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지식이 전혀 없었다. 이시다 이라. 1960년생. 도쿄에서 태어나 세이케이 대학을 졸업하고(알게 뭐람) 어쨌거나 소설가가 되어(그렇지 뭐) 바로 문제의 작품 ‘4teen’으로 129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배알도 없냐? 128명이 받아간 상을 또 넙죽!). 일단 그렇게, 나는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이야기가 중학생들의 생활을 다룬 것임을 알게 되었다. 중학생이라니. 작가사진과 60년생이란 표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나는 살며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봐 형뻘, 차라리 인간을 잡아먹는 꽁치의 얘길 쓰지 그랬어. 십대 때의 나는 한 펑크뮤지션이 주절댄 “서른이 넘은 놈의 말은 믿지 말자”란 좌우명을 가슴에 새긴 채 살았었다. 그런데 맙소사, 마흔을 넘긴 놈이 쓴 중학생의 이야기라니. 게다가, 내가 서른을, 어느새 훌쩍 넘어 있었다니! 도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가장 두려운 일 두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등본을 떼는 일과, 한 무리의 중학생(특히 여중생)과 마주치는 일을 꼽을 것이다. 동사무소는 세상에서 가장 따분한 곳이기 때문이고, 중학생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정체를 파악한 순간, 동사무소에서 한 무리의 중학생(그것도 여중생)과 마주친 느낌이었다. 게다가 내 손에는 도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떼었는지 모를 한 장의 주민등록등본이 들려 있었다. 정말이지, 꽁치의 입 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의 안색과 동작을 살펴가며 동사무소의 현관을 가까스로 빠져 나왔다. 그러고 담배를 물었다. 바다 건너엔, 중학생의 이야기를 쓰는 사십대의 소설가가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이 따분한 세상을 중학생으로 가득 채우는 일만큼이나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봐 형뻘, 뭐랄까. 당신 멋진걸!
작가는 나란히 열네 살(이래서 ‘포틴’이고)인 네 명의 중학생(그래서 ‘4틴’이다) - 나(데츠로)와 준, 나오토, 다이의 일 년간을 여덟 개의 연작 단편으로 그려 놓았다. ‘나’는 모든 면에서 평균치이며, 준은 우등생이며, 나오토는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백발의 소년이며, 다이는 180㎝, 100㎏의
거구이다. 써놓고 보니 마치 원폭피해자의 명단이라도 지켜보는 기분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작품 속의 십대들은 한결 같은 피폭자들이며, 그 후유증을 심하게들 앓고 있다. 어디 핵이라도 떨어졌냐고? 핵은 떨어진지 오래다. 중학생은 아니 십대는 어른들의 밥이었다. 언제나 그랬었다. 우리는 그들을 다스리거나 잔인하게도 우등과 평균을 요구하거나, 무슨무슨 세대라 명명하여 부추기거나, 그들의 몸을 사거나, 교육을 팔고, 물건을 팔아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이럴 수가, 싶기도 하지만 - 어른이란 원래 그런 놈들이다. 한마디로 할 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틴의, 세상의 중학생들은 싱싱하다, 건강하다. 동사무소처럼 따분한 이 세상에서 이럴 수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역시나 그런 놈들이다. 희망의 증거는 잘나 빠진 어른들이 아니라, ‘절라’ 못나 빠진 바로 이 아이들이다. 이시다 이라가 밝힌 것처럼 그들을 둘러싼 기분 좋은 ‘공기감’이며, 그들 자체이다. 근간의 일본 소설들이 십대에 주목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제 남은 희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틴’뿐이다. 이것이 기대인지 기대는 것인지는 각자가 해석할 몫이라는 생각이다.
해서, 즐겁고 경쾌하다는 목소리도, 신선한 필체에 인정이 넘친다는 나오키상의 심사평도, 아니 나오키상마저도 모두가 어른이란 놈들의 목소리일 뿐이다. 역시나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읽을 당신이 중년이었으면 좋겠다(중학생이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없다). 읽기에 따라 이 책은 즐거운 성장소설일 수도 있고, 색다른 여행소설일 수도 있다. 아니 어쨌거나, 나오키상 수상작이란 띠지부터 벗겨버리고 “사고나 한 번 쳐볼까?”란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되려는 건가, 라는 불안감 속에 이 세상의 희망은 남아 있다. 싱싱하고 쾌활하게! 그러니까 당신, 평균도 우등도 늙지도 비대해지지도 말고, 오늘은 ‘포틴’과 함께 사고 한 번 쳐보라니까? 기억을 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신도 예전엔 등푸른 생선이었다. 아시겠습니까? 미스터 꽁치통조림! [조선일보 2004-05-21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