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레시아스의 역사 - 서울대 주경철 교수의 역사읽기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경철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산처럼, 2002-04-25

2004년 12월 5일 읽기 시작.
2004년 12월 10일 읽기 마침.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역사에 대한 명언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헤겔의 말이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비록 저 말이 사실일지라도, 역사가는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이야기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으려 한다.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 역시 같은 목적으로 이 책에 실린 글을 썼을 것이다. 이 책은 두껍고 이해하기 어려운 논문집이 아니라 인터넷에 올렸던 글을 다듬어 모아놓은 산문집이다. 그래서 책 전체의 구성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이슈와 과거의 사실을 절묘하게 엮어가면서 생각에 잠기게 하는 내용을 보면 쉽게 쓴 글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2부에 실린 문학 속의 역사에 대한 글도 좋은 것들이 많지만,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해서 읽을만한 꼭지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인식 1, 2]라는 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칭찬 일색인 그의 저작들에 녹아있는 역사관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아주 적절한 논거와 비유로 차근차근 짚어나간 글이다.


▒ 목차

제1부 역사의 발언

작고 행복한 나라의 역사
이보다 한심할 수는 없다
국가와 종교, 그리고 소수 집단
독재 정치와 역사
"주먹 센 놈이 이긴다!"
지도자 동지의 배낭 여행
돈키호테의 시대
국회의원들의 뇌를 반으로 잘라서 서로 붙여라
"세상이여 망해라, 새 세상이 오도록"
지구의 젖꼭지로 가는 모험
중국이 서쪽으로 가지 않은 까닭은
먹는냐 못 먹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유행과 사치, 그리고 역사의 동력
근대사는 진보의 역사인가
역사 속의 인구
살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일본, 서구의 그림자
영화와 프로파간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역사 인식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인식 1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인식 2

제2부 문학 속의 역사

나를 만나는 두려움
고대 그리스의 여인들1 : 섹스로 세계 평화를
고대 그리스의 여인들2 : 행동하는 '엽기'
지옥으로의 여행
악마의 책
웃음의 사회학
시대를 증언한 철학적 우화
동화1
동화2
근대의 악몽
악몽의 실현
러시아, 신(神)을 가슴에 품고 사는 민족

참고문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클 2005-10-07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오노나나미 할머니 책을 읽으면서 뭔가 문제가 있는데 그게 뭘까....하던 점을 이 책이 잘 정리한 것 같아요. 마치 돼지고기 먹을 때 탈 나지 말라고 먹는 새우젓처럼.
아, 물론 이 책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서도. ^^
 
서양문명의 기반 - 철학적 탐구
강유원 지음 / 미토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강유원
서양 문명의 기반: 철학적 탐구
미토, 2003-11-04

2004년 11월 17일 읽기 시작.
2004년 11월 30일 읽기 마침.

페일레스 peilles@nownuri.net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을 때 이 책을 읽다 저 책을 읽는 식으로 왔다갔다하며 읽게 되었다. 이런 습관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런 습관 때문에 읽는데 2주나 걸린 이 책을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썩 괜찮은 강의노트'라고 하겠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관점을 바탕으로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서양의 역사를 정리한 이 '강의노트'는 200쪽이 채 안되는 분량이지만 수천 년에 이르는 시간을 단단하고 간결하게 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관점'이다. 그 관점의 깊이를 모두 껴안기에는 이 책의 분량이 모자랐다. '서양 역사'만 해도 엄청난데, '헤겔과 마르크스'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지은이들 역시 그런 점을 알고, 간간히 등장하는 주석 속에 꽤 많은 참고서적을 써넣었을 것이다. 이 책이 담고있는 진짜 깊이와 무게를 맛보는 것은 읽는이의 부지런함에 달렸다.
  대부분의 역사(개괄)서에서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기반' - 작가의 말을 빌면 '먹고 사는 문제' - 에 눈을 돌린 것도 놀라운데 그 내용으로 강의를 하고 책으로 묶어 낸 것은, 서양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
  강유원의 다음 저작을 기대해 본다.


목차

서문

1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2 역사 연구의 방법
3 고대문명
4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명
5 고대 세계의 두 인물: 알렉산드로스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6 중세사회
7 동양세계와 실크로드
8 르네상스
9 근대의 규정과 물질적 토대
10 근대의 혁명
11 근대의 여러 모습
12 20세기를 규정하는 세 원리
13 근대인의 자기 정체성 문제
14 근대의 파국적 완성으로서의 파시즘
15 에필로그


책 속에서

  …전략… 따라서 우리가 역사를 헤겔과 마르크스의 시각에서 본다는 것은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검토하고 그것이 과연 몇 사람의 자유를 위해 기여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역사의 저변을 이루는 물질적 생산의 구조, 그것이 정신적 활동과 맺게 되는 관계, 그러한 교호작용 속에서 인간이 성취해내는 자아실현과 사회적 제도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의 핵심에 놓여 있는 인간 자신의 의식, 즉 자각적 의식 등이 우리의 주 관심사가 된다는 것이다.

- 서문, p.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자전거 여행
생각의나무, 2000

2004년 9월 27일 포천 8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씀.
2004년 11월 12일 싸이월드에 올리면서 수정.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山河의 美와 아날로그의 힘

  세상의 어떤 것이든 그것을 두 가지로 나눠버린다는 것은 일종의 억지이다. 하지만 그런 억지를 부려서 세상의 문장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소설가의 문장'과 '기자의 문장'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의 문장은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사실을 과장하며 감정을 드러낸다. 반면 기자의 문장은 다르다. 단순명쾌한 문장을 최고로 치고, 육하원칙이라는 사실에 매달리며 감정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소설가의 아름다움과 기자의 단순명쾌함이 합쳐지면 그 문장의 힘은 단순히 배가 되지는 않는다. 그 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자가 뛰어난 작가가 되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유명한 미국의 어네스트 헤밍웨이도 종군기자로 일했었고, 우리글을 아름답게 쓰기로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고종석은 현재도 한 신문의 논설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자전거 여행>을 쓴 김훈 역시 이러한 '기자-작가' 계보에 속할 것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던, 한국일보 기자 시절의 '문학기행'에서부터 뛰어난 문재(文才)를 드러낸 김훈은 전업 작가로 삶의 방향을 바꾼 뒤에도 장편 <칼의 노래>와 단편 [화장]으로 각각 동인문학상과 이상문학상이라는 명예를 거머쥐며 '한국 문학의 새로운 희망'이라는 다소 거창한 칭호를 듣기에 이르렀다.
  <자전거 여행>은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풍륜(風輪)'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끌고 전국을 여행한 김훈의 여행 에세이다. 이 책의 종류가 기행문이 아니라 에세이인 이유는 일반적으로 자신이 여행한 궤적을 따라 날짜순으로 재배열하는 일반적인 기행문의 구성을 취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각각의 토막글들은 큰 강의 흐름처럼 봄('흙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가을('가을빛 속으로의 출발')로 이어진다. 이러한 구성의 치밀함은 책 자체가 프롤로그에서는 단단한 산문으로 시작하여 에필로그에서는 유유한 흐름의 시로 끝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단단한 기반 아래서 김훈의 우리 산하(山河)에 대한 애정은 꽃을 피운다. 그에게 있어 우리 산하는 단순한 고적명승이 아니다. 보통의 여행객이라면 별다른 관심 없이 스쳐지나갈 군산 옥구의 염전에서 여수에 있는 바닷가의 무덤들까지, 그의 관심사는 우리의 산하를 넘어 이 땅 위에 사는 우리 삶 전체에 뻗어있다.
  관심사가 다양하다고 해서 그저 주마간산으로 돌아본 산천경개의 감상을 뱉어놓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김훈의 깊은 통찰은 책의 곳곳에서 빛난다. 그는 술마신 다음날 숙취 뒤의 배설로 고생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전남 승주에 있는 선암사의 3백 년도 넘은 화장실을 주제로 끄집어낸다('그리운 것들 쪽으로').
  식영정과 면앙정 등의 이름있는 정자들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그 순간에도 그의 감상은 단순히 정자의 아름다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정자에서 '시선의 일방성'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것이 '근대성의 일종'이라는 평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거기서 한 걸음 더 정자가 세워질 당시의 역사 속으로 걸어들어가 남도 선비들이 잔혹한 당쟁과 사화가 휩쓸었던 조선 중기의 지옥 같은 정치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귀향하여 세운 '작은 낙원'이 바로 정자임을 말한다('지옥 속의 낙원').
  이 책은 그의 출세작인 <칼의 노래>가 나오기 전에 나왔다. 그러나 대학시절 '난중일기'를 읽고 나중에 꼭 이순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순신에 대한 그의 애착은 강렬하다. 진도대교를 다룬 책의 한 꼭지에서 그는 현충사에 보관된 이순신의 칼에 새겨진 검명을 이야기하며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격언이 '펜을 쥔 자들의 엄살이거나 자기 기만이기 십상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그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또 그것은 이 책의 종류가 기행문이 아니라 에세이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요즘 세상은 너무나도 복잡하다. 덮쳐오는 파도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것들이 등장한다. '과학과 현실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그의 '가엾은 수사학을 조롱하'는 21세기 초엽의 세상에서 김훈은 묵묵하게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이 세상에 도전하고 있다. 이 때문일까. 디지털 세상에서 김훈의 아날로그는 아름답다.
  '김훈 아날로그'의 밑바탕은 '기자 김훈'이다. 이를 다른 말로 '사실'이라고 해도 좋겠다. 엄청난 정보가 전세계를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오늘날이라도 기자는 취재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직접 발로 뛰어 확인해야만 한다. 말 그대로 그의 문장은 사실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눈에 띈다. '에세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지명과 인명은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다. '임실리 덕치면 회문리 덕치 마을 앞 정자나무 밑을 흐르는 섬진강', '조정심(50세) 씨가 가장 젊고 고연기(75세) 할머니가 최고령자'와 같은 문장에서 아날로그의 간결한 힘은 꿈틀댄다.
  그렇다고 이런 기초적 사실에서만 그의 아날로그가 힘을 얻는 것은 아니다. 섬진강 상류의 여우치 마을을 다룬 한 꼭지에서는 IMF 위기로 고향을 떠난 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가슴 아픈 현실을 너무나도 객관적이고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다. 읽는이가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은 맨 마지막의 '이틀 동안 이 마을에 머물렀다' 밖에 없다. 이런 감정의 생략은 사실을 좀 더 가슴에 파고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렇게 보면 싸늘한 그의 아날로그이지만 그것이 꼭 차갑지만은 않다. 마을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놀았는데 아이들이 김훈의 산악 자전거를 너무 부러워했다는 내용의 한 꼭지에서 김훈은 자신의 심정을 '늙은 기자는 무참했다'고 표현한다. 이처럼 언뜻언뜻 드러내는 감정을 통해 그의 아날로그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회복한다.
  김훈은 아직도 연필을 직접 깎아서 쓴다. 한겨레 기자 시절에 카페 구석에서 한 손에 연필을 쥐고 한 손은 이마에 대고 고뇌하며 글을 쓰던 그의 모습에 카페 여주인이 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연필이 닳고 닳아 손에 쥐고 쓰지 못할 정도로 짧아지면 볼펜대를 꽂아서 쓴다. 그가 소위 '아날로그적 글쓰기'를 고수하고 있다는 증거는 이것뿐이 아니다. 그는 말 그대로 온몸으로 글을 '밀어내며' 써내려간다. 기자 시절 그는 '오후에 갑자기 취재지시를 받을 때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큰 산처럼 밀려온다'고 말했다. 이런 고뇌 끝에 '몸으로 써낸' 그의 문장들은 한 조각 한 조각이 각기 아날로그의 힘을 지니고 시퍼렇게 살아 번쩍인다.
  거의 모든 것이 그렇지만 특히 요즘 세상에서는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을 밀어내고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공들여 쓴 글보다는 대중의 취향에 맞는 달콤하고 가벼운 글들이 판을 친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우직하게 써내려 간 김훈의 이 글들이 더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목차

프롤로그

1. 꽃피는 해안선 -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
2. 흙의 노래를 들어라 - 남해안 경작지
3. 지옥 속의 낙원 - 식영정.소쇄원.면앙정
4. 망월동의 봄 - 광주
5. 만경강에서 - 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
6. 도요새에 바친다 - 만경강 하구 갯벌
7.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 안면도
8. 다시 숲에 대하여 - 전라남도 구례
9. 찻잔 속의 낙원 - 화계면 쌍계사
10. 숲은 죽지 않는다 - 강원도 고성
11. 땅에 묻히는 일에 대하여 - 여수의 무덤들
12. 그리운 것들 쪽으로 - 선암사
13.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 - 도산서원과 안동 하회마을
14. 무기의 땅, 악기의 바다 - 경주 감포
15. 복된 마을의 매맞는 소 - 소백산 의풍 마을
16. 고해 속의 무한강산 - 부석사
17. 태양보다 밝은 노동의 등불 - 영일만
18. 원형의 섬 - 진도 소포리
19.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 진도대교
20. 길들의 표정 - 덕산재에서 물한리까지
21. 산간마을 사람들 - 도마령 조동 마을
22. 문경새재는 몇 굽이냐 - 하늘재, 지름재, 조소령, 문경새재
23. 가마 속의 고요한 봄 - 관음리에서
24. 가을빛 속으로의 출발 - 양양 선림원지
25. 마지막 가을빛을 위한 르포 - 태백산맥 미천골
26. 노령산맥 속의 IMF - 섬진강 상류 여우치 마을
27. 시간과 강물 - 섬진강 덕치 마을
28. 꽃피는 아이들 - 마암분교
29. 한강, 흐르지 않는 세월 - 암사동에서 몽촌까지
30. 강물이 살려낸 밤섬 -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31. 조강에 이르러 한강은 자유가 된다 - 여의도에서 조강까지

에필로그 - 자전거 타는 사람 : 김기태

책 속에서

  벗들아, 과학과 현실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이 가엾은 수사학을 조롱하지 말아다오. 나는 마침내 내 자신의 생명만으로 자족할 수 없고, 생명과 더불어 아늑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 부자유만이 나의 과학이고 현실이다. 나는 나의 부자유로써 나의 생명을 증거할 것이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만경강 저녁 갯벌과 거기에 내려앉는 도요새들의 이야기를 쓰던 새벽 여관방에서 나는 한 자루의 연필과 더불어,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절벽 앞에서 몸을 떨었다. 어두워지는 갯벌 너머에서 생명은 풍문이거나 환영이었고 나는 그 어두운 갯벌에 교두보를 박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것도 만질 수 없었다. 아무 곳에도 닿을 수 없는 내 몸이 갯벌의 이쪽에 주저앉아 있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으로 끌고 다닌 내 자전거의 이름은 풍륜(風輪)이다. 가을의 마지막 빛 속에서 풍륜은 태백산맥을 넘었다. 눈 덮인 소백·노령·차령산맥 들과 수많은 고개를 넘어서 풍륜은 봄의 남쪽 해안선에 당도하였다. 거기에 원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제 풍륜은 늙고 병든 말처럼 다 망가졌다. 2000년 7월에 풍륜을 퇴역시키고 새 자전거를 장만했다. 이 책을 팔아서 자전거 값 월부를 갚으려 한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갈 수 없는 모든 길 앞에서 새 바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아무 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운 것이다, 라고 나는 써야 하는가. 사랑이여, 이 문장은 그대가 써다오. - 서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
웅진닷컴, 2002-12-16

2003년 4월 8일 씀.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가족이라는 이름의 허울을 벗겨내다

  무라카미 류라는 사람은 정말 다양한 곳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글을 쓰고, 사진집을 낸 사진 작가이기도 하고, 세계 미식가 협회 임원이기도 하구요. 테니스와 축구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평론을 쓰고 있습니다. TV 토크 쇼와 라디오 DJ도 했었고, 음반 레이블을 운영하고 쿠바 밴드의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경제·금융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책도 쓰고 <Japan Mail Media>라는 관련 메일링 리스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럽에는 소설가보다 영화감독이라는 직함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한, 뭐랄까,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그에게는 많은 소설가들이 거치는 '개인적 체험 중심에서 사회와 세계관의 문제로'라는 작품 성향의 변화는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한없이' 개인적인 체험을 담은 작품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1976)>가 류의 데뷔작인 것은 모두 아시겠지만, 그 뒤에 연이어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코인로커 베이비스 (1980)>와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 (1987)>을 발표했으니까요. 그 뒤에 나온 <69 sixty nine (1987)>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듯 현실감 있는 과거로 독자를 끌어들입니다.

  오늘 얘기할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은 앞에서 마음대로 나눈 세가지 분류 중에서 두번째,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과거와 같이 이야기를 파워 넘치게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지만 <교코 (1995)> 이후의 변화랄까요, 개인과 사회를 한발짝 떨어진 시선으로 관찰하며 묘사하는 류의 문체는 이전보다 훨씬 세련됐다고 얘기하고 싶네요. 서술 방식에 있어서는 <영화소설집 (1995)>을 생각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영화소설집>에서는 같은 시간, 다른 장소의 이야기를 한명의 화자가 이야기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각 장의 제목처럼 '오전~심야'와 같은 한정된 시간의 이야기를 때로는 같은 장소에, 때로는 떨어져 있는 가족 각자의 시선으로 풀어나갑니다. 이런 특이한 서술 방식이 내용 전달에 실패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읽는 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이 작품의 줄거리를 조금 읊어볼까요. 우치야마(內山)씨 가족은 평범한 일본의 중산층 가족입니다. 아버지 히데요시는 성실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아는 전형적인 중견 샐러리맨입니다. 저녁에 온가족이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고삐(유대)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사람이죠. 어머니 아키코는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자식들을 위해 항상 뒷바라지하는 전통적인 일본의 가정주부이고, 동생 도모미는 오빠 때문에 고민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본의 여고생입니다.

  도모미가 왜 오빠 때문에 고민하냐구요? 바로 집안의 장남인 히데키가 몇년 전부터 일본에서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히키고모리(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큰 줄기를 이루는 두 가지 이야기는 모두 히데키를 중심으로 흐릅니다. 바로 '히키고모리'와 '도메스틱 바이얼런스(가정 폭력)'인데요. 집에만 있던 히데키가 용기를 내어 바깥을 향한 구멍을 창에 내고, 우연히 내다본 창밖으로 도메스틱 바이얼런스를 목격한다……, 그런 것이지요.

  자,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뒤의 줄거리는 생략하겠습니다. 중학생 독후감도 아니고 말이죠. 어쨌든 끝내 네 사람의 가족은 붕괴합니다. '붕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것이 곧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는 서로가 손을 내밀어 서로를 '구원하려' 해도 오히려 갈등의 골만 깊어지던 과거의 가족에서, 가족 구성원이 각자 독립하면서 더 나은 가족이 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류는 이 작품에서 놀랄만치 세밀한 묘사와 읽는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지루하지 않은 전형성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의존하고 심지어 자신의 미래까지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모습, 즉 일본 근대의 '가족=사회=국가=민족' 이데올로기를 질타합니다. 물론 일본이 아닌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문제 제기는 온당해 보입니다. 한 번,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사족: 이 작품에서 제 주의를 끌었던 것은, 가족 구성원 중에서 남자 둘은 현실에 패배하고 여자 둘은 당당하게 맞서서 이겨내는 모습이었습니다. 참, 일본에서 류가 직접 각색한 극본으로 TV 아사히(朝日)에서 드라마화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일본 최고의 아이돌 중 하나인 마츠우라 아야(松浦亞彌)가 출연했죠.

목차
서장 | 직경 십 센티미터의 희망
1 우치야마가의 아침
2 오전~심야
3 우치야마가의 저녁 식사
4 밤~새벽
5 오후~밤
6 아침~심야
7 크리스마스 이브
종장 | 아키코

책 속에서
  "They can't make me quiet -- 그놈들은 절대로 나를 그만두게 할 수 없다는 뜻이야. 우리는 뭔가를 시작한 후에 힘들어지거나 지겨워졌을 때, 쉽게 그만둘 생각을 하잖아? 로드맨의 영화를 보고, 난 쉽게 그만두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 뭔가가, 또 누군가가 나를 그만두게 만들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 자신이 아닌 어떤 힘이 말이야. 그건 같이 공부한 칠십 명의 학생일지도 모르고, 보석 디자이너는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아버지일지도 몰라."
- p.64

  "이 소설은 구하고 구원받는 인간관계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누군가를 구원함으로써 자신도 구원받는다는 상식이 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그 폐해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런 사고방식은 자립을 저해할 경우가 많다."
- 작가의 말

원서 정보
작가 : 무라카미 류(村上龍)
제목 : 최후의 가족(最後の家族)
출판사(단행) : 겐도샤(幻冬舎)
초판(단행) : 2001-10-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모래의 여자
민음사, 2001-11-10

2003년 1월 14일 씀.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이 곳'과 '그 곳' 그리고 실종

  곤충채집을 위해 2박 3일의 휴가를 내고 사구(砂丘)로 떠난 초등학교 선생이, 마을 사람들에게 속아 모래 구덩이 속에 가둬져 한 여자와 같이 계속해서 모래를 퍼낸다……. 음, 흥미있는 설정이다.

  가끔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담담하고 중얼대는 듯한 어조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조금의 자폐심리와 자신은 잘 모르는,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카프카의 영향이 조금 짙게 느껴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에 의해 자신의 위치가 바뀌게 되고, 거기에 있는 힘을 짜내어 나름대로 저항하지만 끝내는 패배하게 되는, 그런 것.

  왜 그가 '이 곳'에서 모래를 퍼내고 있어야 하는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은 현실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저항하고, 저항한다. 하지만 견고한 '이 곳'은 그의 저항 자체를 무시하고, 종내 주인공은 힘이 빠져버린다. 탈출에도 한 번은 성공하지만 다시 붙잡혀 오게 되고, 점점 주인공은 갇혀있는 '이 곳'과 자신이 갈구하는 자유가 있는 '그 곳'의 차이를 인식할 수 없게 되어간다. 어디가나 세계에서는 매일 똑같은 일상이 펼쳐진다. 매일 단조롭게 모래를 퍼내야 하는 '이 곳'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그 곳'이나 말이다.

  새로운 종(種)을 발견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려던 주인공은, '이 곳'에서 기계처럼 모래를 퍼내면서 자신이 갇혀있는 '안'과 '밖'이 겉보기와 달리 서로 연결되어 있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은 '저 곳'에서 실종된 자신이 '이 곳'에서 모래를 퍼내며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주인공이 겪는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변화를 관찰자의 시점에서 철저하게 냉정한 태도로 서술하다가, 어느 순간에 주인공의 입이 되어 쉴새없이 독백하게 만드는 장면전환은 작품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작품 전체를 휩싸고 도는 성적인 분위기가 천박하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으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약간은 허황된 설정을 지독히도 사실적인 묘사와 배경지식으로 감당해내는 작가의 깜냥이 참으로 부럽다.

  과연, 그는 탈출에 성공했을까?

목차
제1장
제2장
제3장

책 속에서
  1.
  오호! 이거야 놀랍군요, 선생이 드디어 뭘 쓰실 결심을 하셨단 말이죠. 역시 체험이 최고로군요.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지렁이도 제 몫을 못한다고 하니 말이죠……. 고맙습니다, 실은 벌써 제목까지 생각하고 있는데요……. 오호, 어떤 제목입니까? ……<사구의 악마>나 아니면 <개미지옥의 공포>……. 야, 그거 무척 엽기적이로군요. 그런데 어째 좀 저급한 인상을 주는 것 같은데……. 그런가요? ……그러나 아무리 강렬한 체험이라도 사건의 표면만 훑어서야 별 의미가 없으니까요. 역시 비극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고장 사람들이고, 글을 씀으로 해서 다소나마 해결방안이 모색된다면, 모처럼의 체험이 감사의 눈물을 흘릴 겁니다…….

  2.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수 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오늘이 아니면, 아마 내일, 남자는 누군가를 붙들고 털어놓고 있을 것이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원서 정보
작가 : 아베 코보(安部公房)
제목 : 모래의 여자(砂の女)
출판사 : 신쵸샤(新潮社)
초판 : 1962-06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신우일신 2005-08-11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