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네가 있으니까 - 우리 시대 젊은 문인들의 유쾌한 인생과 따뜻한 위로
김연수 외 지음 / 마음의숲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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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위로가 많이 필요한 시절이다. 다들 밥벌이 하기 바쁜 시기에 '괜찮아, 네가 있으니까'라고 말해 줄 지인이 있다면 매우 행복할 터이다. 이 시대를 아름답게 하는 작가들의 글 모음이 책으로 나왔다. 신문이나 다른 에세이집에서 읽어봤던 익숙한 글도 보인다.  

 홀로 우뚝서려 해도 밑둥마저 간수하기 버거운 시절. 웅숭깊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건 진정 성인이거나 안분지족할 양식이라도 있는 적당히 가진자들의 삶의 형태일 터. 그러기에 이들의 위로는 밑을 훑는 진득함에 있어선 점수를 주기 힘들다. 그래도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며 같이 아파하자는 말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추억을 공감하게 끔 하는 진솔함은 쉬이 져버리기 힘든 매력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지만 여전히 날은 차다. 오늘은 비까지 내린다 하니 울적한 심사를 가진 이에겐 마음마저 휑할테다. 그런 마음이 한번쯤 볼만한 책이다. 자기 연민과 결합돼 있는 우울함은 초기엔 달고 아찔한 매력을 준다. 하지만 이 마약같은 감정이 만성이 돼 버린다면 사람의 마음에 기생하는 일부분에 불과한 이 어둔 감정에 영혼이라는 숙주마저도 내 줄지 모른다. 적당히 가볍고 쉬운 이 책은 우울함이 이빨을 드러낼 적에도 싱긋이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제공할 터이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에도 예방주사가 필요한 법이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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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3-13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시에 꽤나 관심이 많아졌는데.. 나이가 들수록 여유있는 문장들이 그리워지나 봅니다.
"위로가 많이 필요한 시절" 이라는 문구가 계속 눈에 밟히네요.

오랜만에 봄비가 촉촉히 내리는 아침인데요. 여유 있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바밤바 2009-03-14 16:23   좋아요 0 | URL
네 써클님~ 님 아이디 보니까 왠지 다크써클이 생각나는데.. 전 다크써클 심한 팬더를 좋아라 합니다. ㅎ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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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 때 장하준을 열렬히 사랑했다. 그의 서적은 꼬박 꼬박 챙겨 보았고 그가 기고한 칼럼은 거의 다 찾아 보았다. 장하준의 글은 주류 경제학자의 글과는 달랐으며 무엇보다 캠브리지 대학 교수라는 직함은 그러한 다름에 '시크'함을 더해줬다.

 하지만 지금 장하준은 애달픈 설렘이 아닌 그냥 괜찮은 학자 정도로 자리매김 하였다. 아마도 장하준이 보여 준 그 엄청난 자기복제에 질렸던 것이리라. 그가 지은 책인 '사다리 걷어차기'나 '개혁의 덫'과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항상 등장하는 '스위스는 흔히 알고 있는 금융 강국이 아니라 제조업에 엄청난 비교우위를 지닌 제조업 강국' 이라는 표현은 클리셰를 넘어 지겹기 까지 하다.  

 무엇보다 지난 학기 수강한 경제학사 수업에서 제도학파를 공부하며 장하준의 주장이 그렇게 '다른' 주장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그에 대한 애정이 식은 듯하다. 연구하며 수업하며 중앙 선데이에 가끔씩 글을 기고하는 학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하준이란 브랜드가 지닌 상징성을 희석시키는 그 동어반복의 많은 책은 장하준에 대한 고찰을 요구한다. 장하준과 함께 대중적 경제학자로 주로 언급되는 우석훈의 글은 그 넓은 스펙트럼 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하기에 언제나 신선하다.(물론 정교함은 장하준이 낫다.) 또다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언급하며 보호무역의 실효성을 긍정하는 책이 장하준의 이름으로 나온다면.. '잊혀진 계절'로만 기억되는 이용이란 가수처럼 장하준도 하나의 상징어로만 기억되는 잊혀진 인물이 내겐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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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난 나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무언가 뜨거운 것이 가슴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올 듯 했지만 기민한 신경세포들은 감정을 추스리는 데 익숙해서인지 애써 웃음 지으며 돌아서게 했다. 그런게 아니였다고.. 네 말은 다 자기 합리화라고.. 그런 말이 지금도 머릿속을 맴돌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한 순수한 굴종이 자기 합리화의 소산인지, 인간 사이의 충돌을 저어하는 비겁한 자아의 소산인진 모르겠지만 난 묵묵히 그 얇은 변명에 침묵으로 미소지었을 뿐이다. 

 아마 내가 무척 게을러진 이후부터 내 언어는 발화되지 못한 채 홀로 삭아가는 어느 젊잖은 홀애비나 과부 같은 양상을 띄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기에 타인을 언어로 제압하지 못하는 과도한 일관성의 견지는 악순환처럼 내 몸을 묶었던게 아닐까. 그들의 언어의 표층을 해체하고 심층을 다 보여주고픈 때도 많았지만 몸을 피로케 하기 싫다는 가장 치열하면서도 사소한 이유로 나는 평화주의자가 되어갔다.  

 매 년 수백권의 책을 읽고 수백편의 영화를 보며 오롯한 나만의 성채를 켜켜이 쌓아올려 왔지만 시나브로 초라해지는 성안의 풍경은 무언가 변화를 일으키라 요구한다. 다시금 싸움닭처럼 온몸을 피로 물들이며 살아보는 것도 좋을테다. 아니면 성안의 해자를 다 메우고 널리 소통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항상 나름의 최선을 다해 왔지만 행복이 아닌 견디며 살아 온 듯한 지난 날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누가 나한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평을 써달라고 했는데..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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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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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의 문장은 난해하다. 그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암호처럼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 철학자나 미학자를 아무런 주석없이 글에 묶어내는 진중권에겐 거만함도 느껴진다. 왠만한 배경지식은 갖추고 내 책을 읽으라는 지식인의 거만함 말이다. 많은 사유를 표현하려다 보니 문장이 조잡하고 그 행간을 여러번 읽어야지만 파악 가능할 정도로 어렵다.  

 다만 이 책은 왠만한 미학 내지는 철학적 지식을 갖춘 이에겐 새로운 사유를 느끼게 해 줄 좋은 참고서가 될만하다. 에라스무스 보쉬나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보지않고도 바로 연상할 수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꽤나 흥미진진하게 볼 것이다. 난해한 문장에 적응이 돼서 그런지 뒤로 갈수록 읽기 수월해 지는 맛도 있다. 미학자나 사회학자를 들먹이는 초기보다 후기에 나오는 철학자에게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역설적 매력이다.(그 정도로 이 책에 나오는 사람 이름을 가장한 함축적 상징어들은 독자를 힘들게 한다.) 

 진중권, 이 분 말도 잘하시고 글도 잘 쓰신다. 하지만 자신의 전문분야인 미학이나 철학에 있어서는 대중과 소통하려기 보다는 제 생각을 풀어내기에 바쁜 듯하다. 또한 곳곳에 보이는 '누가 그랬던가..' 하며 출처를 명확히 하지 않는 부분은 정성이 부족해 보인다. 미학자 진중권의 사유를 좇다 보면 어느새 발바닥에 땀띠가 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지 모른다. 인문학의 위기란 말을 자주하는데, 대중화된 지식인의 대표격인 진중권의 글은 이러한 위기를 더 부추기는 듯하다. 대중과 소통을 하지 않고 대중을 괴리 시키는 그의 문장은 진중권 팬의 입장에서 다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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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3-24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볼까 생각하던 책인데 '누가 그랬더라'식이라면 에세이로 분류되어야겠군요 ^^
주석과 출처를 잘 밝히지 않는 사회과학 서적을 싫어하는지라~

바밤바 2009-03-25 15:48   좋아요 0 | URL
진중권씨가 장르를 모호하게 해서 쓴 책인 듯. 재미는 있어요.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죠. ㅎ

무해한모리군 2009-03-26 08:49   좋아요 0 | URL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전제하 → 의지 급하강 ㅠ.ㅠ 잘모르는 분야예요.

바밤바 2009-03-2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뭐 이제부터라도 관심 가지면 되니까 심려치 마소서. 휘모리님. 솔직히 책이 좀 어렵긴 했어요. ㅎㅎ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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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 하나하나가 힘있고 올곧다.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려다가도 올곧은 문장에 '외로이 황홀해'지는 심사는 가슴을 뛰게한다. 김훈이 죽음과 삶에 관한 생각을 책으로 냈다. 죽음을 두려워 하고 삶의 비천함을 긍정하는 문사의 자기 확신은 문장처럼 명쾌하다. 명쾌한 문장 뒤에 숨은 고민은 이순신의 글처럼 행간에서만 알아야 할 터. 예스런 낱말과 고유어의 조합은 문장의 격을 높인다. 짧게 끊어치는 문장의 향연엔 문장을 꾸미는 수사마저 사치로 보이게 한다. 

 딸의 월급 봉투에서 풋것의 그 무언가를 느꼈다는 묘한 감상은 정직한 문체에 사람의 살냄새를 느끼게 해준다. 많은 생각이 중첩되어 나온 짧은 문구의 리듬감은 낭독해서 읽어도 좋을 듯하다. 생각을 풀어내는 것만으로 하나의 책이 되는 경지.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쓰는 이 문사의 형이하학적 글쓰기는 이젠 그 어떤 고귀한 이유로 글쓰는 자들의 문장보다 더 격이 높아진 듯하다.  

 워낙 많은 리뷰가 달린 책이라 내 글이 별 의미 없는 글뭉텅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문사의 글에 리뷰를 달고 싶은 건, 글이 준 경탄에 대한 나름의 마음 씀씀이다. 아름다운 보수주의자 김훈, 부디 더 많은 글로 자신을 변명하고 강변하며 세상을 향해 소리 높였으면 한다. 사족을 달자면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들의 서간 묶음 또한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책의 분량을 채우기 위한 출판사의 고육계지만 삶과 함께 변해 온 문사의 문장을 손쉽게 접하는 것도 그리 흔한 기회는 아닐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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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3-0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그의 글은 거짓이나 타협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읽은 그의 짧은 글.. 그 때가 생각 나네요.

바밤바 2009-03-02 09:20   좋아요 0 | URL
써클님 오랜만이네요. 헤헤~ 김훈씨 글을 보고 나면 말 그대로 안구가 정화되는 듯. 저도 모르게 그분의 문체를 따라하며 흐뭇해하지요. ㅎ

개츠비 2009-03-08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읽고 있는데, 문장의 힘이 느껴지고 가슴이 따뜻해 옵니다. 김훈을 진가를 겨우 깨닫게 된 책이었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바밤바 2009-03-09 09:30   좋아요 0 | URL
아직 더 읽어 봐야 할듯. 김훈이 지은 책이 생각보다 많네요. ㅎ

무해한모리군 2009-03-24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김훈 책에 빠져 계시군요 ㅎㅎ

바밤바 2009-03-25 15:47   좋아요 0 | URL
김 훈. 이름도 외자잖아요. 외로이 따로 간결한 느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