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퀼트작가인 말짱햇님의 책에 나온 패턴으로 만든 래미 파우치.

죄다 공그르기로 작업해야 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기껏 작업했다가도 바늘땀이 맘에 들지않아서 자꾸 뜯었기 때문..^^;


키는 작아도 바닥이 넓직해서 제법 많이 들어간다.

고마운 이웃 언니에게 선물했더니 딸래미가 사탕바구니로 사용한단다.


그래도 살랑살랑 가방 들고 등장하는 아이를 보면 괜히 뿌듯하다.

두번은 못만들겠다 손들게 만들었던, 대단한 너!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15-08-27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파우치 귀여워요. 음 좀 큰 숄더백으로 만들어도 예쁠 것 같은데요. ^^
퀼트 - 인간 인내심 시험작업으로 생각하는 저는 절대 시작안합니다. ^^

rosa 2015-08-28 13:19   좋아요 0 | URL
가방 안에 넣고 다니는 파우치 사이즈예요 네모나고 각진 것은 싫다셔서 동글동글한 이 아이로 만들었는데, 정작 선물받은 분은 딸래미한테 뺏기시고.. ㅎㅎ
저도 이 파우치 만들고 한동안 바늘을 멀리했어요. 생각보다 너무 신경이 곤두서서... ㅎㅎ
그래도 잡생각 많은 날엔 바느질하면 좀 진정이 됩니다. ^^
 

20일 오전 서울 중구 삼일대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노동청으로부터 노동조합 설립 신고 필증을 받은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 노조위원장(왼쪽 둘째)과 조합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이로써 이주노조는 2005년 4월24일 출범 선언을 한 지 10여 년 만에 합법노조가 됐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우다야 동지가 저토록 환하게 웃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가 무참히 묵살되고 지난한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오랜 투쟁의 성과이고, 오랜 기다림의 결과였다.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인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기까지,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10년 이상을 싸워야했다.

초창기 한국의 이주노조 위원장들은 차례차례 표적단속이 되어 추방되어야 했고,

가족의 장례에 참석했다 끝내 입국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되돌아가야했던 노조위원장도 있었다.

여권도 없이 종이 쪼가리 한장만 손에 쥔 채 본국으로 돌려보내진 노조위원장도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들도 오늘의 성과를 기뻐할까?

그들의 지난 시간의 땀과 눈물, 분노와 투쟁이 오늘의 결과를 낳았음을 잊지 말자.


이주노조 합법화는 겨우 시작일 뿐.

앞으로 우리 앞에 또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조금은 두렵지만..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으니 다시 힘을 내어 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ello, my name is Young Mae Mariken Allam , my Korean name is Park Young Mae. I am living in the Netherlands. 

I am 33 years old and looking for my birth mother and father. 
I tried surching for them for years through Spoorloos 2 times, but they didn t want to take my story. Also i have already exchanged e-mails with mrs. Kim from Kss. But till so far nothing, no more new info. 
The thing is I have almost nothing to go with. My papers, if they are right are filled with almost no information regarding my mother and father. 
As you can see I was found somewhere. Also my name was given in The Home. 
I came to Holland in feb 82. 

Please share this information. In Holland we say: if you dont shoot, you have already lost😄. ( niet geschoten is altijd mis) 
So if the power of social media is as strong as they say it is, maybe I am lucky to finally find my dear mama and papa. The only very important pieces missing in my life. Also they are the only ones with als the answers. Please share and help me. Thank you very much!


-------

안녕하세요? 저는 영매 마리켄 알람이며 한국이름은 박영매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33살이며 생모와 생부를 찾고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생부모를 찾기 위해서 네덜란드 공공방송인 Spoorloos에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그들은 내 이야기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네덜란드로 입양시켰던 입양기관인 KSS(한국사회봉사회)의 김씨와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현재까지 아무것도, 새로운 정보는 전혀 없습니다. 

제가 가진 정보는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 서류에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한 정보는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저는 어딘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또 저의 이름 역시 그 기관에서 붙여준 것입니다. 

저는 1982년 2월 네덜란드로 왔습니다.


제발 이 정보를 공유해주십시오. 네덜란드에는, '모험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소셜미디어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힘이 있다면, 아마도 나는 운좋게도 마침내 내 그리운 엄마와 아빠를 찾게 되겠지요. 내 삶에서 유일한, 가장 중요한 잃어버린 조각입니다. 또한 그들은 모든 대답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제발 공유해주시고 저를 도와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https://www.facebook.com/marikenallam?fref=pho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몇달 만에 만난 조카는 신장 70cm, 또렷한 목소리로 "엄마~!"를 외치는 어린이로 성장했다.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이유식을 먹어치우고 있었고,

지인에게 선물받았다는 밝은 색 턱받이는 벌써 얼룩덜룩, 세탁을 해도 꼬질꼬질해 보였다.


조카의 애정을 갈구하는 이모는 이미 놀이매트 두 장을 손수 바이어스 처리해 상납한 것으로도 모자라 직접 패턴을 만들고 턱받이를 완성했다. 언젠가 사용할지도 모른다며 사뒀던, 앞치마를 만들기 딱이라 생각했던 원단은 턱받이 만들기에 제격이었다. 


바야흐로~ 이모들의 무한 애정 공세 시대!

현아, 사랑한다!

많이 먹고 튼튼하게 자라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