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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풍경화는 하나같이 낮은 지평선에 하늘과 구름의 표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도17, 18). 낮게 깔린 지평선은, 저지대인 이곳 네덜란드의 지형이 반영된 것이지만, 덕분에 풍경화가들은 옛날 방식대로 전경, 중경, 후경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지 않고 바로 시원한 화면을 얻어 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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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7 윌램 반 데 벨데 <정적: 항구로 되돌아 오는 네덜란드 선박> |
1665-70년, 161×233cm, 캔버스에 유채 |
런던 왈라스 컬렉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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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8 반 루이스달 < 에이크의 풍차 > |
1670년경, 83×101cm, 캔버스에 유채 |
암스테르담 국립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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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네덜란드의 풍경화는 단순히 풍경의 사실적인 스케치는 아닙니다. 화면의 넓은 부분을 차지하는 하늘, 때로는 고요하게 맑지만 언제 먹구름을 몰고 와 비를 쏟을 지 모릅니다. 멀리서부터 피어오르는 검은 구름과 미풍의 전조를 <에이크의 풍차>(도18)그림의 오른쪽에 서 있는 네덜란드의 여인들은 분명히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에는 자연에 깃든 신에 대한 감사와 자신들의 터전에 대한 애정, 그리고 두려움이 묻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알아본 것처럼 네덜란드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직업화가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자연에 대한 관찰과 유머로서 자신들의 사회를 풍부하게 그려냈습니다. 규모는 작으나 그들의 삶에 밀착된 흥미로운 이젤화들을 많이 생산해낸 성과는 무엇보다 17세기 네덜란드 사회의 반영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은 그리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술이 다수의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였던 유일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미술의 대중성과 회화성의 융합은 현재에 있어서도 미술가들의 커다란 과제가 아닐 수 없으며 그런 면에서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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