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회화의 거장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작품 ‘버지널 앞에 앉은 여인’이 7일 오후(현지시각)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3000만달러(약 345억원)에 팔렸다.
베르메르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1665~1666) 등으로 유명한 화가. 이번 경매는 낙찰가도 높았지만 그림이 10년 넘게 진행된 분석 작업 끝에 최근 위작이라는 오명을 벗으면서 베르메르의 36번째 공식 작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워낙 수가 적어 그의 그림이 경매에 나온 것은 이번이 80여년 만에 처음이기도 하다.
‘36번째 베르메르 작품’으로 불린 ‘버지널…’은 건반악기의 일종인 ‘버지널’(virginals) 앞에 노란 숄을 두른 젊은 여성이 앉아있는 장면이다. 뺨과 콧잔등, 진주 목걸이에 떨어지는 빛의 처리와 정밀한 묘사는 절제되고 정제된 아름다움을 펼치는 베르메르 특유의 스타일이다.
가로 20㎝·세로 25㎝짜리 이 작은 작품은 오명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림은 지난 1945년 한 화상이 히틀러의 오른팔 괴링에게 네덜란드의 국보인 베르메르 작품을 넘긴 혐의로 기소되자, ‘진짜 대신 가짜를 만들어 팔았다’고 주장하면서 덩달아 위작 누명을 쓰게 됐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이후 ‘버지널…’을 둘러싼 가짜냐 진짜냐 논쟁이 이어졌고 당시 그림 주인이던 벨기에의 프레데릭 롤링 남작은 1993년 소더비사에 분석을 맡겼다.
이후 11년간 과학기술을 동원한 물감과 캔버스 분석 작업이 진행됐고 조사팀은 ‘버지널…’의 재료 성분이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베르메르의 걸작 ‘레이스 짜는 여인’과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대 어떤 화가보다 울트라마린 블루 컬러를 특히 많이 사용한 작가의 제작 방식 등도 참조됐다. ‘노란 숄만은 베르메르가 아닌 다른 화가가 덧칠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서구 미술계는 전반적으로 ‘버지널…’은 진품이라는 쪽으로 기운 상태다.
레이스 짜는 여인
이날 경매에서 낙찰가가 추정가 550만달러를 뛰어넘어 3000만달러까지 치솟은 것은 ‘버지널…’이 베르메르 그림 중 공공 미술관에 들어가지 않고 아직까지 민간인의 손에 남아있는 마지막 두 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가지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 결국 베르메르의 작품을 다시는 미술시장에서 볼 수 없을지 모르는 셈이다.
작품을 누가 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경매에 앞서 “개인 컬렉터뿐 아니라 베르메르를 소장하지 못한 게티 등 주요 미술관이나 베르메르의 고향인 네덜란드 델프트시(市) 등이 그림을 노릴 것”이라고 전했다. (정재연기자 whauden@chosun.com 2004.07.08 17: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