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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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오렌지색은 상큼하고 싱싱한 느낌을 주며 식욕을 북돋워주는 색깔이다. 또 안전색으로 쓰일 만큼 주목성이 대단히 높고 자극적인 색상인만큼 ‘튀기’는 하지만 가볍고 들뜬 느낌을 주기 쉽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검은눈, 검은 피부색의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쉽게 어울리지 않는 색상이다" 어느 색체전문 컨설턴트의 말이다.  나 또한 너무나도 상큼한 오렌지색에 반해 거금을 투자하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내 피부는 백옥처럼 희지도, 썬탠이 잘 된 매력적인 구리빛도 아닌 것이다.  그후로 내게 오렌지색은 열대의 햇빛처럼 쉽게 소유할 수 없는 이국적인 무엇이 되었다. 우수운 얘기지만  오렌지색이라는 이유로 토종의 한련이 더운 어느나라에서 물건너 온 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 '파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 오렌지색은 구원의 빛이 되었다.

저자 얀 마텔은 이야기에 앞서 그가 어떻게 이 놀라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를 밝힌다. 작가로서 허기에 시달리던 그가 새로운 희망을 안고 향한 인도 봄베이, 그곳에서 그는 신을 믿게 될 얘기를 알고 있다는 노신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로부터, 주인공 피신 몰리토 파텔, 파이와 오렌지색에 검은 줄무늬를 드리운 리처드 파커의 기막힌  227일간의 동거가 시작된다.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고양이과의 오렌지색에 검은 줄무늬를 드리운 리처드 파커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신을 믿게 되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때론 고난이 삶의 원천이 되고, 도전이 있어 발전을 이루듯이, 우리의 삶은 좋고 아름다운 무엇만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무엇이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는, 인생에 대한 새롭진 않지만 또다른 시각을 던져주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네가 없었으면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정식으로 인사하고 싶다. 리처드 파커, 고맙다. 내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   227일간의 표류기라고는 하나 일초일초, 매순간순간이 죽을 고비였을 파이의 고백이다. 그렇다. 자신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희망마저 삼켜버린 거대한 바다, 그 막막한, 빛이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무거운 어둠의 절망속에서 그를 구원한 것은 분명 '리처드 파커' 호랑이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든지 자신을 배를 채울 먹잇감으로 여길 수 있는 맹수 호랑이가 존재했기에, 알지도 예상할 수도 없는 바다위 작은 구명보트에서 파이는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누구라도 상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의 푸른 바다로 뛰어드는 것보다는 호랑이의 비위를 맞추고, 호랑이를 훈련하며 작은 구명보트에서 살아 남는 것이 훨씬 수월 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파이 이야기'를 통해서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파이의 종교, 신앙심이 그것이다. 매우 이상스럽게도 파이는 이슬람교, 힌두교 그리고 카톨릭까지 세가지 종교의 예배를 다 드린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세 종교의 사제들은 여지없이 그에게 하나의 종교를 택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은 "간디께서는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라며 자신의 독특한 신앙생활을 지켜나간다. 나는 지난 연말 각종 시상식을 tv를 통해 보면서 어찌나 '하나님'을 운운하는 사람이 많은 지 우리 사회에 이렇게 기독교도가 많은 지 새삼 놀랐다. 하긴 내가 일을 하고 있는 집단에서도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기도를 한다. 참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기관의 장의 신앙생활이 그리고 같은 종교의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같이 공공연하게 기도를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은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지고 집단의 목표에 도달해야하는 사회적인 윤리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는 비정상적으로로 한 종교가 세를 확장해가고 있고, 종교의 핵심인 궁극적인 '신'은 온데간데 없고, 자신의 행복만을 비는 요상한 '신앙심'만이 가득한 이들이 너무도 많다. 물론 진실한 의미에서 신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신앙인들 스스로가 반성하고 많이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파이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자 존재를 떠받치는 틀이건만, 마치 신의 힘이 약해서 자기가 도와야 된다는 듯 나서서 옹호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자들은 정작 나병에 걸려 동전푼으 동냥하는 과부는 못 본 체 지나고, 누더기 차림으로 노숙하는 아이들 곁을 지나면서도 '늘 있는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점을 보면 난리라도 난 것처럼 군다. 얼굴을 붉히고 숨을 몰아쉬면서, 화를 내며 말을 쏟아낸다. 얼마나 분노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 단호함이 겁난다....... 이런 자들은 겉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신을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모른 다. 바깥의 악은 내면에서 풀려나간 악인 것을....... 선을 위한 싸움터는 공개적인 싸움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공터인 것을...... 과부와 집 없는 아이들의 운명은 너무 힘들다. 그러니 독선적인 자들이 편들어주러 달려갈 곳은 신이 아니라 그런 이들인 것이다. "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한마디로 좋은 책이다. 소설적 재미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번쯤은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또한, 이 이야기의 핵심을 이룬 줄거리가 참인지 거짓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반전을 만들어 그저그런 한 인간의 성장과 모험의 표류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인간의 이성에 집착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섬뜩하리만치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

'파이 이야기' 와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낼 순 없어도,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세상이 좀더 공평한 곳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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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5-01-0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멋진 리뷰네요.안그래도 저도 꼭봐야겠다 싶었는데... 기대를 잔뜩 갖게 만드시는군요.올 한해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빛나는소금 2005-06-2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 더(?) 주의깊게 읽고 갑니다. 리뷰가 다 좋습니다...

분홍달 2005-06-2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이님! 고맙습니다^^
 
딸 그리고 함께 오르는 산
제프리 노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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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이란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부모가 가장 잘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걱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식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부모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진심어린 기도밖에 없을 때가 너무나 많지 않은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과 불안한 마음에 넘지 말아야 할 선들을 종종 넘으며 '다 사랑해서, 다 잘되라고'라는 명목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자유를 침범하고 성장을 제한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스포츠 저널리스트인 '제프리 노먼'은 '우리는 대체 어디에 온 것일까?'라는 존재론적인 물음앞에서 자신의 50세 생일에 결코 녹록치 않은 '그랜드'라는 산을 오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우연히 첫째 딸 '브룩'과 함께 등반을 시작하게 된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남자들과의 생활에만 익숙했던 '제프리 노먼'은  여느 남자들처럼 '승부의 세계'에 익숙하고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표현하는 데 무척이나 서툴렀다. 그러던 그가 결혼을 하고 두딸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아버지'라는 것만도 감당하기 만만치 않은 상황에, 아들들을 기르는 것이라면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으련만, 딸들의 아버지가  된 그는 영  자격 미달인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는 "꾸며내면 진짜가 된다"라는 전술을 이용해 '기저귀 가는 법'부터 시작해서 지역 리그의 여학생 소프트볼 팀 감독을 맡는 등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그야말로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훗날 '딸들은 아버지에게 좋다" "딸의 웃음은 전쟁도 멈출 수 있다"고 까지 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런 '노력형' 아버지라고 해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등반에 금쪽같은 자식과 함께한다는 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엔 자신의 계획이 자기도취적이고 방종한 생각이란 깨달음과 사춘기의 폭풍을 힘겹게 지나고 있는 딸 '브룩'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50살의 아버지'와 '15살의 딸'의 본능과는 반대로 해야 하는 아름다운 등반이 이루어진다




"브룩은 열다섯 살이었다. 아직 그애의 인생의 대부분을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면 나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뜻이었다"는 제프리 노먼의 고백은 담담하지만 아직30대인 나도 짐작할 수 있는 뭉클한 서글픔이었다. 언젠가 아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감흥보다는 추억이 먼저 떠오른다'고.. 저자도 딸에게는 흥분을 일으키며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그에게는 노스텔지어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으며 사라진 기회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닌가. 세상이 끝난 것 같아도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하고 거기엔 반드시 또다른 기쁨과 감동이 있는 법....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 대한 탐험과도 같은 등반을 각자의 위치에서 날마다 오르고 내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버지의 욕심과 걱정을 떨치고, 진실한 의미의 '떠남', 먼 거리가 아니라 단지 많은 차이가 필요한 딸아이의 크고작은 '떠남'를 묵묵히 바라보며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큰 사랑, 남편과 딸의 안전에 대해 노심초사하지만 그녀가 안도한 부분보다는 흥분한 부분을 더 많이 얘기할 수 있는 아내이자 어머니의 모습.그들의 뭉클한 사랑에 박수를 보내며, 나 또한 나의 욕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상대의 성장과 자아를 존중해주는 진정한 사랑을 배워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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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11-26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볼께요.언젠가....

드팀전 2004-11-30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리뷰 당선 되셨네요.축하 축하......

분홍달 2004-11-3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당^^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이 영광을~~(무슨 영화제 수상소감 같네요.. 헤헤..)

방긋 2004-12-0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봤는데 정말 뭉클하더군요.

아빠가 될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남동생한테 추천했더니 너무 먼 얘기라나요?

분홍달 2004-12-0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꼭 읽어 봤음 좋겠어요..부모가 될 사람이라면 누구나~
 
굶주리는 세계 - 식량에 관한 열두 가지 신화
프랜씨스 무어 라페 외 지음, 허남혁 옮김 / 창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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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8억명의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일상적 굶주림, 이 만성적 굶주림은 뉴스거리가 되진 못하지만, 기근보다도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늘 배 부른 자들의 필요이상의 포만감은 일상이 되고  끝도 없이, 그 이상의 것들을 요구하며 선량한 이들의 숨통을 비틀고 있다. 지금도 이라크에선 전쟁이 한창이다. 부시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이 된 이후, 이라크엔 국가적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이라크인들의 자유와 안정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대포와 총들이 사정없이 하늘에서 불꽃놀이를 벌이고 있다. 살 곳도 잃고, 가족도 잃고, 목숨까지 잃어버린 이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빼앗은 초다국적기업이란 괴물들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귀면'처럼 힘없는 이들의 입속에 든 밥알까지도 꺼내어 자신들의 위를 채우고 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굶주림'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듯, 이티의 모습을 한 '에디오피아 난민들' 이 떠오르고, 요즘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담 넘는 모습이 추가되었다. 단순히 배가 고픈 것이 아닌,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기본적인 힘을 빼앗아간다는 굶주림,, 이처럼 보이지 않는 굶주림으로 이 굶주림에서 비롯한 예방 가능한 질병탓으로 매일 5세이하 어린이 3만4천명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1년으로 따지면 1천2백만명, 이 수치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죽은 사람 수보다도 더 많고, 사흘마나 히로시마 원폭희생자의 수와 맞먹는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참혹한 대량적 학살, 굶주림이 발생하는가? 이 책에서는 12가지 잘못된 굶주림에 대한 신화를 꼬집는다. 굶주림은 식량이 부족해서도, 토지가 부족해서도 아니며, 자연 때문에 인구가 너무 많아서도 아니라고 한다. 식량과 발전 정책 연구소, '푸드퍼스트'의 전문가들은 굶주림의 근본원인은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 지지 않는 '민주주의의 부족'이라고 단언한다. 책임의 원칙이 있는 민주주의는 자신들의 복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 할말을 할 수 있게 하는 민주적 구조이어야 하고, 지도자의 역할도 다수의 필요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전혀 할말을 못하는 반민주적 구조 속에서 지도자도 권력을 지닌 소수만을 책임지고 있기에 힘없는 많은 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굶주리고 급기야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굶주림은 녹색혁명으로도, 자유무역으로도 해결 될 수 없으며 미국의 원조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푸드퍼스트의 전문가들은 그간의 연구를 통해서, 굶주림을 종식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굶주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임을 알게되고, 굶주림에 대해 잘못된 생각, 아니 너무나 공고히 굳어져 신화가 되어 버린 편견들을 바로잡으며 굶주림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다

고프지도 않은 배를 채우기 위해, 끝도 없는 욕망을 위해 지금도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초국적 기업이란 괴물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알아서 현명하게 일처리를 하는 미국을 위시한 권력집단들에 대한 분노가 끓어 오른다. 농민운동가 '이경해 열사'의 죽음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식량주권운동이 미미하나마 좀더 활발해고, 개방과 자유시장이란 이름으로 윤택한 세계경제를 실현 시킬 수 있을 것처럼 달려드는 'WTO'의 허울에 돌을 던지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고 책임있는 소유와 경제적 독단을 넘어선 거물급의 경제주체들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너무 목이 마른 일이다. 오히려 힘은 없지만 건전한 사회의지와 가치관을 지닌 이들의 뜻과 의지가 모인 진정한 변화에 희망을 걸어본다. 나부터 내가 속한 미시경제 안에서, 그리고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운동안에서 도덕성 감수성을 잃지않고 생활해야 할 것이다.

배 고픔도, 배 부름도 모르는 끝도 없는 욕망의 괴물이여!  너희들이 집어 삼킨, 텅빈 위와 황폐한 정신으로 사망한 선량한 이들의 눈빛을 기억하라. 너희가 만든 지옥에서 스스로 자멸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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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11-10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처음뵙네요.서재 사진이 너무 예쁘군요.부용.....

웅....멋진 리뷰입니다..^^ 마지막 글은 책에서 발췌한 내용인가요? 아주 인상적입니다.....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분홍달 2004-11-1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았나요^^흥분해서 그만...고맙습니다.. 흐리지만 좋은 날 되세요!
 
미술과 문학의 만남
이가림 지음 / 월간미술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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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귀는 소라껍질/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 장 콕토의 시처럼 나는 언제나 바다 소리를 그리워하는 소라껍질이 되어 예술로 일컬어지는 것들을 갈망한다. 2004년 봄이 질 무렵, 우연히 서점에서 모딜리아니의 '누드'를 보았다 '빙하기'라는 시집을 펴낸 이가림님이 쓰신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란 책의 표지였다. 그로부터,  뜨거운 여름이 갔고 따스한 것들이 그리워 지는 가을을 맞았다 참 오랜동안 모딜리아니의 그림과 함께했다

문학을 회화와의 긴밀한 관계망 속에서 연구하는 교수아래서 공부했던 저자는 이후로도 '문학 속에서 그림'을,  '그림 속에서 문학'을 추적하며 쟝르의 칸막이를 뛰어 넘어, 울림과 되울림을 주고 받는 시인 작가들과 미술가 사이의 행복한 교감을 읽어 낸다. 그만큼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란 이 책은 이 분야에 관심만 있다면 흥미롭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다.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저항시인 엘뤼아르는 피카소를 "한 폭의 그림 앞에 설 수 있는 시인처럼 그는 한 편의 시 앞에 설 줄 아는 사람이다." 라고 말한다.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이 정도의 감성과 통찰력을 지녀야 하는 게 아닐까..이 책에는 이렇게 동시대에 같은 뜻을 품고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교우하는 동지적 모습과 더불어 '푸생과 솔레르스'처럼 3세기를 뛰어 넘는 미학적 발견도 만날 수 있다. 20세기를 전후로해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문인과 미술가들의 만남을 18편으로 간추렸기에 깊이감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으나, 앞서서도 말해듯이 대변혁기의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예술인들이 어떻게 서로를 격려하며 어떻게 작품과 작품 밖에서 활동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의 기억속의 근원적인 고향은 '공간의 넓이라기 보다는 물질'로 다가온다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처럼 흙이나 바람, 물이나 불과 같은 '물질'의 기억으로 하나하나의 그림들이 한줄 한줄의 글들이 구체화 되어 실재하는 세계는 언제나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모딜리아니의 '누드'를 다섯달 동안 보아 왔다. 이제 당분간 이 그림은 볼 일 이 없겠으나 순간 순간 어느어느 대목들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료하고 우울했던 나의 일상에 작은 외출이 되어 준 것은 2004년의 새로운 적응을 위해 애썼던 나의 날들과 함께 소중하게 기억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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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롱 2005-04-2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론 누가 뭐래도 서평이라면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필요할 듯 한데 미술에 문외한인 저이지만서두 님의 리뷰가 그렇군요. 인용하신 장 콕토의 시는 저도 좋아라합니다. ^^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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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준식님은 인권운동가죠.. 재일교포2세로 태어나서 이른바 '조선놈'이 되고자 한국에 유학을 옵니다. 그러다 1971년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중에 형 서승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다가 '유학생 간첩단'으로 체포되서  끝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아 결국은, 17년이 넘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냅니다. 우리 헌법의 한계와 그 법을 집행하는 권력층들의 자기 보호 본능으로 한 인간의 꽃다운 시절이 3평남짓의 작은 공간에서 그렇게 가혹하게 흘러간 것입니다. 역사와 권력의 그늘에서 이렇게도 기막힌 일들이 지금도 부끄럼없이  반복되고 있단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24살에서 41살까지, 그 오랜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좌절과 절망을 수도없이 했겠지만, 인간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자신의 뜻을 꿋꿋하게 지켜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참 좋은 글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많은 생각도 했습니다. 또, 너무나 인간적인 한 인간의 모습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실천과 착한 마음이 그대로 베어있는 그분의 많은 글 중에서도 특히 맘에 남고, 이 긴 분량의 책을 집약할 수 있는 말은 바로 '구체적인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분의 고백일겁니다

"관찰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관찰하면서도 그 인간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깊은 사색없이 단순 소박하기는 쉽다. 그러나 깊이 사색하면서 단순 소박하기란 얼마나 어려가?(중략)....적개심과 원한을 가슴에 가득 품고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는 쉽다 그러나 적개심과 원한없이 사랑하면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아~~ 가장 가까운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도 구체적인 그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너무도 지난한 일입니다. 하물며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 혹은 그저 무심한 이웃을 삶을 통찰하는 눈으로 바라보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애쓰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인간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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