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
웅진닷컴, 2002-12-16

2003년 4월 8일 씀.

페일레스 peilles@gmail.com


가족이라는 이름의 허울을 벗겨내다

  무라카미 류라는 사람은 정말 다양한 곳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글을 쓰고, 사진집을 낸 사진 작가이기도 하고, 세계 미식가 협회 임원이기도 하구요. 테니스와 축구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평론을 쓰고 있습니다. TV 토크 쇼와 라디오 DJ도 했었고, 음반 레이블을 운영하고 쿠바 밴드의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경제·금융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 책도 쓰고 <Japan Mail Media>라는 관련 메일링 리스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럽에는 소설가보다 영화감독이라는 직함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기도 한, 뭐랄까,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그에게는 많은 소설가들이 거치는 '개인적 체험 중심에서 사회와 세계관의 문제로'라는 작품 성향의 변화는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한없이' 개인적인 체험을 담은 작품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1976)>가 류의 데뷔작인 것은 모두 아시겠지만, 그 뒤에 연이어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은 <코인로커 베이비스 (1980)>와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 (1987)>을 발표했으니까요. 그 뒤에 나온 <69 sixty nine (1987)>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듯 현실감 있는 과거로 독자를 끌어들입니다.

  오늘 얘기할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은 앞에서 마음대로 나눈 세가지 분류 중에서 두번째,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과거와 같이 이야기를 파워 넘치게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니지만 <교코 (1995)> 이후의 변화랄까요, 개인과 사회를 한발짝 떨어진 시선으로 관찰하며 묘사하는 류의 문체는 이전보다 훨씬 세련됐다고 얘기하고 싶네요. 서술 방식에 있어서는 <영화소설집 (1995)>을 생각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영화소설집>에서는 같은 시간, 다른 장소의 이야기를 한명의 화자가 이야기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각 장의 제목처럼 '오전~심야'와 같은 한정된 시간의 이야기를 때로는 같은 장소에, 때로는 떨어져 있는 가족 각자의 시선으로 풀어나갑니다. 이런 특이한 서술 방식이 내용 전달에 실패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읽는 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이 작품의 줄거리를 조금 읊어볼까요. 우치야마(內山)씨 가족은 평범한 일본의 중산층 가족입니다. 아버지 히데요시는 성실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아는 전형적인 중견 샐러리맨입니다. 저녁에 온가족이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는 것이 '가족이라는 고삐(유대)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사람이죠. 어머니 아키코는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자식들을 위해 항상 뒷바라지하는 전통적인 일본의 가정주부이고, 동생 도모미는 오빠 때문에 고민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본의 여고생입니다.

  도모미가 왜 오빠 때문에 고민하냐구요? 바로 집안의 장남인 히데키가 몇년 전부터 일본에서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히키고모리(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큰 줄기를 이루는 두 가지 이야기는 모두 히데키를 중심으로 흐릅니다. 바로 '히키고모리'와 '도메스틱 바이얼런스(가정 폭력)'인데요. 집에만 있던 히데키가 용기를 내어 바깥을 향한 구멍을 창에 내고, 우연히 내다본 창밖으로 도메스틱 바이얼런스를 목격한다……, 그런 것이지요.

  자,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뒤의 줄거리는 생략하겠습니다. 중학생 독후감도 아니고 말이죠. 어쨌든 끝내 네 사람의 가족은 붕괴합니다. '붕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것이 곧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는 서로가 손을 내밀어 서로를 '구원하려' 해도 오히려 갈등의 골만 깊어지던 과거의 가족에서, 가족 구성원이 각자 독립하면서 더 나은 가족이 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류는 이 작품에서 놀랄만치 세밀한 묘사와 읽는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지루하지 않은 전형성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의존하고 심지어 자신의 미래까지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모습, 즉 일본 근대의 '가족=사회=국가=민족' 이데올로기를 질타합니다. 물론 일본이 아닌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문제 제기는 온당해 보입니다. 한 번, 가족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사족: 이 작품에서 제 주의를 끌었던 것은, 가족 구성원 중에서 남자 둘은 현실에 패배하고 여자 둘은 당당하게 맞서서 이겨내는 모습이었습니다. 참, 일본에서 류가 직접 각색한 극본으로 TV 아사히(朝日)에서 드라마화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일본 최고의 아이돌 중 하나인 마츠우라 아야(松浦亞彌)가 출연했죠.

목차
서장 | 직경 십 센티미터의 희망
1 우치야마가의 아침
2 오전~심야
3 우치야마가의 저녁 식사
4 밤~새벽
5 오후~밤
6 아침~심야
7 크리스마스 이브
종장 | 아키코

책 속에서
  "They can't make me quiet -- 그놈들은 절대로 나를 그만두게 할 수 없다는 뜻이야. 우리는 뭔가를 시작한 후에 힘들어지거나 지겨워졌을 때, 쉽게 그만둘 생각을 하잖아? 로드맨의 영화를 보고, 난 쉽게 그만두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 뭔가가, 또 누군가가 나를 그만두게 만들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 자신이 아닌 어떤 힘이 말이야. 그건 같이 공부한 칠십 명의 학생일지도 모르고, 보석 디자이너는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아버지일지도 몰라."
- p.64

  "이 소설은 구하고 구원받는 인간관계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누군가를 구원함으로써 자신도 구원받는다는 상식이 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그 폐해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런 사고방식은 자립을 저해할 경우가 많다."
- 작가의 말

원서 정보
작가 : 무라카미 류(村上龍)
제목 : 최후의 가족(最後の家族)
출판사(단행) : 겐도샤(幻冬舎)
초판(단행) : 200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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