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 비해 발전이 늦었다고 생각할수록 지배자는 국가를 도구화하게 된다. 국가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고 힘을 집중시켜야만 다른 나라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생래적인 다양성, 다원성 따위는 안중에 없다. 지배자는 독재자가 되어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루고 국가를 일사불란한 기계처럼 운전하려 한다. 설사 권력욕이 아니라 애국심에서 나온 의도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히틀러가 그랬고 박정희가 그랬다. 17세기 후반 러시아제국의 표트르처럼 계몽 군주로 자처한 지배자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내세운 7.4.7 공약 또한 이러한 몰지각한 관점의 소산이다. 국가를 하나의 기업체로 보고 더 빠른 성장을 통해 정치력 부족을 메우려는 이해타산도 작용한 듯하다. 허나 경제위기나 정부비판 여론 확산으로 국가 운용이 어렵게 되자 최후의 보루로 내세운 것이 법치다. 법에 따른 통치란 말은 일견 옳은 듯하다. 허나 법이 자의적으로 운용되어 온 과거는 법치란 말이 내재한 행정편의주의와 독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현 정부는 법치는 설핏 서양의 형태를 따온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법치주의는 동양적 전통에 따른 것이다. 물론 서양의 역사에선 일찍부터 법 개념이 존재했다. 서양의 대표적인 법은 로마법이다. 기원전 5세기 12표 법을 필두로 기원후 6세기에 편찬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이르기까지 로마법은 단계적으로 발달했다. 결국 고마법은 국가 운영에서 시민권의 개념까지 제국 전체를 관장하는 기본 틀로 자리 잡았다. 로마법은 상거래를 원활히 하려는 의도가 컸다. 로마 제국 한가운데 지중해가 있고 주변에는 다양한 속주민이 살았다. 동부 지중해권에는 그리스어가 쓰였고 중동에선 셈어 계열의 여러 토착어가 사용됐다. 이질적 민족들과 정치와 행정에서 하나의 제국을 형성하고 지중해를 통해 서로 무역과 교류를 했다. 그러므로 중앙 정부는 통일된 상거래 방식을 정해야 했다. 법체화 된 게 로마법이다. 서양은 19세기에서야 법치국가의 개념이 생겼다.

 하지만 동양에선 수천 년 전부터 법치국가의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진제국의 이데올로기는 법가 사상이었다. 당제국은 처음으로 율령 체제를 확립했다. 동양은 경제 행위보다 정치적 지배가 중요했다. 법과 제도 또한 정치적 지배에 도전하거나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자들을 처벌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당제국의 율령격식에서 형법을 뜻하는 율이 가장 우선시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서양은 중세 교회법이 발달하며 형법의 기능이 생겨난다. 이렇듯 서양의 법이 주로 민법인데 비해 고대 동양은 형법 중심이었다. 민법은 사람의 생활과 관련된 법이고 형법은 행정과 국가 운영에 필요한 법이다. 재산이나 가족관계를 다루는 민법은 지역과 관습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형법은 지역과 관계없이 보편적이어야만 공정성을 기할 수 있다. 동양은 일찍부터 통합적 사회 체제를 구축해서 형법도 발달할 수 있었지만 서양은 중세에 이르러 신성의 영역에서 통합적 세계를 이루며 비로소 형법이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이 생겼다. 헌데 동양은 지나치게 형법에 치중돼 있었다. 법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고 법의 행사에는 공권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합리성은 객관적인 개념인 듯 하지만 누가 합리성을 규정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형법의 강력한 맛에 매료된 동양의 지배층은 다른 법과 제도들도 모두 권력을 바탕으로 제정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존재한다면 나라를 운영하는 데 그보다 쉬운 방법은 없다. 성가시게 엄밀한 규칙을 만들려고 애쓰는 대신 모든 사람들에게 명령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동양 역사에서는 일찍부터 중앙권력이 명령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법과 제도가 정해지는 전통이 생겼다. 모든 일을 법과 제도로 해결하려는 발상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법과 제도로 처리하자는 발상이 합리적이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법과 제도의 내용이 타당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 법과 제도의 조항에 충분히 공감할 때 현실적 타당성을 지닌다. 하지만 중국 대륙은 인구도 많고 너무 넓었다. 그런데도 이런 법과 제도를 추지한 데는 관의 관점에서 집행됐기 때문이다. 국가 재원이 있어야 제국을 굴릴 수 있고 백성이란 국가 존립을 위해 희생될 수 있는 존재였다. 둘째 전제는 법과 제도를 적용하는 데 일탈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부패가 없을 정도로 사회적 기강이 올바르거나 부패를 근절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탐관오리에 의해 촉발됐던 민란의 역사는 제도를 운용하는 관리에 대한 불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결국 모든 일을 법과 제도로 해결한다는 발상엔 권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중국 역대 왕조마다 관리들의 부패가 성행한 이유는 일찍부터 중앙집권적 제국 체제가 이뤄진 데 따른 필연적 결과다. 역사적으로 동양은 법과 제도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다 부패를 양산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법규 자체엔 하자가 없다 해도 누가 어떤 의도로 법을 제정하고 운용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가 생긴다. 동양에서 법은 생활상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게 아니라 위로부터 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현실의 여러 측면을 반영하지 못하고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다. 이럴 경우 법조문은 사문화되고 법을 둘러싼 의지만이 중요해진다.

 현재 정부의 법치 강조는 이러한 동양적 해결책에 가깝다. 민중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기 보단 법과 제도라는 전가의 보도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행정문서에서 흔히 사용하는 ‘관련근거’라는 용어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원래는 행정상의 명령이나 조치를 취할 때 법적 근거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지만, 현실적은 용도를 거꾸로다. 대부분의 시행령에서 관련근거는 행정 관청이 먼저 의도하는 명령이나 조치를 정한 뒤 그것을 정당화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이렇게 법의 본말이 전도되고, 법과 현실이 전도되는 현상은 늘 관이 민을 지배했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용산 참사나 쌍용차 사태 때도 법치만 강조되었을 뿐 사안을 구성하는 맥락을 읽으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그들이 왜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고 난 뒤 법 적용을 다양한 각도로 시도하려는 필요했다. 허나 정부는 법치를 내세워 폭력적 요소만 거세한 체 나머지는 이해 당사자 간의 합의로 해결하라 했다. 현실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기에 무력시위에 나서는 자들에게 불균형한 힘의 균형을 잡아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또한 사법부가 거대해진 행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힘의 불균형 또한 법적용을 불신하는 이유다. 현재의 법치에 대중이 거부감을 품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텍스트를 둘러싼 맥락을 읽지 않고 법적용만 강조하는 현 정부는 꾸준히 저항에 부딪힐 테다. 다행인 것은 경제 위기로 인해 정부를 무조건 비판할 순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거다. 경제적 위기가 대중의 우경화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촛불 시위와 같은 광범위한 저항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현 정부 정책에 비판하는 사람들은 두 명의 정신적 지도자를 100여일 사이에 잃어 저항의 동력을 잃었다. 세계 유수기관이 한국의 금융위기 극복을 칭찬하는 분위기도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에 힘을 실어준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를 빨리 극복한 배경에는 IMF 이후의 구조조정을 꼽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큰 위기를 겪어본 터라 일종의 면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단체에 의해 비판받는 오너십 경영의 성과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위기에선 주주자본주의 체제보다 오너십 경영이 빛나기 때문이다. 주주자본주의가 강화되면 주식회사들은 주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던 고전적 상황에서 탈피해, 이익금으로 자신의 주식을 매입하거나 소각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극대화하라고 이사회에서 경영방침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 그랬고, 1990년대 유럽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돈을 벌면 신규 투자를 하기 보다는 자사의 주식을 매입해 주식 당 평가액을 높이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회에도 불리하고 조직구성원에게도 불리한 반면, 대규모 주식 보유자들에게 더 유리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주주자본주의가 외국처럼 일반적이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여지가 더 있었고 현재의 ‘어닝 서프라이즈’로 이어진 것이다. GM과 같은 서양기업이 경제 위기에 고전한 것은 주주자본주의의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최대한 안정적 전략만 취해온 데 있다. 무엇보다 주주의 이익을 위해 단기적 수익만 좇다보니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가 부실하고 이전의 성공했던 체제를 답습하려던 경로 의존성 또한 문제가 된다.

 다만 이러한 위기 극복의 수혜가 특정 기업이나 조직에게 과도히 분배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10년 전의 고용 유연화 정책으로 비정규직이 양산 되면서 파레토가 이야기한 2:8 사회의 모습이 국내에서 급격히 전개되었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덜 돼 있고 안정적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은 소득 격차를 벌려 놓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복지 예산을 늘린다고 하지만 관이 민을 지배해온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국민 밀착형 정책이라 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새로운 복지 정책을 세울 때 마다 오히려 관료 사회가 비대해지는 ‘파킨슨 법칙’ 때문에 정부의 세부담이 증가하는 모순을 낳아 민이 관에 종속돼는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

  현재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수익도 ‘낙수효과’로 이어지긴 힘들다. 미래의 투자를 위한 재원으로 쌓아두거나 자사 직원간의 보너스 파티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채용 규모가 금융위기로 힘들어하던 작년과 비슷하다는 사실도 기업의 사회적 활동 보단 또 다른 이익 추구에 전념할 거란 예측을 낳게 한다. 무엇보다 노조가 강한 현대차는 높은 수익을 노조 달래기로 쓸 가능성이 높다. 노조가 없는 삼성 또한 무노조 경영을 성공시키기 위한 당근 정책으로 언제나 그래왔듯이 높은 상여금을 지원할 테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성공 배경에는 이러한 높은 급여와 분기별 보너스 파티가 있다. 또한 이러한 보너스가 케인즈가 이야기한 승수효과를 통한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소비를 늘이기 보단 높아진 부동산 가격과 사교육 때문에 정부의도완 다른 곳에 돈을 쓰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의 보너스 또한 중산층의 상류층 편입을 위한 투자내지는 저축으로 상위 계층의 과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사교육 시장 활성화 또한 또 다른 경제수요를 낳아 사회 발전에 기여할 거란 주장을 한다. 하지만 19세기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이야기한 ‘깨진 유리창 가설’은 이러한 주장이 수용되기 어렵다는 걸 알게 해준다. 가게의 유리창이 깨졌다. 깨진 유리창을 고치려면 가게 주인은 유리 수선업자를 불러야 한다. 이렇게 되면 유리 수선업자는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면 가게 주인은 유리 수선업자에게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대신 거기 쓰는 돈을 신발 사는 데나 빵을 사는 데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곧 유리 수선업자의 소득은 신발 제조업자의 손실에서 왔다. 깨진 유리창으로는 새로운 일자리도 수익도 만들지 못한다. ‘전환’만 일어난다. 오히려 유리창이 깨졌으므로 사회적 순손실이 나타났다고도 할 수 있다. 사교육 또한 다른 경제 주체에게 갈 돈이 사교육 시장에 투여됐을 뿐이다. 사교육 자체가 지식 창조 산업이라기 보단 명문대 입시를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경제적 양의 효과는 전무하다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사교육이란 깨진 유리창은 국가 경제에 해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어제 기획 재정부가 발표한 세수 확보안은 분배라는 측면은 다소 간과해 이러한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10조 정도의 재정 흑자를 통해 재정 안정성을 높이자는 게 재정부의 개편 이유다. 윤증현 장관은 어제 K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정부의 부채 비율은 GDP 대비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정도라며 안심하라 했다. 하지만 내수 시장이 작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이기에 쓸 수 있는 재정정책이 외국보다 제한적이다. 단순히 부채 비율이 OECD평균 보다 작다고 안심하기엔 경제 구조가 다르다는 거다. 더욱 큰 문제는 재정 건전화의 발판을 중산층 이하 계층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부자의 증세는 한계소비성향이 큰 부유층의 소비 위축을 낳아 승수효과를 떨어뜨린 다는 게 정부의 부자감세 이유다. 하지만 부자들 소득의 대부분 부동산과 같은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 매입에 사용되기에 서구와 같은 승수효과가 날 지 의문이다. 사회학과 교수들은 잦은 전란으로 인해 안전자산을 추구하는 심리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소득 증가가 소비 증대로 나타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결국 현 정부의 재정 건전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고 불평등한 세액 배분 때문에 사회 불안정성을 심화 시킬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부가 법치를 택한 이유는 경제적 위기 극복을 통한 자신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껏 살펴 왔듯이 이러한 위기 극복의 과실은 소수에게 집중돼 있으며 현 정부의 공이라 보기도 힘들다. 또한 역사적으로 누적돼 온 법 만능주의의 유전자가 작용한 법치는 행정 편의주의의 소산이다. 더 많은 고민을 통한 다른 방식의 통치가 필요하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가 극도로 발달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들어선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자신의 부족함을 계속 메워왔고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적 상태에 이르렀다. 허나 우리나라처럼 20세기 초 부익부 빈익빈을 양성하는 서양의 형태처럼 자본주의가 전개 된다면 마르크스의 예언은 한국에서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주의가 아니라도 유사 경제구조가 나타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현 정부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물론 민주주의는 코즈가 이야기하는 ‘거래비용’이 높아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효율적 의사 결정과정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효율성 추구가 현 정부를 독재 정부라 규탄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고 국민은 직원이 아니다. 모두가 찬성하는 의견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사회의 현실이고 그러한 소요를 견디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정치가의 몫이다. 현재의 법치강조는 예전의 왕조 시대의 행정 편의주의를 보는 듯하다. 이러한 데자뷰를 없애기 위해선 성실한 자세와 진실한 마음이 필요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데자뷰 현상을 보고 그 이후 요원들이 나타난다. 이 요원이 민중 저항이 될지 또 다른 사회주의가 될지 모른다. 다만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남경태의 '역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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