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친구가 끝났다. 올해 처음으로 '본방사수'를 한 드라마 였다. 영화 '친구'를 본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고등학교 단짝 준이와 보았다. 그는 며칠 뒤에 결혼한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빛이 바랜 추억도 희붐히 다가오는 추억도 이젠 다 세월이다. 조금 있으면 동수만큼 나이를 먹을 테다.

  영화는 묘하게 마음에 남았더랬다. 대사가 입에 감겼다. 장동건의 낮은 음성도 좋았다. 양아치스러운 말투와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나도 장동건처럼 일부러 쉰 목소리를 내며 말을 하고 다닌적이 있었더랬다. 지금도 가끔 그런다. 왠지 숨겨진 마초스러움이 드러나는 거 같아 기분을 좋게 한다. 특히 영화 대사를 많이 따라했다. 제일 많이 한게 "아버지 뭐하씨노!"였다. 아비가 홀로 저 멀리 간 이후론 이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워낙 이 말을 많이 하고 돌아다녀 지금도 친구들은 영화 친구 대사 중 이 영화를 제일 많이 기억난다 한다. 아버진 뭐하실까나.. 

 드라마가 끝나니 너무 섭섭했다. 그래서 오늘 늦잠을 잤다. 상실감이 강하게 들 땐 늦잠을 자곤 한다. 드라마가 끝났는데 추억이 하나 끝난 듯하다. 드라마를 보며 그때가 생각나고 그때가 그리웠나 보다. 이제 고작 가을인데 겨울이 되면 주린 마음을 누구에게 의탁해야 하나. 이 글을 쓰고 나면 마음엔 또 다른 태양이 뜰 테다. 무람없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불러야겠다. 아직은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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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소녀의 기도 - 피아노 소품집
낙소스(NAXOS)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엄마랑 누나는 강변에 살았다. 남강변이었을 테다. 촉석루가 지근거리에 있었다. 아빠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랑 누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아빠는 돈을 벌어야 했다. 그게 아비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애정표시였다.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이모는 가끔 놀러와 피아노를 들려줬다. 소녀의 기도라 했다. 나는 기도란 말이 손을 모아 누구에게 소원을 비는 말이란 건 알았다. 이모는 어린 게 똑똑하다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들어보라 했다. 내가 비는 소원이란건 엄마가 나를 덜 때렸으면 하는 거였다. 이모는 내 소원을 아닌지 모르는지 피아노를 연주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곡 같았다. 아마 티비에서 배경음악으로 자주 틀어 준 곡이었던 듯하다. 그렇게 멍하니 다 듣고 나니 이모는 내게 피아노를 가르쳐 준다며 건반 하나하나를 눌러보랬다. 그러면서 그 건반에 이름을 가르쳐 줬다.  

 "이건 도, 이건 레, 이건 미." 

 건반에 이름이 있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이내 싫증이 난 나는 피아노를 두드리다 집앞 놀이터로 갔다. 이모는 조카의 심드렁한 반응에 입이 튀어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 이모가 들고 있던 피아노 악보 표지엔 누나 두명이 있었다. 그게 루느아르 그림이란걸 안 건 내가 그림 속 두 여자만한 나이가 됐을 때였다.  

 피아노 소품집이다. 어릴 때 이모가 들려 준 쉬운 곡들이 가득하다. 구성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작곡가의 의도는 몰라도 된다. 그냥 어릴 때 한번쯤 들어봤을 곡들이다. 앨범 표지에도 두명의 여인네가 있다. 르누아르 그림처럼 마냥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한 멋이 있다. 연주도 소박하다. 꾸미지 않은 맛이다. 

 가끔은 이모가 들려주던 피아노 곡이 그리울 때가 있다. 곱던 이모는 시집을 간 뒤 손이 뭉뚝해진 아줌마가 됐다. 지금 그 연주를 듣는다면, 피아노를 치는 이도 듣는 이도 세월의 무게가 더께로 앉았다지만 마음만은 슬거워질 테다. 추억을 반추해 줄 소품이 있단 것과 추억 속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다. 지금 엄마랑 누나는 강변에 살지 않는다. 더더욱 김소월의 시를 곡진히 읊고 싶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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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가 짧다 보니 배워야 할 게 많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책을 읽고 글로 정리했다. 팩트 부분은 대부분 남에게서 취한 것이고 주장은 대부분 내 고민에서 나온거다. 최근에 순한글 어휘를 주재료로 글을 써왔으나 딱딱한 글의 성격을 고려해 본즉, 사맛디 아니할까 저어하여 상징어를 최대한 동원했다. 말의 리듬을 중시하고 쉽게 읽히는 글을 지향하였으나 공부가 부족하여 말은 엉키고 구성은 난삽했다. 남경태씨가 쓴 '역사'라는 책에서 많은 걸 취해왔으니 내 글이라 할 수도 없겠다.  

 바람이 털을 곤두세우는 것이 소슬한 가을을 느끼게 한다. 신종플루다 취업난이다 하여 제 수상한 요즘이다. 다들 얼어죽지 않기위해 개미를 보며 제 게으름을 책망한다. 베짱이로 살아 온 친환경적 인사들은 마음이 사위어갈 요즘이다. 베짱이는 가을부터 몸을 떨었을 테다. 그는 추위에 얼어 죽은게 아니라 공포에 빠져 죽은게 아닐까. 가을부터 몸서리치게 겨울을 무서워했다면 가슴에 고인 잗다란 걱정이 제 몸을 상하게 한 1순위 였을 것이다. 살갗에 닿는 차가운 공기는 그 걱정이 잗다란게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 정도만 했을 테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걱정은 제 마음 속 망상을 실재화 시키는 듯하다.  

 주제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도시'를 빌렸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알게됐다며 어쭙잖은 지식인 행세를 할 지, 내 눈은 멀지 않았음을 알고 일상에 감사하자는 소시민적 자위를 할지, 또 다른 관점으로 보려하는 일종의 '구별짓기'를 시도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책은 매우 재미있을 듯하다. 여름이 가을에게 제 자리를 내줄 시기엔 이런 무딘 책에도 가슴이 베일지 모른다. 옷을 두텁게 입고 책을 봐야겠다. 구접스럽더라도 덜 아픈게 낫다. 가을은 바람을 노래하고 마음은 달빛에 그늘진다. 슬픈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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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8-30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많이 선선해졌지요? ^^ 살갗을 스치는 바람은 이제 어김 없이 가을이라는 것을 알려주네요. 그 덕인지 별 것 없는데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사라마구의 책을 읽으신다니, 읽고 조금 따뜻한 차 한잔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안그래도 공기가 건조해질텐데 왠지 그런 기운이 더해질까 싶습니다.

음.. 가을을 앞둔 마음이 저와 조금 다르지 싶어 느낌을 전하기에 망설여지지만 가을이 주는 풍성함도 함께 지니셨음 좋겠습니다.

바밤바 2009-08-31 17:29   좋아요 0 | URL
아침에 일어나니 다소 공기가 차더군요. 어느새 가을인가 봅니다. 마음은 언제나 풍성하답니다^^ㅋ

무해한모리군 2009-08-30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먼자들의 도시를 일요일밤 읽다니..
아 난 이제 마음을 베이고 싶지 않아요.
조심조심 피한답니다.

바밤바 2009-08-31 17:29   좋아요 0 | URL
음 누나는 연애를 하시니까 아파도 아프지 않을 듯 ㅋ
아직 덜 읽었는데 재밌네요~ㅎ
 

 

 일사불란한 명령과 집행은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장기적 발전 동력으로 삼기엔 부적절하다. 무엇이든 위로부터의 명령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단 발상에서 창의성이 발휘될 여지가 없다. 또 지표상의 실적을 올리는 전시적 성과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개발독재정권은 외형적 경제 지표의 성장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더 심각한 불균형은 사회 전체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에만 치중하게끔 했다는 점이다. 최고의 가치는 효율성이며 다른 모든 가치는 효율성에 종속된다. 그것도 단기적 효율성뿐이므로 어떤 일이든 속전속결로 성과를 내야 한다. 이런 태도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증후군으로 나타난다. 학문적으로는 실용적 과학기술에 비해 기초과학이나 인문학을 경시하는 풍조로 나타난다. 현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려 한다. 일종의 사회적 퇴행이다. 이러한 퇴행을 저지하기 위해 식자(識者)들이 나서지만 국민에게 하나의 유전자로 각인된 효율 우선주의는 이러한 노력을 버겁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실시되는 지방자치 또한 효율이 우선이다. 역사적으로 지방자치를 해본 경험이 전무 하다는 데에서도 현 지방자치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현 지방자치는 중앙집권을 공고히 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듯 보인다.

 우리 역사에서 지방행정기관은 정부의 명을 받아 그대로 집행하는 기관일 뿐 자체적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권한과 능력이 거의 없었다. 지금도 도 자치단체장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도지사의 ‘知’란 원래 중앙정부가 할당한 임무를 대행한다는 뜻이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왕이 즉위한 뒤에도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기 전까지 자신의 직함을 왕이 아니라 權知國事라 불렀다. 여기서 ‘지’도 도지사와 같이 국사를 잠시 맡아서 처리하는 직책이란 의미다. 동양은 고대 도시국가를 제외하곤 자치적 성격을 가져본 적이 없고 늘 중앙정부의 수직적 지휘와 감독을 받는 행정 도시였다.

 서양은 반대다. 유럽은 대부분 자치도시로 출발했으며, 민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필요성에서 발생했다. 콜로니아(쾰른)나 마실리아(마르세유) 같은 로마시대 식민시, 그리고 알렉산드로스가 동방원정에 창건한 수십 개의 알렉산드리아는 원래 국경을 방어하는 용도였다. 특히 로마제국의 변방에 창건된 군사 도시들에서 총독이 거의 전권을 행사했는데, 이 직함이 훗날 市長의 모태가 된다. 이렇듯 발생과 기원이 자연스러웠기에 서양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내는 세금이 시정에 사용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중세 중기까지 유럽의 도시들은 봉건영주의 장원을 중심으로 한 성채도시나 성당과 수도원 중심의 주교도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12~13세기에 플랑드르와 북이탈리아에서 새로운 개념의 자치도시인 코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자치 도시가 발달하자 사방에서 전직 농노들이 몰려든다. 장원의 닫힌 경제에 비해 활발한 도시에선 누구나 큰돈을 벌 수 있다. 부르주아지의 맹아가 싹튼다. 영주들은 자치도시를 정치적으로 복속시키기보다 적절한 관계를 이루려 한다. 시민들은 혁신적인 자치제를 구성한다. 그런 탓에 황제나 교황도 자치도시의 내정에 간섭하지 못하게 된다. 이 도시들이 나중에 유럽의 르네상스를 주도하게 된 것도 그런 위상을 지닌 덕분이다. 물론 유럽의 왕국에서도 세금은 의무에 가까웠다. 하지만 도시에선 조합을 이루어 일을 결정하고 세금의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민의 세금으로 시정이 운영되는 과정이 명백했으므로 권력자라도 시민의회나 법정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법과 정치권력 앞에서 평등을 보장 받았다. 도시의 발생 과정뿐 아니라 운영에서도 평등한 시민권은 중요했다. 또한 이 도시국가들은 규모가 작아 신분제 회의를 구성할 필요가 없이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다. 여기에 대의제의 개념과 선거제도만 덧붙이면 곧바로 근대 민주주의가 된다. 현재의 지방자치가 수많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선 자치시장의 제도권 진입을 위한 발판으로 쓰인다. 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부재한 탓이다.

 지방자치가 부재한 역사는 우리가 쓰는 말에서도 묘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수도 요금이나 전기 요금을 수도세나 전기세라고 지칭한다. 자신이 쓴 만큼 내는 것이기 때문에 세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공화국의 국민은 세금을 국가에 내야 하지만 그에 따르는 혜택을 받을 권리도 가진다. 복지 같은 것들은 납세에 상응하는 혜택이다. 동양은 납세를 권리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부재하다. 동양에서 공무는 국민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일이라기보다 국민을 관리하는 일이다. 국민들은 세금을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모든 돈을 총칭한다. 왕조시대에 납세가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기 때문이다. 시경(詩經)에 따르면 “천하에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했다. 시경은 춘추시대에 공자가 옛 시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니까 왕토사상의 뿌리는 중국의 역사시대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의 전시과와 조선의 과전법은 왕토사상을 바탕으로 했다. 정부가 임용한 관리에게 녹봉으로 토지 소유권 자체를 내주는 게 아니라 수조권만을 내주는 방식이다. 이에 따르면 토지의 매매가 불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나랏님의 땅을 갈아먹는 백성이라면 당연히 조세를 내야 하는 것이지 거기에 감히 권리 따위를 내세울 마음은 먹지 못한다. 세금이 권리가 아니라 순전한 의무일 뿐이라면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기업은 절세를 넘어 탈세를 꾀하고, 재벌은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자식들에게 편법으로 재산을 증여한다. 결국 행정기관에 납부하는 돈을 세금이라 지칭하는 건 국가가 주는 혜택을 누려보지 못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탈의 역사가 꽤나 오래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왕조 체제는 유지될 수 있었을까?

 바로 이념 때문이다. 특히 유학은 백성의 무의식과 이성에 작용해 조선 왕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유교 예법은 유교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고려 말에 도입돼 조선 왕조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다. 특히 16세기 초 조광조가 여씨향약을 전국에 보급하고 향촌까지 성리학적 질서로 편제한 이래 유교 예법은 지배층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도 널리 퍼졌다.

 중국 역사에선 1차 분열기인 춘추전국시대에 유학이 탄생했다. 기원전 2세기 한 제국은 유학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채택했다. 당 시대엔 유학의 이념에 바탕을 둔 국가 체제를 만들려 했으며 율령제와 과거제를 도입했다. 청나라 땐 명대 후기에 나온 비교적 개혁적 성격의 유학인 양명학을 고증학이 눌렀다. 오히려 주자학을 다시 전통으로 세운 것은 유학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단 증거다. 결과적으로 서양과 달리 동양의 예법은 문화적 관습에 불과한 게 아니라 사회전반을 규제하는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결국 그 때문에 사회 발전의 질곡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화세계가 붕괴하고 나서도 이러한 유학을 끝까지 섬겼다.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장기집권하게 되면 썩게 되기 마련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예송 논쟁이다.

 예송 논쟁의 의미는 두 가지다. 첫째, 조선의 지배층은 중국을 과거에 사대했던 중화세계의 연장으로 보지 않았다.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섰다. 중화는 조선으로 넘어와 소중화가 되었다. 이제 모든 예법을 조선에서 다듬고 새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서인과 남인이 비장한 자세로 예법을 두고 설전을 벌인 이유가 있다. 둘째, 15세기 이후 왕 대신 중앙권력을 장악해온 조선의 사대부는 이제 왕실의 복상 문제까지 결정하기에 이른다. 16세기까지 중국이란 상국이 있었기에 신분적으로 조선 왕은 황제의 제후였다. 명 제국이 사라지자 그런 형식적 서열마저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콤플렉스를 가진 왕과 소중화 사상에 젖은 사대부들의 욕구가 북벌이란 기획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소중화 사상은 민중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국사 교과서에서 우리나라의 주체성 확립의 사례로 언급하는 진경산수화는 기실 소중화 사상이란 병리적 현상의 확대였다.

 진경(眞景)이란 진짜 경치를 뜻하는 말로 조선의 경치를 가리킨다. 18세기부터 그려진 진경산수화는 정선을 필두로 심사정, 김홍도, 신윤복까지 이어진다. 동양은 풍경화가 지배적이었고 서양은 초상화의 전통이 강했다. 초상화는 권력자의 의뢰와 명령을 받아 그린 것이므로 예술성 보단 기능성이 위주였지만 풍경화는 화가가 솜씨를 부릴 여지가 컸다. 지금은 미술에서 사실성이 기본이라고 여겨지지만 당시엔 이상화되고 표준화된 경치에 약간의 상상력을 섞어 표현하는 게 중요했다. 서양에선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에서 이상화된 경치를 지향하는 근대적 풍경화가 나타난다. 하지만 동양에선 이상적이고 관념화된 경치만을 묘사했다. 중화세계의 중심이 언제나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진경산수화가 탄생했다는 것은 고답적 자세에서 탈피해 진짜 살아있는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단 의미다. 이것은 소중화 사상의 연장이다. 자주화와 주체 노선이 찬미되던 때였으니 진경산수화를 그린 화가들은 잔뜩 자부심을 품었음직하다. 미술만 아니라 판소리, 탈춤 등도 18세기에 체계화되고 정리된다. 결국, 조선이 유학의 중심이란 자가당착적 사고가 진경산수화 같은 우리문화를 찬미하는 풍조라 나타난 것이다.

 결국 현재의 지방자치는 중앙집권을 중시해 온 과거의 전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유학과는 또 다른 형태의 이데올로기인 지역이기주의와 효율성 우선 성장이란 결과를 낳았다. 이명박은 그렇다 치고 김문수 도지사가 이렇게까지 중앙중심주의를 설파하는 건 그의 과거를 보면 상당히 의외다. 진보신당의 심상정 대표와 함께 우리나라 노동계를 이끌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고문까지 받았던 김문수였다. 그의 표변에는 이광수가 부르짖었던 민족개조론과 같은 메스꺼움도 느껴진다. 물론 이러한 퇴행적 개발주의와 중앙중심주의의 기저에는 수도권 중산층이 바라는 부동산 값 증가로 인한 자산 증식이란 목적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소중화주의처럼 퇴행적일 뿐이다. 조선이 세계에 중심이듯 수도권이 한국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균형과 분배를 향해 전개돼 온 역사에 반하는 행위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집중과 효율은 삶을 도구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지금 전개돼야 할 것은 중앙의 패권주의를 분쇄하고 좀 더 나은 나라를 위해 양보하고 타협하기 위한 논쟁이다. 이것은 예송논쟁보다 훨씬 치열해야 하며 어떻게든 매듭을 지어야할 커다란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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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학벌 문제가 점차 피부에 와 닿는다. 예전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회와의 직접 접촉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자 약간의 피해의식이 생긴다. 많은 사람은 학벌은 귀속지위가 아니라 성취지위이고 사회적으로 엘리트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인정해야 한다 말한다. 무엇보다 수능이란 공정한 입시 체제를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능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수능은 공정한 체제가 아니다.

 수능과 같은 시험의 기원은 과거제이다. 587년 수 문제가 처음 과거를 시행했다. 이후 과거제는 20세기 초까지 시행된다. 한반도에선 958년인 고려 광종 때 도입된다. 이후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된다. 과거의 과거 과목은 명경과 제술, 잡과로 나뉜다. 명경은 경전을 얼마나 읽었느냐, 제술은 글을 얼마나 잘 쓰느냐이며 수학, 의학, 법학, 점술, 기술 같은 것들은 잡과로 망라된다. 책과 글을 존중하는 태도는 일견 학문을 숭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회 각 부문에 작용하는 다양한 가치관을 문헌에 의거한 전통적 가치관으로 획일화하고 집중시킨다. 특히 경험을 무시하는 풍조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문학과 문인에 대한 지나친 엄숙주의와 책과 글이 존중되면서 정작 인문학이 등한시되는 기묘한 현상은 그런 전통의 소산이다. 시험을 치르고 점수를 매기는 것도 객관적인 방식인 듯싶지만 실은 인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뜻이다. 시험으로 인원을 선발하는 제도의 근본적 문제는 결과 지상주의에 빠진다는 점이다. 현재의 학벌 지상주의는 이러한 결과 지상주의의 소산이다. 또한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하고 학벌에 대한 숭상을 낳는다는 점, 무엇보다 학문을 획일화 시키고 공업이나 농업 같은 경험 중시 학문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현 사회 문제의 근간을 형성한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정규직이 되기 힘든 현실은 모두가 획일적인 공부를 하여 자신만의 강점을 지니기 어렵고 자신의 실력을 객관화 하는데 지나친 노력이 투여된다는 데 있다.

 서양은 조금 달랐다. 시험 만능주의 동양에서는 주관적 정실과 연고가 더 중요하다. 추천으로 인재를 발탁하는 서양에선 비교적 능력 위주의 객관적 기준이 중시된다. 과거에 응시하려면 경제적 환경이 뒷받침 돼야 하고 과거 준비를 위한 문헌은 쉽게 구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과거에 합격한다 해도 출세를 위해선 연고나 학맥, 가문의 배경이 필요했다. 고로 신분제를 오히려 강화했다. 서양에선 시민의 시대로 접어들며 공직이 선출직이란 관념이 자연스러웠다. 서양에선 근대 초기 귀족이 공직자가 되었고 시민사회에선 선거를 통해 공직자가 임용되었으므로 동양보다 부패가 적었다. 동양식 관료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정부가 주도했고 서양은 동양보다 훨씬 느슨했고 시민사회 이후엔 민간이 주도하는 체제를 취했다. 결국 요즘 같이 각 가정의 교육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에선 부잣집 자제가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런 자제들이 나중에 국가고시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사시나 행시가 공정한 듯 보이지만 이러한 진입장벽이 있다. 고시를 통과해도 출세하기 위해선 인맥이 중요하다. 결국 공정해 보이는 한국의 시험 체제는 기득권층의 이해와 부합하는 측면이 많다.

 현 정부 또한 고시를 통해 선발된 관료층이 매우 두텁다. 이명박 개인이 욕을 먹고 있지만 기실 이러한 관료들에게도 비판의 화살이 돌아가야 한다. 관리의 권력은 직위에서 나온다. 왕조에선 군주에게서 권력을 받았다. 이런 권력의 이중성은 유학 이념에 특유한 학자-관료 개념에 뿌리를 둔다. 유학은 탄생할 때부터 정치 이데올로기 속성이 강했고 현실적이고 실천적 이념이었다. 유학 본성 자체가 경영을 목적으로 했고 조선은 처음부터 유교 왕국을 표방하고 나섰으므로 학자와 관료는 이념적으로나 신분적으로 거의 일치했다. 사림파 대부분이 현직관료가 아닌데도 현실 정치에 관여하고 훈구파와 맞서 승리할 수 있었다. 16세기 조식은 관직에 진출한 적이 없지만 그의 제자들은 학맥을 이뤄 이황의 제자들과 치열한 당쟁을 펼쳤다. 17세기 유학자 송시열은 만년에 몇 년 동안 정승직을 지낸 것 밖에 없지만 예송논쟁에 깊이 관여했고 고위 관직에 있는 제자들을 통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관료제가 발달할수록 왕과 관리의 권력은 이중 구조를 가지게 된다. 세조의 쿠데타 이후 왕당파인 훈구파에 맞서 선비들은 사림파를 형성하며 사대부 국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중종반정 때 처음으로 왕을 자신들이 세울 수 있었다. 왕은 기획자와 집행자로서 사대부들이 필요했고, 사대부들은 권력의 상징으로서 왕이 필요했다. 그런 탓에 왕도 사대부들도 잘못된 국정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다. 중종 옹립 이후 사대부들은 자기들끼리 다투기 시작했다. 그전까지의 사화가 왕권과 신권의 대립으로 빚어진 데 비해 이 시기 왕은 상징으로만 군림할 뿐 사대부 내부에서 권력다툼이 벌어진다. 이때부터 당쟁이 심화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책임 정치가 실종되고 정권 후반기에 앞서의 과오를 대통령에게 집중적으로 뒤집어씌우는 데는 이러한 역사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정치적 오리엔테이션이 강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사회에선 흔히 이중권력 체제가 생겨난다. 이것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친다. 보스정치가 그런 예다. 하나의 정파에서 보스는 상징적 우두머리로 군림하고 실제 정책은 보스의 심복들이 보스의 이름을 빌려 집행한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항상 막후에서 일어난다. 그런 탓에 정계에는 항상 음모가 판친다.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완전히 분리되고 모든 정치적 발언은 청취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 된다. 이재오나 이상득의 행동에 언론이 초점을 맞추는 이유도 그러한 데 있다. 또한 친박연대라는 당 이름은 우리나라 특유의 심복정치를 노골적으로 나타낸다. 박근혜를 ‘근혜 공주’라 불렀던 이유에는 박근혜는 얼굴마담이고 실세를 따로 있다고 여기는 대중의 인식을 반영한다.

 결국 수능이란 국가대사로 대표되는 시험들은 관료라는 기득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사회를 획일화 시킨다. 또한 관료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당과 밀접하게 관련돼 움직인다. 정당 또한 특정인을 왕과 같은 ‘보스’로 내세운 뒤 실권을 행사하는 묘한 이중권력으로 움직인다. 사림과 왕이 묘하게 공생해 온 조선시대와 다를 바 없다. 또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사시를 패스한 판․검사나 행시 출신의 관료가 많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주관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권력을 갖는 것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들이 삼권분립의 토대인 행정부와 사법부 소속이 대부분이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입법부로 소속을 옮기기 위해선 정당이나 기득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행정 집행이나 사법 판결이 공평무사하게 이뤄지기 기대하기 어려운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결국 야망이 클수록 국가이익이나 법리 보다는 개인의 이해관계를 우선시 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쌓아 둔 인맥이 정치권 입성의 길을 닦아 주니 과히 불공정 담합이라 할 만 하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나라가 그렇게까지 바뀌지 않았던 이유에는 조직 깊숙이 자리한 치열한 이해 다툼을 통제하지 못해서다. 보스 정치를 당연히 여긴 민주당 실세들의 관성도 꽤 작용했을 테다. 어차피 욕은 국가의 수반이 먹으므로 책임정치보단 빠른 줄서기 문화를 통한 기득권 확보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결국, 이러한 자잘한 역사의 누적분이 국가 정체(停滯)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이상 더 좋은 한국을 만들긴 어려울 테다. 흔히들 말하는 문, 사, 철이 국민의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과 그 주위 가신들이 바뀌어야 한다. 여전히 정책은 상명하달식인 경우가 많고 민중의 힘으로 역사적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선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소모되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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