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rpool from Wapping - John Atkinson Grimshow
나는 이 도시를 알고 있다.
아니 안다기보다는 한 번 가본 적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껏해야 2박 3일 동안 머무른 것이었지만,
그림쇼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875년이니까,
나는 그로부터 125년 후의 리버풀을 잠깐 동안 느꼈을 뿐이다.
게다가 내가 그 곳에 머무르는 동안,
날씨는 너무 화창하여 폭풍은커녕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그러니 이 그림을 보고 리버풀에서의 추억이 떠올라 가슴이 서늘해진 것은 아닐 터이다.
리버풀은 항구도시다.
비틀즈가 아니었다면, 영국의 북쪽에 위치한 이 작은 도시를 방문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세계와의 교류가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던 시절에는
굉장히 번성한 곳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별다른 특징도 없는 도시,
한때 영화를 누리던 기억 때문에 더 쓸쓸해 보이는 도시.
성지를 찾는 마음으로 비틀즈의 고향을 찾아간 내게 아주 희미한 향기만을 남겨주었던,
그래서 지금은 더 애틋한 도시.
캐번 클럽에서 마신 기네스 생맥주처럼 씁쓸하고 거칠고 어두운...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이 그림의 '보이는 부분'이 아니다.
이 그림의 바깥쪽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 그러나 이 그림 속에 명백히 포함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사람들과 마차는 모두 그 쪽을 향해 가고 있다. 안개와 비로 인해 시야는 뿌옇게 흐려 있지만,
나는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나도 이 길을 걸어 그 곳, 바다로 갔다.
존 앳킨슨 그림쇼(John Atkinson Grimshow, 1836-1893)는 영국 리즈에서 태어나
리즈에 있는 철도회사의 서기로 일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그의 그림들을 모두 없애 버린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쇼는 리즈에 있는 갤러리들을 돌아다니며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보았고,
거기에 자극받아 스물다섯 살 때 직장을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스물아홉 살 무렵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주로 정물을 그렸다.
그가 풍경, 그것도 밤의 풍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마흔이 넘었을 때였다.
그러고 보면, 125년이 지났다고는
해도 이 거리는 거의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림 속의 리버풀도 씁쓸하고 거칠고 어둡다.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따뜻해 보이지만,
곧 꺼져 버릴 것처럼 애처롭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빗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자동차 대신 마차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절에는 누구도 비틀즈를 몰랐다는 것.
그리고 바다는 여전히 그 곳에 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관없이,
어디서나 그 도시를 지배한다.
그것은 깊고 축축한 습기,
아주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흘러온 물결이다.
내 인생의 아주 짧은 순간도 그 속에 잠겨 있다.
* 그림쇼는 영국 후기 빅토리아 시대의 풍경화가입니다.
안개가 끼거나 비가 내릴 때, 혹은 어렴풋이 동이 터 오거나 달이 떠 있을 때의
시적인 도시 풍경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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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thouse Dock, Liverp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