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불란한 명령과 집행은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장기적 발전 동력으로 삼기엔 부적절하다. 무엇이든 위로부터의 명령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단 발상에서 창의성이 발휘될 여지가 없다. 또 지표상의 실적을 올리는 전시적 성과 이상의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개발독재정권은 외형적 경제 지표의 성장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더 심각한 불균형은 사회 전체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에만 치중하게끔 했다는 점이다. 최고의 가치는 효율성이며 다른 모든 가치는 효율성에 종속된다. 그것도 단기적 효율성뿐이므로 어떤 일이든 속전속결로 성과를 내야 한다. 이런 태도는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증후군으로 나타난다. 학문적으로는 실용적 과학기술에 비해 기초과학이나 인문학을 경시하는 풍조로 나타난다. 현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려 한다. 일종의 사회적 퇴행이다. 이러한 퇴행을 저지하기 위해 식자(識者)들이 나서지만 국민에게 하나의 유전자로 각인된 효율 우선주의는 이러한 노력을 버겁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실시되는 지방자치 또한 효율이 우선이다. 역사적으로 지방자치를 해본 경험이 전무 하다는 데에서도 현 지방자치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현 지방자치는 중앙집권을 공고히 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듯 보인다.

 우리 역사에서 지방행정기관은 정부의 명을 받아 그대로 집행하는 기관일 뿐 자체적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권한과 능력이 거의 없었다. 지금도 도 자치단체장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도지사의 ‘知’란 원래 중앙정부가 할당한 임무를 대행한다는 뜻이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왕이 즉위한 뒤에도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기 전까지 자신의 직함을 왕이 아니라 權知國事라 불렀다. 여기서 ‘지’도 도지사와 같이 국사를 잠시 맡아서 처리하는 직책이란 의미다. 동양은 고대 도시국가를 제외하곤 자치적 성격을 가져본 적이 없고 늘 중앙정부의 수직적 지휘와 감독을 받는 행정 도시였다.

 서양은 반대다. 유럽은 대부분 자치도시로 출발했으며, 민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필요성에서 발생했다. 콜로니아(쾰른)나 마실리아(마르세유) 같은 로마시대 식민시, 그리고 알렉산드로스가 동방원정에 창건한 수십 개의 알렉산드리아는 원래 국경을 방어하는 용도였다. 특히 로마제국의 변방에 창건된 군사 도시들에서 총독이 거의 전권을 행사했는데, 이 직함이 훗날 市長의 모태가 된다. 이렇듯 발생과 기원이 자연스러웠기에 서양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내는 세금이 시정에 사용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중세 중기까지 유럽의 도시들은 봉건영주의 장원을 중심으로 한 성채도시나 성당과 수도원 중심의 주교도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12~13세기에 플랑드르와 북이탈리아에서 새로운 개념의 자치도시인 코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자치 도시가 발달하자 사방에서 전직 농노들이 몰려든다. 장원의 닫힌 경제에 비해 활발한 도시에선 누구나 큰돈을 벌 수 있다. 부르주아지의 맹아가 싹튼다. 영주들은 자치도시를 정치적으로 복속시키기보다 적절한 관계를 이루려 한다. 시민들은 혁신적인 자치제를 구성한다. 그런 탓에 황제나 교황도 자치도시의 내정에 간섭하지 못하게 된다. 이 도시들이 나중에 유럽의 르네상스를 주도하게 된 것도 그런 위상을 지닌 덕분이다. 물론 유럽의 왕국에서도 세금은 의무에 가까웠다. 하지만 도시에선 조합을 이루어 일을 결정하고 세금의 효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민의 세금으로 시정이 운영되는 과정이 명백했으므로 권력자라도 시민의회나 법정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법과 정치권력 앞에서 평등을 보장 받았다. 도시의 발생 과정뿐 아니라 운영에서도 평등한 시민권은 중요했다. 또한 이 도시국가들은 규모가 작아 신분제 회의를 구성할 필요가 없이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다. 여기에 대의제의 개념과 선거제도만 덧붙이면 곧바로 근대 민주주의가 된다. 현재의 지방자치가 수많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선 자치시장의 제도권 진입을 위한 발판으로 쓰인다. 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부재한 탓이다.

 지방자치가 부재한 역사는 우리가 쓰는 말에서도 묘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수도 요금이나 전기 요금을 수도세나 전기세라고 지칭한다. 자신이 쓴 만큼 내는 것이기 때문에 세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공화국의 국민은 세금을 국가에 내야 하지만 그에 따르는 혜택을 받을 권리도 가진다. 복지 같은 것들은 납세에 상응하는 혜택이다. 동양은 납세를 권리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부재하다. 동양에서 공무는 국민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일이라기보다 국민을 관리하는 일이다. 국민들은 세금을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모든 돈을 총칭한다. 왕조시대에 납세가 권리가 아니라 의무였기 때문이다. 시경(詩經)에 따르면 “천하에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했다. 시경은 춘추시대에 공자가 옛 시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니까 왕토사상의 뿌리는 중국의 역사시대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의 전시과와 조선의 과전법은 왕토사상을 바탕으로 했다. 정부가 임용한 관리에게 녹봉으로 토지 소유권 자체를 내주는 게 아니라 수조권만을 내주는 방식이다. 이에 따르면 토지의 매매가 불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나랏님의 땅을 갈아먹는 백성이라면 당연히 조세를 내야 하는 것이지 거기에 감히 권리 따위를 내세울 마음은 먹지 못한다. 세금이 권리가 아니라 순전한 의무일 뿐이라면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기업은 절세를 넘어 탈세를 꾀하고, 재벌은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자식들에게 편법으로 재산을 증여한다. 결국 행정기관에 납부하는 돈을 세금이라 지칭하는 건 국가가 주는 혜택을 누려보지 못했기에,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탈의 역사가 꽤나 오래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왕조 체제는 유지될 수 있었을까?

 바로 이념 때문이다. 특히 유학은 백성의 무의식과 이성에 작용해 조선 왕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유교 예법은 유교 이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고려 말에 도입돼 조선 왕조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다. 특히 16세기 초 조광조가 여씨향약을 전국에 보급하고 향촌까지 성리학적 질서로 편제한 이래 유교 예법은 지배층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도 널리 퍼졌다.

 중국 역사에선 1차 분열기인 춘추전국시대에 유학이 탄생했다. 기원전 2세기 한 제국은 유학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채택했다. 당 시대엔 유학의 이념에 바탕을 둔 국가 체제를 만들려 했으며 율령제와 과거제를 도입했다. 청나라 땐 명대 후기에 나온 비교적 개혁적 성격의 유학인 양명학을 고증학이 눌렀다. 오히려 주자학을 다시 전통으로 세운 것은 유학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단 증거다. 결과적으로 서양과 달리 동양의 예법은 문화적 관습에 불과한 게 아니라 사회전반을 규제하는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결국 그 때문에 사회 발전의 질곡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화세계가 붕괴하고 나서도 이러한 유학을 끝까지 섬겼다.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장기집권하게 되면 썩게 되기 마련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예송 논쟁이다.

 예송 논쟁의 의미는 두 가지다. 첫째, 조선의 지배층은 중국을 과거에 사대했던 중화세계의 연장으로 보지 않았다.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섰다. 중화는 조선으로 넘어와 소중화가 되었다. 이제 모든 예법을 조선에서 다듬고 새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 서인과 남인이 비장한 자세로 예법을 두고 설전을 벌인 이유가 있다. 둘째, 15세기 이후 왕 대신 중앙권력을 장악해온 조선의 사대부는 이제 왕실의 복상 문제까지 결정하기에 이른다. 16세기까지 중국이란 상국이 있었기에 신분적으로 조선 왕은 황제의 제후였다. 명 제국이 사라지자 그런 형식적 서열마저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콤플렉스를 가진 왕과 소중화 사상에 젖은 사대부들의 욕구가 북벌이란 기획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소중화 사상은 민중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국사 교과서에서 우리나라의 주체성 확립의 사례로 언급하는 진경산수화는 기실 소중화 사상이란 병리적 현상의 확대였다.

 진경(眞景)이란 진짜 경치를 뜻하는 말로 조선의 경치를 가리킨다. 18세기부터 그려진 진경산수화는 정선을 필두로 심사정, 김홍도, 신윤복까지 이어진다. 동양은 풍경화가 지배적이었고 서양은 초상화의 전통이 강했다. 초상화는 권력자의 의뢰와 명령을 받아 그린 것이므로 예술성 보단 기능성이 위주였지만 풍경화는 화가가 솜씨를 부릴 여지가 컸다. 지금은 미술에서 사실성이 기본이라고 여겨지지만 당시엔 이상화되고 표준화된 경치에 약간의 상상력을 섞어 표현하는 게 중요했다. 서양에선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에서 이상화된 경치를 지향하는 근대적 풍경화가 나타난다. 하지만 동양에선 이상적이고 관념화된 경치만을 묘사했다. 중화세계의 중심이 언제나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진경산수화가 탄생했다는 것은 고답적 자세에서 탈피해 진짜 살아있는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단 의미다. 이것은 소중화 사상의 연장이다. 자주화와 주체 노선이 찬미되던 때였으니 진경산수화를 그린 화가들은 잔뜩 자부심을 품었음직하다. 미술만 아니라 판소리, 탈춤 등도 18세기에 체계화되고 정리된다. 결국, 조선이 유학의 중심이란 자가당착적 사고가 진경산수화 같은 우리문화를 찬미하는 풍조라 나타난 것이다.

 결국 현재의 지방자치는 중앙집권을 중시해 온 과거의 전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유학과는 또 다른 형태의 이데올로기인 지역이기주의와 효율성 우선 성장이란 결과를 낳았다. 이명박은 그렇다 치고 김문수 도지사가 이렇게까지 중앙중심주의를 설파하는 건 그의 과거를 보면 상당히 의외다. 진보신당의 심상정 대표와 함께 우리나라 노동계를 이끌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고문까지 받았던 김문수였다. 그의 표변에는 이광수가 부르짖었던 민족개조론과 같은 메스꺼움도 느껴진다. 물론 이러한 퇴행적 개발주의와 중앙중심주의의 기저에는 수도권 중산층이 바라는 부동산 값 증가로 인한 자산 증식이란 목적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소중화주의처럼 퇴행적일 뿐이다. 조선이 세계에 중심이듯 수도권이 한국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균형과 분배를 향해 전개돼 온 역사에 반하는 행위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다. 집중과 효율은 삶을 도구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지금 전개돼야 할 것은 중앙의 패권주의를 분쇄하고 좀 더 나은 나라를 위해 양보하고 타협하기 위한 논쟁이다. 이것은 예송논쟁보다 훨씬 치열해야 하며 어떻게든 매듭을 지어야할 커다란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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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학벌 문제가 점차 피부에 와 닿는다. 예전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회와의 직접 접촉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자 약간의 피해의식이 생긴다. 많은 사람은 학벌은 귀속지위가 아니라 성취지위이고 사회적으로 엘리트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인정해야 한다 말한다. 무엇보다 수능이란 공정한 입시 체제를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능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수능은 공정한 체제가 아니다.

 수능과 같은 시험의 기원은 과거제이다. 587년 수 문제가 처음 과거를 시행했다. 이후 과거제는 20세기 초까지 시행된다. 한반도에선 958년인 고려 광종 때 도입된다. 이후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된다. 과거의 과거 과목은 명경과 제술, 잡과로 나뉜다. 명경은 경전을 얼마나 읽었느냐, 제술은 글을 얼마나 잘 쓰느냐이며 수학, 의학, 법학, 점술, 기술 같은 것들은 잡과로 망라된다. 책과 글을 존중하는 태도는 일견 학문을 숭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회 각 부문에 작용하는 다양한 가치관을 문헌에 의거한 전통적 가치관으로 획일화하고 집중시킨다. 특히 경험을 무시하는 풍조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문학과 문인에 대한 지나친 엄숙주의와 책과 글이 존중되면서 정작 인문학이 등한시되는 기묘한 현상은 그런 전통의 소산이다. 시험을 치르고 점수를 매기는 것도 객관적인 방식인 듯싶지만 실은 인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뜻이다. 시험으로 인원을 선발하는 제도의 근본적 문제는 결과 지상주의에 빠진다는 점이다. 현재의 학벌 지상주의는 이러한 결과 지상주의의 소산이다. 또한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하고 학벌에 대한 숭상을 낳는다는 점, 무엇보다 학문을 획일화 시키고 공업이나 농업 같은 경험 중시 학문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현 사회 문제의 근간을 형성한다. 즉 아무리 노력해도 정규직이 되기 힘든 현실은 모두가 획일적인 공부를 하여 자신만의 강점을 지니기 어렵고 자신의 실력을 객관화 하는데 지나친 노력이 투여된다는 데 있다.

 서양은 조금 달랐다. 시험 만능주의 동양에서는 주관적 정실과 연고가 더 중요하다. 추천으로 인재를 발탁하는 서양에선 비교적 능력 위주의 객관적 기준이 중시된다. 과거에 응시하려면 경제적 환경이 뒷받침 돼야 하고 과거 준비를 위한 문헌은 쉽게 구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과거에 합격한다 해도 출세를 위해선 연고나 학맥, 가문의 배경이 필요했다. 고로 신분제를 오히려 강화했다. 서양에선 시민의 시대로 접어들며 공직이 선출직이란 관념이 자연스러웠다. 서양에선 근대 초기 귀족이 공직자가 되었고 시민사회에선 선거를 통해 공직자가 임용되었으므로 동양보다 부패가 적었다. 동양식 관료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정부가 주도했고 서양은 동양보다 훨씬 느슨했고 시민사회 이후엔 민간이 주도하는 체제를 취했다. 결국 요즘 같이 각 가정의 교육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에선 부잣집 자제가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런 자제들이 나중에 국가고시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사시나 행시가 공정한 듯 보이지만 이러한 진입장벽이 있다. 고시를 통과해도 출세하기 위해선 인맥이 중요하다. 결국 공정해 보이는 한국의 시험 체제는 기득권층의 이해와 부합하는 측면이 많다.

 현 정부 또한 고시를 통해 선발된 관료층이 매우 두텁다. 이명박 개인이 욕을 먹고 있지만 기실 이러한 관료들에게도 비판의 화살이 돌아가야 한다. 관리의 권력은 직위에서 나온다. 왕조에선 군주에게서 권력을 받았다. 이런 권력의 이중성은 유학 이념에 특유한 학자-관료 개념에 뿌리를 둔다. 유학은 탄생할 때부터 정치 이데올로기 속성이 강했고 현실적이고 실천적 이념이었다. 유학 본성 자체가 경영을 목적으로 했고 조선은 처음부터 유교 왕국을 표방하고 나섰으므로 학자와 관료는 이념적으로나 신분적으로 거의 일치했다. 사림파 대부분이 현직관료가 아닌데도 현실 정치에 관여하고 훈구파와 맞서 승리할 수 있었다. 16세기 조식은 관직에 진출한 적이 없지만 그의 제자들은 학맥을 이뤄 이황의 제자들과 치열한 당쟁을 펼쳤다. 17세기 유학자 송시열은 만년에 몇 년 동안 정승직을 지낸 것 밖에 없지만 예송논쟁에 깊이 관여했고 고위 관직에 있는 제자들을 통해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관료제가 발달할수록 왕과 관리의 권력은 이중 구조를 가지게 된다. 세조의 쿠데타 이후 왕당파인 훈구파에 맞서 선비들은 사림파를 형성하며 사대부 국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중종반정 때 처음으로 왕을 자신들이 세울 수 있었다. 왕은 기획자와 집행자로서 사대부들이 필요했고, 사대부들은 권력의 상징으로서 왕이 필요했다. 그런 탓에 왕도 사대부들도 잘못된 국정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다. 중종 옹립 이후 사대부들은 자기들끼리 다투기 시작했다. 그전까지의 사화가 왕권과 신권의 대립으로 빚어진 데 비해 이 시기 왕은 상징으로만 군림할 뿐 사대부 내부에서 권력다툼이 벌어진다. 이때부터 당쟁이 심화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책임 정치가 실종되고 정권 후반기에 앞서의 과오를 대통령에게 집중적으로 뒤집어씌우는 데는 이러한 역사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정치적 오리엔테이션이 강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사회에선 흔히 이중권력 체제가 생겨난다. 이것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친다. 보스정치가 그런 예다. 하나의 정파에서 보스는 상징적 우두머리로 군림하고 실제 정책은 보스의 심복들이 보스의 이름을 빌려 집행한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은 항상 막후에서 일어난다. 그런 탓에 정계에는 항상 음모가 판친다.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완전히 분리되고 모든 정치적 발언은 청취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 된다. 이재오나 이상득의 행동에 언론이 초점을 맞추는 이유도 그러한 데 있다. 또한 친박연대라는 당 이름은 우리나라 특유의 심복정치를 노골적으로 나타낸다. 박근혜를 ‘근혜 공주’라 불렀던 이유에는 박근혜는 얼굴마담이고 실세를 따로 있다고 여기는 대중의 인식을 반영한다.

 결국 수능이란 국가대사로 대표되는 시험들은 관료라는 기득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사회를 획일화 시킨다. 또한 관료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당과 밀접하게 관련돼 움직인다. 정당 또한 특정인을 왕과 같은 ‘보스’로 내세운 뒤 실권을 행사하는 묘한 이중권력으로 움직인다. 사림과 왕이 묘하게 공생해 온 조선시대와 다를 바 없다. 또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사시를 패스한 판․검사나 행시 출신의 관료가 많다. 이러한 사실은 국가주관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권력을 갖는 것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들이 삼권분립의 토대인 행정부와 사법부 소속이 대부분이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입법부로 소속을 옮기기 위해선 정당이나 기득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행정 집행이나 사법 판결이 공평무사하게 이뤄지기 기대하기 어려운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결국 야망이 클수록 국가이익이나 법리 보다는 개인의 이해관계를 우선시 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쌓아 둔 인맥이 정치권 입성의 길을 닦아 주니 과히 불공정 담합이라 할 만 하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나라가 그렇게까지 바뀌지 않았던 이유에는 조직 깊숙이 자리한 치열한 이해 다툼을 통제하지 못해서다. 보스 정치를 당연히 여긴 민주당 실세들의 관성도 꽤 작용했을 테다. 어차피 욕은 국가의 수반이 먹으므로 책임정치보단 빠른 줄서기 문화를 통한 기득권 확보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결국, 이러한 자잘한 역사의 누적분이 국가 정체(停滯)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이상 더 좋은 한국을 만들긴 어려울 테다. 흔히들 말하는 문, 사, 철이 국민의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과 그 주위 가신들이 바뀌어야 한다. 여전히 정책은 상명하달식인 경우가 많고 민중의 힘으로 역사적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선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소모되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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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나라에 비해 발전이 늦었다고 생각할수록 지배자는 국가를 도구화하게 된다. 국가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하고 힘을 집중시켜야만 다른 나라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생래적인 다양성, 다원성 따위는 안중에 없다. 지배자는 독재자가 되어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루고 국가를 일사불란한 기계처럼 운전하려 한다. 설사 권력욕이 아니라 애국심에서 나온 의도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히틀러가 그랬고 박정희가 그랬다. 17세기 후반 러시아제국의 표트르처럼 계몽 군주로 자처한 지배자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내세운 7.4.7 공약 또한 이러한 몰지각한 관점의 소산이다. 국가를 하나의 기업체로 보고 더 빠른 성장을 통해 정치력 부족을 메우려는 이해타산도 작용한 듯하다. 허나 경제위기나 정부비판 여론 확산으로 국가 운용이 어렵게 되자 최후의 보루로 내세운 것이 법치다. 법에 따른 통치란 말은 일견 옳은 듯하다. 허나 법이 자의적으로 운용되어 온 과거는 법치란 말이 내재한 행정편의주의와 독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현 정부는 법치는 설핏 서양의 형태를 따온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법치주의는 동양적 전통에 따른 것이다. 물론 서양의 역사에선 일찍부터 법 개념이 존재했다. 서양의 대표적인 법은 로마법이다. 기원전 5세기 12표 법을 필두로 기원후 6세기에 편찬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이르기까지 로마법은 단계적으로 발달했다. 결국 고마법은 국가 운영에서 시민권의 개념까지 제국 전체를 관장하는 기본 틀로 자리 잡았다. 로마법은 상거래를 원활히 하려는 의도가 컸다. 로마 제국 한가운데 지중해가 있고 주변에는 다양한 속주민이 살았다. 동부 지중해권에는 그리스어가 쓰였고 중동에선 셈어 계열의 여러 토착어가 사용됐다. 이질적 민족들과 정치와 행정에서 하나의 제국을 형성하고 지중해를 통해 서로 무역과 교류를 했다. 그러므로 중앙 정부는 통일된 상거래 방식을 정해야 했다. 법체화 된 게 로마법이다. 서양은 19세기에서야 법치국가의 개념이 생겼다.

 하지만 동양에선 수천 년 전부터 법치국가의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진제국의 이데올로기는 법가 사상이었다. 당제국은 처음으로 율령 체제를 확립했다. 동양은 경제 행위보다 정치적 지배가 중요했다. 법과 제도 또한 정치적 지배에 도전하거나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 자들을 처벌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당제국의 율령격식에서 형법을 뜻하는 율이 가장 우선시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서양은 중세 교회법이 발달하며 형법의 기능이 생겨난다. 이렇듯 서양의 법이 주로 민법인데 비해 고대 동양은 형법 중심이었다. 민법은 사람의 생활과 관련된 법이고 형법은 행정과 국가 운영에 필요한 법이다. 재산이나 가족관계를 다루는 민법은 지역과 관습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형법은 지역과 관계없이 보편적이어야만 공정성을 기할 수 있다. 동양은 일찍부터 통합적 사회 체제를 구축해서 형법도 발달할 수 있었지만 서양은 중세에 이르러 신성의 영역에서 통합적 세계를 이루며 비로소 형법이 발달할 수 있는 조건이 생겼다. 헌데 동양은 지나치게 형법에 치중돼 있었다. 법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고 법의 행사에는 공권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합리성은 객관적인 개념인 듯 하지만 누가 합리성을 규정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형법의 강력한 맛에 매료된 동양의 지배층은 다른 법과 제도들도 모두 권력을 바탕으로 제정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존재한다면 나라를 운영하는 데 그보다 쉬운 방법은 없다. 성가시게 엄밀한 규칙을 만들려고 애쓰는 대신 모든 사람들에게 명령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동양 역사에서는 일찍부터 중앙권력이 명령에 따라 무차별적으로 법과 제도가 정해지는 전통이 생겼다. 모든 일을 법과 제도로 해결하려는 발상이다.

 하지만 모든 일을 법과 제도로 처리하자는 발상이 합리적이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법과 제도의 내용이 타당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 법과 제도의 조항에 충분히 공감할 때 현실적 타당성을 지닌다. 하지만 중국 대륙은 인구도 많고 너무 넓었다. 그런데도 이런 법과 제도를 추지한 데는 관의 관점에서 집행됐기 때문이다. 국가 재원이 있어야 제국을 굴릴 수 있고 백성이란 국가 존립을 위해 희생될 수 있는 존재였다. 둘째 전제는 법과 제도를 적용하는 데 일탈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부패가 없을 정도로 사회적 기강이 올바르거나 부패를 근절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탐관오리에 의해 촉발됐던 민란의 역사는 제도를 운용하는 관리에 대한 불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결국 모든 일을 법과 제도로 해결한다는 발상엔 권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중국 역대 왕조마다 관리들의 부패가 성행한 이유는 일찍부터 중앙집권적 제국 체제가 이뤄진 데 따른 필연적 결과다. 역사적으로 동양은 법과 제도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다 부패를 양산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법규 자체엔 하자가 없다 해도 누가 어떤 의도로 법을 제정하고 운용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가 생긴다. 동양에서 법은 생활상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게 아니라 위로부터 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현실의 여러 측면을 반영하지 못하고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다. 이럴 경우 법조문은 사문화되고 법을 둘러싼 의지만이 중요해진다.

 현재 정부의 법치 강조는 이러한 동양적 해결책에 가깝다. 민중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기 보단 법과 제도라는 전가의 보도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행정문서에서 흔히 사용하는 ‘관련근거’라는 용어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원래는 행정상의 명령이나 조치를 취할 때 법적 근거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지만, 현실적은 용도를 거꾸로다. 대부분의 시행령에서 관련근거는 행정 관청이 먼저 의도하는 명령이나 조치를 정한 뒤 그것을 정당화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이렇게 법의 본말이 전도되고, 법과 현실이 전도되는 현상은 늘 관이 민을 지배했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용산 참사나 쌍용차 사태 때도 법치만 강조되었을 뿐 사안을 구성하는 맥락을 읽으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그들이 왜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고 난 뒤 법 적용을 다양한 각도로 시도하려는 필요했다. 허나 정부는 법치를 내세워 폭력적 요소만 거세한 체 나머지는 이해 당사자 간의 합의로 해결하라 했다. 현실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기에 무력시위에 나서는 자들에게 불균형한 힘의 균형을 잡아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또한 사법부가 거대해진 행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힘의 불균형 또한 법적용을 불신하는 이유다. 현재의 법치에 대중이 거부감을 품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텍스트를 둘러싼 맥락을 읽지 않고 법적용만 강조하는 현 정부는 꾸준히 저항에 부딪힐 테다. 다행인 것은 경제 위기로 인해 정부를 무조건 비판할 순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거다. 경제적 위기가 대중의 우경화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촛불 시위와 같은 광범위한 저항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현 정부 정책에 비판하는 사람들은 두 명의 정신적 지도자를 100여일 사이에 잃어 저항의 동력을 잃었다. 세계 유수기관이 한국의 금융위기 극복을 칭찬하는 분위기도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에 힘을 실어준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가 위기를 빨리 극복한 배경에는 IMF 이후의 구조조정을 꼽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큰 위기를 겪어본 터라 일종의 면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보단체에 의해 비판받는 오너십 경영의 성과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위기에선 주주자본주의 체제보다 오너십 경영이 빛나기 때문이다. 주주자본주의가 강화되면 주식회사들은 주식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던 고전적 상황에서 탈피해, 이익금으로 자신의 주식을 매입하거나 소각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극대화하라고 이사회에서 경영방침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 그랬고, 1990년대 유럽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돈을 벌면 신규 투자를 하기 보다는 자사의 주식을 매입해 주식 당 평가액을 높이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회에도 불리하고 조직구성원에게도 불리한 반면, 대규모 주식 보유자들에게 더 유리한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주주자본주의가 외국처럼 일반적이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여지가 더 있었고 현재의 ‘어닝 서프라이즈’로 이어진 것이다. GM과 같은 서양기업이 경제 위기에 고전한 것은 주주자본주의의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최대한 안정적 전략만 취해온 데 있다. 무엇보다 주주의 이익을 위해 단기적 수익만 좇다보니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가 부실하고 이전의 성공했던 체제를 답습하려던 경로 의존성 또한 문제가 된다.

 다만 이러한 위기 극복의 수혜가 특정 기업이나 조직에게 과도히 분배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10년 전의 고용 유연화 정책으로 비정규직이 양산 되면서 파레토가 이야기한 2:8 사회의 모습이 국내에서 급격히 전개되었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덜 돼 있고 안정적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은 소득 격차를 벌려 놓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복지 예산을 늘린다고 하지만 관이 민을 지배해온 과거의 경험 때문인지 국민 밀착형 정책이라 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새로운 복지 정책을 세울 때 마다 오히려 관료 사회가 비대해지는 ‘파킨슨 법칙’ 때문에 정부의 세부담이 증가하는 모순을 낳아 민이 관에 종속돼는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

  현재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수익도 ‘낙수효과’로 이어지긴 힘들다. 미래의 투자를 위한 재원으로 쌓아두거나 자사 직원간의 보너스 파티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채용 규모가 금융위기로 힘들어하던 작년과 비슷하다는 사실도 기업의 사회적 활동 보단 또 다른 이익 추구에 전념할 거란 예측을 낳게 한다. 무엇보다 노조가 강한 현대차는 높은 수익을 노조 달래기로 쓸 가능성이 높다. 노조가 없는 삼성 또한 무노조 경영을 성공시키기 위한 당근 정책으로 언제나 그래왔듯이 높은 상여금을 지원할 테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성공 배경에는 이러한 높은 급여와 분기별 보너스 파티가 있다. 또한 이러한 보너스가 케인즈가 이야기한 승수효과를 통한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소비를 늘이기 보단 높아진 부동산 가격과 사교육 때문에 정부의도완 다른 곳에 돈을 쓰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의 보너스 또한 중산층의 상류층 편입을 위한 투자내지는 저축으로 상위 계층의 과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사교육 시장 활성화 또한 또 다른 경제수요를 낳아 사회 발전에 기여할 거란 주장을 한다. 하지만 19세기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이야기한 ‘깨진 유리창 가설’은 이러한 주장이 수용되기 어렵다는 걸 알게 해준다. 가게의 유리창이 깨졌다. 깨진 유리창을 고치려면 가게 주인은 유리 수선업자를 불러야 한다. 이렇게 되면 유리 수선업자는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유리창이 깨지지 않았다면 가게 주인은 유리 수선업자에게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대신 거기 쓰는 돈을 신발 사는 데나 빵을 사는 데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곧 유리 수선업자의 소득은 신발 제조업자의 손실에서 왔다. 깨진 유리창으로는 새로운 일자리도 수익도 만들지 못한다. ‘전환’만 일어난다. 오히려 유리창이 깨졌으므로 사회적 순손실이 나타났다고도 할 수 있다. 사교육 또한 다른 경제 주체에게 갈 돈이 사교육 시장에 투여됐을 뿐이다. 사교육 자체가 지식 창조 산업이라기 보단 명문대 입시를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경제적 양의 효과는 전무하다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사교육이란 깨진 유리창은 국가 경제에 해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어제 기획 재정부가 발표한 세수 확보안은 분배라는 측면은 다소 간과해 이러한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10조 정도의 재정 흑자를 통해 재정 안정성을 높이자는 게 재정부의 개편 이유다. 윤증현 장관은 어제 K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정부의 부채 비율은 GDP 대비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정도라며 안심하라 했다. 하지만 내수 시장이 작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이기에 쓸 수 있는 재정정책이 외국보다 제한적이다. 단순히 부채 비율이 OECD평균 보다 작다고 안심하기엔 경제 구조가 다르다는 거다. 더욱 큰 문제는 재정 건전화의 발판을 중산층 이하 계층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부자의 증세는 한계소비성향이 큰 부유층의 소비 위축을 낳아 승수효과를 떨어뜨린 다는 게 정부의 부자감세 이유다. 하지만 부자들 소득의 대부분 부동산과 같은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 매입에 사용되기에 서구와 같은 승수효과가 날 지 의문이다. 사회학과 교수들은 잦은 전란으로 인해 안전자산을 추구하는 심리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소득 증가가 소비 증대로 나타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결국 현 정부의 재정 건전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고 불평등한 세액 배분 때문에 사회 불안정성을 심화 시킬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부가 법치를 택한 이유는 경제적 위기 극복을 통한 자신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껏 살펴 왔듯이 이러한 위기 극복의 과실은 소수에게 집중돼 있으며 현 정부의 공이라 보기도 힘들다. 또한 역사적으로 누적돼 온 법 만능주의의 유전자가 작용한 법치는 행정 편의주의의 소산이다. 더 많은 고민을 통한 다른 방식의 통치가 필요하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가 극도로 발달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들어선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자신의 부족함을 계속 메워왔고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적 상태에 이르렀다. 허나 우리나라처럼 20세기 초 부익부 빈익빈을 양성하는 서양의 형태처럼 자본주의가 전개 된다면 마르크스의 예언은 한국에서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주의가 아니라도 유사 경제구조가 나타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현 정부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물론 민주주의는 코즈가 이야기하는 ‘거래비용’이 높아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효율적 의사 결정과정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효율성 추구가 현 정부를 독재 정부라 규탄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국가는 기업이 아니고 국민은 직원이 아니다. 모두가 찬성하는 의견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사회의 현실이고 그러한 소요를 견디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정치가의 몫이다. 현재의 법치강조는 예전의 왕조 시대의 행정 편의주의를 보는 듯하다. 이러한 데자뷰를 없애기 위해선 성실한 자세와 진실한 마음이 필요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는 데자뷰 현상을 보고 그 이후 요원들이 나타난다. 이 요원이 민중 저항이 될지 또 다른 사회주의가 될지 모른다. 다만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남경태의 '역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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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지도 못할 말이
목구멍까지 넘친 적이 있다.
꼬깃꼬깃 쟁여둔 돈을
손주 손에 쥐어주는 어느 할아비처럼
정겹지만 버성긴 그런 마음이다.

사람 너울 뒤집어쓰고
제 마음 푼푼하자며
상글상글 웃는 그이 가슴에
부러 침 몇 번 뱉은 적 있다.
다 내가 불민한 탓이라 여기면서도
다시 돌아보게끔 하는 그대가 있다.
조붓한 골목길
휘청거리다
엄전한 네 자태가 그리도 샘이 나
애써 객쩍은 소리하며
헤살을 놓았다.

권여선의 글처럼
그 하찮음의 무게가 우주와 맞먹는다 하더라도
곱다시 눈물 닦아주면
모진 마음에도 하늘이 고인다.
네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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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8-07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부터 느꼈지만 정말 단어선택이 훌륭하시네요. 평소에 말씀하실 때도 이렇게 말씀하시나요? ^^; 참 말이 예쁘다.
여자분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같기도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흐흐

바밤바 2009-08-07 21:5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헤헤. 제 말에 먹물냄새 난다고 진저리 치는 형님의 영향인지 입말과 글말이 다소 다르긴 합니다. ㅎ 근데 할아버지같다고 하니까 의외네요. ㅎ

비로그인 2009-08-0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리내 읽을 수가 없어 좀 아쉽네요..ㅎ
들를때마다 올리신 들을 다시 읽어보는데 참 맛깔나더라구요.
곧 비가 오려는 하늘이지만 덕분에 잠시나마 맘이 뽀송뽀송해집니다.


바밤바 2009-08-07 22:00   좋아요 0 | URL
저도 써클님 음반 리뷰 보면 마음이 다스워진답니다.
좋은 글 많이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는 생각보다 늦게 내릴 듯하네요^^ㅋ

무해한모리군 2009-08-07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적한 날에 잘 어울리는 글이네요.
정겹지만 버성긴 마음이 문득 떠올라 마음이 살짝 아리기도 하고..

바밤바 2009-08-07 22:02   좋아요 0 | URL
뭐 누나야 이제 봄날이니까.. ㅎ
정겨운 날만 가득하시길~ ㅋ
 

 

 수선화가 바람에 흔들린다. 하늘거린다. 왠지 외로워 보인다. 나르키소스에 관한 신화 때문일 테다.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는 갓 태어난 그에게 “제 자신을 모르면 오래 살 것”이란 말을 했다. 미남으로 성장한 나르키소스에게 많은 사랑이 쏠린다. 허나 그는 관심이 없다. 사랑을 거절당한 아메이니아스는 심장이 멎는다. 에코는 남의 말만 되풀이 한다. 그에 대한 사랑과 함께 분노도 커져 갔다.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파고하고픈 욕망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가 보다. 요정들은 복수의 신 네메시스에 의탁해 그에게 저주를 건다. 호수에 바투 다가앉은 나르키소스는 제 얼굴을 본다. 그리고선 사랑에 빠진다. 손이 닿을 때 마다 부셔지는 연모의 대상에 애달파 한다. 식음을 전폐하고 호수에 비친 제 모습을 탐닉한다. 빠져든다. 하데스에게로 가버린다. 수선화만 남긴 채.

 나르키소스는 꽃만 남긴 게 아니었다. 나르시시즘이란 말도 남겼다. 프랑스 심리학자 알프레 비네가 1887년 처음 사용했다. “저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페티시즘의 한 유형”이라 정의했다. 프로이트나 라캉 같은 정신분석학 대가들도 이 말을 곧잘 사용했다. 오늘날엔 거의 일상어가 되었다. 허나 이 말의 정의는 조금씩 다르다. 성의학 창시자 중 한명인 영국의사 헤빌럭 엘리스는 성도착증으로 규정했다. 주류 정신분석학자들은 성적 발달의 정상 단계로 보았다.

 요즘 유행하는 초식남이란 말의 정의도 잗다란 차이가 있다. 허나 나르시시즘이 강한 남자들이란 공통분모가 엿보인다. 제 자신을 아끼다 보니 이성에는 관심이 덜하다. 자기 관리에 열중하느라 짐짓 쿨 해 보이기도 하다. 나르키소스와도 닮았다. 이성을 욕망하기 보단 자신을 욕망한다. 철저한 자기 관리 덕분에 이성의 관심을 가끔 받기도 한다. 다만 눈에 차지 않을 뿐이다. 알프레 비네의 말처럼 제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삼기에 자잘한 욕정은 쉬이 해소할지 모른다. 볼수록 나르키소스가 겹친다.

 그렇다고 초식남을 탓할 수 없다. 서로를 잘 믿지 못하는 풍조가 초식남을 양산했을지 모른다. 작가 박경리는 40년 전에, 이미 우리사회를 불신시대로 규정했다. 남을 믿지 못하면 믿을 수 있는 건 혈연이나 내 자신 밖에 없다.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은 알겠지만 빼앗긴 마음을 되찾기란 쉽지 않다. 스스로에 대한 애정은 제 의지로 키울 수 있다. 배신당하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가 자신에게 천착하는 초식남의 뿌리가 아닐까. 육식남은 사냥을 위해 뛰어다니느라 온 몸이 생채기로 가득하다. 초식남은 제 울타리에서 덜 먹는 대신 덜 아프자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추구한다. 제 자신을 페티시즘의 한 유형으로 여기는 건 결국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다. 알다시피 인간은 밥만으론 살 수 없다.

 초식남은 가여운 존재다. 나르키소스는 일방적 구애나마 자주 받았다. 초식남은 대중에게 소외된 채 지난한 밤을 홀로 지새운다. 광활한 평원을 바라보며 이상형이 짐짓 제 마음을 먼저 열어주길 바랄 뿐이다.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가 연상된다. 결국 이들에게 걸린 과한 나르시시즘의 저주는 제 자신이 걸어 놓은 겹겹의 방어막이다. 나르키소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생채기는 아랑곳 말고 사냥터에 나서야 한다. 사냥물의 뒷다리라도 물어야 이가 여물어 지고, 상대의 마음이라도 할퀴어야 발톱이 야물어 질 터. 부러 평원에 나가기 어렵다면 육식남들과 섭슬리는 일도 고려해 볼 만 하다. 그렇지 않다면 과도한 외로움과 종족 번식 실패로 초식남은 멸종할게 자명해 보인다. 나르키소스는 수선화를 남겼지만 초식남은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초식남들의 밤이 외로움에 흔들린다. 하늘거린다. 왠지 처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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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8-06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밤바는 정서의 바탕이 참 단단하신 분인거 같아요.
바밤바의 밤도 외로움에 흔들리고 있는거 아니야?

바밤바 2009-08-06 21:41   좋아요 0 | URL
헤헤. 초식남 테스트 해보니까 90% 이상이라던데.. 누나는 건어물녀?ㅎ

무해한모리군 2009-08-07 11:0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제 생각엔 대부분의 여자들이 냄비째 라면 먹고 머리 질끈 묶고 돌아다니고 그러는듯 한데..

바밤바 2009-08-07 22:02   좋아요 0 | URL
역시 누나는 소 쿨~~ 멋져부러~~ 멋져부러~~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