도록 해보라고 기회를 주었다. 그 사람들 중에서 <대우 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가 말년에 주목한 것은 동구권 신흥 체제전환국들이었다. 폴란드의 자동차 공장이 자체적으로 살기 어렵게 되자 GM이 싸게 인수한 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수익을 만들려고 했다. 폴란드 정치권이 주저하는 사이 나타난 김회장은 매출을 늘리면 생산성을 해결되고 기업의 기능은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기여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덕분에 폴란드 정부는 대우에게 경영을 맡기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된다.
이 때 달러가 부족하니 대금을 현물로 받아 대신 처리해주는 종합상사가 참여하고 각종 제도적 개선을 이끌어내는 등 대우의 활약은 계속 이어진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그의 방문을 환영하였고 세계 곳곳에 대우의 깃발이 날리게 된다.

이런 시각의 반대편에는 질시도 뒤따른다.
정치권에서도 부정적인 비판이 많이 따랐다. 정치자금을 왕창 얻어쓰고 나 몰라라 하는 지도자들이 많았는데 심지어 얻어쓴 정치인들은 처벌 받지 않으면서 YS시절 법정에서 실형을 선고받게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나가서는 국빈 안에서는 피고인이라는 극과극의 대우를 대우 김회장은 받게 된 것이다.

또 나라 밖에서는 과거 GM의 기술을 받아 하청업체 수준에 머문다고 생각했던 대우가 이제 당당히 해외에서 GM과 경쟁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질시를 받게된 대우의 입장은 나중에 IMF가 요청한 재벌해체의 주 타깃이 되고 만다.

대우의 몰락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가지 말이 많다. 이헌재와의 불화라던가 여러 설이 있지만 이 책의 주제는 아닌 것 같다. 

이 대목에서 한번 돌아볼 것은 우리 사회가 점점 꿈을 상실해가고 있고 활력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노무현의 집값 부풀리기 정책 덕에 중소기업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같이 부동산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고 젊은이들의 취업은 당신들의 문제라고 하는 유시민 장관님의 주장은 민주화 세력의 무능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이 그늘 속에서 사람들은 향수에 젖게 된다. 성장시대, 꿈이 있던 시기, 어제보다 나은 내일, 내가 누린 삶보다 더 나은 것은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는 점을 다시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 분명 부정적 그늘이 많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추억으로 몰려가는 추세를 쉽게 부정하기는 어렵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이 히틀러를 끌어냈듯이 박정희 패러다임의 부활은 이제 대세로 굳어가고 있다. 그 속에 재벌의 시대, 김우중에 대한 추억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한국적 글로벌 경영의 원조였던 대우는 이제 추억이 되고 있지만 그의 손을 거친 여러 기업들은 지금 다시 일어나 세계를 누비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두산인프라코어, 대우인터내셔날 등이 그런 기업들이다.

최근 한국사회에 여러가지 사상이 도입되어 실험을 거치고 있다. 자유주의,신자유주의,좌파이론 등 다양한 생각이 혼재하지만 쉽게 마음 줄 만큼 정련되지는 못하고 있다. 노무현이 자신을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어정쩡한 개념을 만들어 멋대로 하는 잡 짓거리들의 명분을 만들고 있지만 이는 치졸함 고민없음의 고백이 따름이다.

반면 한국적 상황에 대한 고민으로 연달아 히트작을 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장하준이다. 한국 사회과학 중에서 몇 안되게 해외로 번역되어 나가는 책을 낸다. 그의 주장이 담고 있는 맥락과 김우중의 삶과 일맥이 통한다고 나는 본다.

항상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불가능은 없다고 외치며 미래를 내다보려 했던 어느 거인에 대한 아쉬움을 다시 일깨워주는 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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