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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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모래의 여자
민음사, 2001-11-10

2003년 1월 14일 씀.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이 곳'과 '그 곳' 그리고 실종

  곤충채집을 위해 2박 3일의 휴가를 내고 사구(砂丘)로 떠난 초등학교 선생이, 마을 사람들에게 속아 모래 구덩이 속에 가둬져 한 여자와 같이 계속해서 모래를 퍼낸다……. 음, 흥미있는 설정이다.

  가끔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담담하고 중얼대는 듯한 어조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조금의 자폐심리와 자신은 잘 모르는,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존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카프카의 영향이 조금 짙게 느껴진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에 의해 자신의 위치가 바뀌게 되고, 거기에 있는 힘을 짜내어 나름대로 저항하지만 끝내는 패배하게 되는, 그런 것.

  왜 그가 '이 곳'에서 모래를 퍼내고 있어야 하는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은 현실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저항하고, 저항한다. 하지만 견고한 '이 곳'은 그의 저항 자체를 무시하고, 종내 주인공은 힘이 빠져버린다. 탈출에도 한 번은 성공하지만 다시 붙잡혀 오게 되고, 점점 주인공은 갇혀있는 '이 곳'과 자신이 갈구하는 자유가 있는 '그 곳'의 차이를 인식할 수 없게 되어간다. 어디가나 세계에서는 매일 똑같은 일상이 펼쳐진다. 매일 단조롭게 모래를 퍼내야 하는 '이 곳'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그 곳'이나 말이다.

  새로운 종(種)을 발견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려던 주인공은, '이 곳'에서 기계처럼 모래를 퍼내면서 자신이 갇혀있는 '안'과 '밖'이 겉보기와 달리 서로 연결되어 있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은 '저 곳'에서 실종된 자신이 '이 곳'에서 모래를 퍼내며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주인공이 겪는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변화를 관찰자의 시점에서 철저하게 냉정한 태도로 서술하다가, 어느 순간에 주인공의 입이 되어 쉴새없이 독백하게 만드는 장면전환은 작품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작품 전체를 휩싸고 도는 성적인 분위기가 천박하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으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약간은 허황된 설정을 지독히도 사실적인 묘사와 배경지식으로 감당해내는 작가의 깜냥이 참으로 부럽다.

  과연, 그는 탈출에 성공했을까?

목차
제1장
제2장
제3장

책 속에서
  1.
  오호! 이거야 놀랍군요, 선생이 드디어 뭘 쓰실 결심을 하셨단 말이죠. 역시 체험이 최고로군요.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지렁이도 제 몫을 못한다고 하니 말이죠……. 고맙습니다, 실은 벌써 제목까지 생각하고 있는데요……. 오호, 어떤 제목입니까? ……<사구의 악마>나 아니면 <개미지옥의 공포>……. 야, 그거 무척 엽기적이로군요. 그런데 어째 좀 저급한 인상을 주는 것 같은데……. 그런가요? ……그러나 아무리 강렬한 체험이라도 사건의 표면만 훑어서야 별 의미가 없으니까요. 역시 비극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고장 사람들이고, 글을 씀으로 해서 다소나마 해결방안이 모색된다면, 모처럼의 체험이 감사의 눈물을 흘릴 겁니다…….

  2.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수 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오늘이 아니면, 아마 내일, 남자는 누군가를 붙들고 털어놓고 있을 것이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원서 정보
작가 : 아베 코보(安部公房)
제목 : 모래의 여자(砂の女)
출판사 : 신쵸샤(新潮社)
초판 : 196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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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해피리딩 2005-08-11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