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

 

제인 그레이

그는 '9일간의 여왕' 또는 '런던 탑의 비극'이라는 애절한 이야기로 전하여집니다. 제인은 헨리 7세의 증손녀로 매우 아름답고 영리하여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능하여 학자 아스캄도 탄복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비극은 파렴치한 시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에드워드 6세가 결핵으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안 더들리 백작은 그녀를 며느리로 맞이하여 왕위를 이어가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죠.

에드워드 6세가 16살의 나이로 숨지자, 왕위계승권자 장녀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를 배제하고 제인을 왕위 계승자로 선언하였습니다.

이에 귀족(추밀원)과 국민이 부당함을 받아들일 턱이 있겠습니까. 반대자의 지지를 받은 메리 1세는 군대를 이끌고 런던으로 진격하여 백작과 그의 아들 그리고 며느리 제인을 런던 탑에 가두었죠. 1554년 2월 그녀는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처형당하였습니다.

<역사적 배경>

헨리8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에드워드6세(1547-1553)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1553년 에드워드6세가 병상에 눕게 되자 카톨릭신자이며 모계혈통으로 에스파니아 왕가 출신인 메리1세가 헨리 8세의 유언장과 출생에 근거하여 합법적인 왕위계승권자가 되었다.

이에 당시의 실권자였던 노섬버랜드(Northumberland) 공작 존 더들리(John Dudley)는 쿠데타를 기도했다. 존 더들리는 그의 장남인 길포드(Guilford)와 제인 그레이를 혼인시켜 튜더 집안과 자기 집안을 혼인결연시켰다. 그리고 에드워드6세를 움직여 자기 며느리가 된 제인 그레이에게 양위하겠다는 유언장에 서명하도록 했다.

에드워드6세는 카톨릭 신자인 누이 메리1세에게 왕위가 넘어가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유언장에 서명하였고, 제인 그레이는 영국 국왕으로 선포되었다. 제인 그레이 여왕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근거는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통한 모계혈통 때문이고 헨리 7세의 증손녀라는 신분 때문이다.

에드워드6세가 사망하자 왕위계승의 우선권을 가졌던 메리1세에 의해 제인 그레이는 폐위되어 9일 여왕에 그치게 되었고, 존 더들리와 함께 처형되었다. 이렇게 해서 에드워드6세의 뒤를 이어 이복누이인 메리1세(1553-1558)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메리1세 여왕은 에스파니아 국왕 카를로스5세의 아들인 필리페와 혼인하려 했으나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래서 메리1세가 사망하면 남편인 필리페의 영국 왕위계승권은 무효가 된다는 협정을 맺고 혼인을 하게 되었다. 메리1세 여왕의 사후 이복누이동생인 엘리자베스 1세(1558-1603)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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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4-08-2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왕가의 자식이나 재벌의 자식이나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는군요... 전 뜬금없이 발리에서 생긴 일의 박예진이 생각납니다. 아, 너무 뜬금없죠? ^,,,^

mira95 2004-08-26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절한 그림이었군요...

panda78 2004-08-26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탄에 잠긴 시녀들의 모습도요. 안타까워요. 저런 재능을 가진 여자가! 아깝게시리. 쯧.
털땅님, 저는 발리를 안 봐서 뜬금없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셔요. 정략결혼의 희생양이란 말씀엔 물론 동의합니다. 주 피해자가 여자라는 것에 분노!

Fithele 2004-08-27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 내셔널 갤러리에 있었어요. 굉장히 크더군요. 높이가 어른 키 정도쯤 되니 너비는... ^^;; 도끼날 같은 게 얼굴만하니 좀 많이 무서웠어요. 런던 탑의 화이트 타워에도 카피가 한 점 있습니다. 작은 사이즈로. (왠지 그걸 보니 '니네 엄마 어디갔니?'라는 한물간 개그가 생각나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