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의 선물 - 문학 파랑새 클래식 이삭줍기주니어 1
에밀리오 파스쿠알 지음, 하비에르 세라노 그림, 배상희 옮김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4년 7월
절판


... 다행히도 예외없는 법칙은 드물다. 나는 문법에 나오는 예외, 불규칙 동사, 시제 불일치를 지독히 싫어했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예외적인 것, 특별난 것, 의외의 것이 있기에 그나마 버틸 만하다.-30쪽

피부는 뭐라 표현할 길이 없었다. 달의 검푸른 빛도 아니고,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청동과 꿈을 섞어 만든 색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선크림 광고에 단골로 나오는 '멋진 구릿빛 피부'는 더더욱 아니었다. 칼리의 피부에서는 따끈한 빵맛이 나며, 그루터기와 촉촉한 흙냄새가 나고, 첼로에 활이 쓰다듬고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그런 피부색은 예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칼리는 무지개에 색깔을 하나 더 보탰다. 칼리라는 색깔을. -33쪽

우리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상형문자처럼 이해할 수 없는 생존에 반항하는 지도 모른다.
꿈을 꾼 것이 엄마의 실수였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비난하지는 않겠다. 인간에게 삶이란 두 발로 버티는 것만은 아니다. 싫은 현실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기억 속에 한층 한층 쌓아두는 것이다.
엄마는 이 어지러운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을 현실에서 바랐을지도 모른다. 소망을 갖지만 그 누구도 소망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 아닌가. -56쪽

시간이 평소보다 빨리 지나갔다. 망각이란 의욕이 부족함을 부드럽게 돌려서 표현한 방법이거나 거부감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 언제나 기억하기 싫은 장소와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73쪽

"샌드위치는 백금 이리듐 합금 막대와 같아. 사기나 눈속임은 있을 수 없거든. 포도 한 송이를 제대로 나눠 먹는 일이 더 힘들지. 어디에나 세 개씩 먹는 녀석이 있거든." -75쪽

"책에는 세 종류가 있어.
읽지도 않았고 읽을 필요도 없는 책,
멋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도저히 그만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 책,
친구나 애인을 찾아가듯이 보고 또 보는 책.
이 이상적인 삼각형 어딘가에 예외가 자리잡고 있을 게다. 읽지는 않았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 추천해 준 책. 이 책은 친구나 애인처럼 위안을 주기도 하고 실망을 주기도 하지. " -76쪽

(유산을 받으면
죽은 자가 마땅히 남기고 갈
고통의 기억이
유산을 받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지워지거나 줄어들기 마련이라네.)-104쪽

[황야의 이리]처럼 몇 장 읽지 않고 부당하게(그렇지 않은가?) 사라진 책들이 있었다. 반대로 [페스트]는 마지막까지 버텼다. 그 처절하고도 희망적인 책은 재앙 속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 즉 아무리 그래도 '인간한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미해야 할 것이 더욱 많다.'라는 간결한 말로 끝을 맺었다.
나는 일주일 넘게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빠져 있었다. 지금에 와서 말하지만 그 책은 두 번 읽었다. 전날 밤에 정신없이 읽고 다음 날 장님에게 읽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햄릿]이 등장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장님이 말하길) 뒤마가 셰익스피어였다면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햄릿]이었을 테니까.-133쪽

"장님을 놀라게 해 줄 가장 좋은 방법은 네 진심을 보여 주는 거야. 독서를 많이 하라고 하는 선생님일수록 잘 읽지 않는다는 걸 눈치 못 챘어? 그리고 독서에 대해 진정으로 열정을 가진 분은 책을 추천하지 않고도 그 마음을 전달하는 걸 못 느꼈어? 책에 대한 열정은 사랑과도 같아. 감추어지지 않거든. 장님을 속이려 들지마.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책이 있어. ..."-137쪽

바로 그때 나는 아버지의 허영으로 보일 지도 모르는 것들, 그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읽은 연극 작품 목록을 찾아낸 것이다. 거기에는 날짜, 등장인물 수, 무대의 단순함이나 복잡함,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아버지가 전혀 해 봤을 것 같지 않은 작품 구성에 대한 의미심장한 메모가 적혀 있었다. 정확히 1,984개였다.
쓰다 지쳐 거기서 멈추었는지, 죽음에 몸을 맡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마지막으로 조지 오웰을 별나게 추모하는 데 완벽한 숫자라고 믿어 읽기를 그만두었는지 나는 결코 알지 못한다.
읽기를 그만두었다? 죽기를, 잠자기를, 어쩌면 꿈꾸기를......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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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 2005-12-02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에겐 벅차보이는걸. 내가 청소년을 너무 무시하나?ㅎㅎ

panda78 2005-12-02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도 읽던 걸 뭐. ^^;;

히피드림~ 2005-12-03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하곤 반대네요... 전 [황야의 이리]는 끝까지 읽고, [페스트]는 몇장 읽다가 그만뒀는데,,, 쭉 읽어보니, 멋진 책 같아요.^^

2006-01-12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yonara 2006-02-27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7.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이 독후감 쓰는 법 말씀하시던 생각이 나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