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nake Charmer,1907,Oil on canvas,169 x 189.5 cm,Musee d'Orsay, Paris

   앙리 루소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뱀을 부리는 여인’입니다. 광고에 비교적 자주 사용되는 그림이기도 하지요. 이국적 분위기와 원시림이 등장하기 때문에 주로 환경단체나 여행사 등에서 많이 가져다 쓴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한 아파트 업체가 자사 건설 아파트가 환경 친화적 아파트임을 알리기 위해 이 그림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울창한 열대림에서 한 여인이 뱀을 목에 두른 채 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때는 낮이 아니라 밝은 달이 뜬 한밤이고요. 뱀들은 여인의 목만이 아니라 나무에도 걸려 있고 풀밭 위에도 있습니다다. 여인이 불고 있는 것은 마술의 피리처럼 느껴집니다.  뱀들은 피리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을 뿐,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고요함, 이국적 풍경과 시원으로 돌아간 것 같은 원시성, 그리고 무엇보다 낮과 밤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몽환적 분위기 등은 고갱, 아폴리네르, 피카소 등이 이 그림에 열광했다는 이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피카소는 1908년 몽마르트르에 있는 자신의 아틀리에 ‘세탁선’에서 앙리 루소를 위한 주연을 베풀기도 했는데요. 이 이야기는 조금 후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그림은 루소 자신의 상상력에서부터 출발해 그려진 그림은 아니라고 합니다. 친구이자 화가였던 들로네가, 루소를 도와주기 위해 마침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의 여행담을 그려달라고 부탁함으로써 탄생하게 된 것이죠. 한 번도 프랑스 땅을 벗어나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는 루소는, 주문을 받자 파리 시내의 식물원으로 달려가 열대 식물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루소는 유사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죠.

  그가 그린 상상의 열대 풍경 속에는 무의식적인 욕망이 항상 꿈틀대고 있어, 그림을 보는 이들을 현실과 환상의 경계지대로 인도합니다. 이런 이유로 루소는 초현실주의자, 특히 앙드레 브르통으로부터 찬사를 들었는데, 자크 두세라는 수집가에게 루소의 ‘뱀을 부리는 여인’을 구입하라고 종용한 이도 앙드레 브르통이었다고 합니다.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들로네는 그림을 팔 때, 작품을 구입하는 자크 두세는 사후에 이 작품을 루브르에 기증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지요. 자크 두세는 이 조건을 수락했고 약속대로 이 작품은 그의 사후에 국가에 기증되었습니다.

 

 



The Sleeping Gypsy,
1897,Oil on canvas,51" x 6'7" (129.5 x 200.7 cm),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평온한 수면의 한가운데 있는 짚시 여인,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사자가 어슬렁거립니다. 이글거리는 사자의 눈과, 앞으로 다가올 그 무언가는 전혀 모르는 채 편안하기 그지 없는 집시의 얼굴의 극명한 대조... 어쩌면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는지...  생각해봅니다.

 


War, or Discord on Horseback
1894,Oil on canvas,114 x 195 cm,Musee d'Orsay, Paris

   1892년 파리의 그랑파레에서 르 살롱전이 개최됩니다. 루소는 이 해의 특별 전시에 초대됩니다. 루소의 초기 작품에세 만년에 이르기까지의 유채화를 비롯한 연필 스케치와, 루소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참고로 보았다는 사진과 그림이 나란히 진열되고, 그 외에 루소에 관해서 쓴 여러 권의 책과 많은 참고 자료들이 큰 방을 꽉 메꿀 정도였습니다. 작품도 연대 별로 진열되어 루소의 발전 과정과 회화 세계를 알아보는데 도움이 되었죠.

   말하자면 그림 공부 안한 일반 사람들이 꼼꼼히 그려 놓은 서투른 유형의 그림을 보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으나, 잠시 후 이 서투르고 소박한 표현에 오히려 높은 기품과 신비로운 영적 세계가 화면 저류에서 흐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 사이에 일어난 기존 가치관의 전도와 새 가치 기준, 새 질서에의 욕구 의지는 급속한 템포로 예술 분야의 변혁을 촉구했고, 특히 유럽의 정신 세계는 세기말적인 이즘의 과잉, 사상의 혼돈이란 격랑에 휘말려 들었습니다. 회화 사상 이 때처럼 변화가 심한 때는 일찌기 없었죠. 좀 심하게 표현하면, 그들은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것, 종전에 보지 못한 양식이라면 우선 그것에 가치를 붙여 놓고 보게 된 세상으로 변하였던 것입니다.

 


The Boat in the Storm,after 1896,Oil on canvas,54 x 65 cm,Musee de l'Orangerie, Paris

 

  물론 루소가 이러한 시대적 상황 의식을 적재하여 일부러 치졸하고 어린이스러운 독창적인 새 양식을 창출한 것은 아니겠지만, 전 회화사를 통해 루소의 그림과 같은 양식은 세상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으며 루소 이후에도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루소가 만들어 낸 포름은 형태가 극명하게 보이는 사실주의적인 그림 같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의 현존 형태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것도 특징입니다.

   우거진 나뭇잎이나 밀생하는 풀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커다란 잎사귀 몇 개를 그려 우거진 나무로 표현하였고 풀의 모양에 있어서도 실제의 형태와 전혀 다른 것으로 그렸습니다. 열대의 밀림에 신비롭게 된 꽃도 루소 자신이 만든 창조물이며, 거기에 배치되는 하나하나의 장면도 루소의 꿈 속 같은 공상 속에서 만들어 낸 것이지요.  어느 미술 사학자가 미국의 저명한 식물학자에게 루소가 그린 열대 식물의 진부 감정을 위촉해 본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실존하는 식물과 꼭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회답이 돌아왔습니다. 루소는 파리 식물원에 가끔 들려 낙엽 등을 스크랩하였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자신 나름의 열대림을 창작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대목입니다.  

   동부아프리카 케냐에서  코끼리, 기린, 사자, 표범, 원숭이, 들소, 얼룩말, 사슴 종류 등은 대부분이 건조한 초원에서 살고 있었는데 반하여, 정글 지대에는 파충류와 곤충, 조류의 일부만이 살고 있죠. 그러나, 루소가 그린 밀림 지대에는 사자가 살고 있고 미녀가 숲속에서 나체로 드러누워 있는 등(dream), 밀림의 생태적인 현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머리에 떠오른 상상 속의 열대를 창착했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루소의 원시림은 파리 근교를 그린 풍경화처럼 잘 다듬어지고 평화로운 분위기만은 아닙니다. 수목들의 잎이나 가지는 그 형태가 아주 분명하고 질서있게, 그리고 또렷또렷하게 그려졌으나, 복잡하게 얽힌 나뭇잎들의 곡선은 그의 가슴 속 깊이 숨겨져 있는 섬세하고 다양한 내면 세계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순진무구한 정신으로 포착한 소박한 영상이 조형질서에 따라 감동적으로 나타나 있어, 현대 원시예술의 아버지라 불릴 수 있는 하나의 전형을 엿볼 수 있습니다.  


Portrait of a Woman
c. 1895-97, Oil on canvas, 198 x 115 cm, Musee d'Orsay, Paris

   루소는 1886년 이래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오면서도 전혀 주목을 끌지 못합니다. 그런 루소를 피카소와 그의 친구들이 발굴해 냅니다. 1908년 피카소는 당시 젊은 화가들이 모여 살던 유명한 바드라 아파트에서 "루소의 밤"을 개최합니다. 그의 인간됨과 예술을 찬양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멸시와 모멸을 받던 루소가 일약 파리 화단의 기린아로 알려지는 계기로 발전합니다.

  피카소가 "루소의 밤"을 열게 된 경위는 퍽 재미있습니다. 어느 날 피카소는 그가 잘 다니는 골동품 가게에서 루소가 그린 <부인상>을 5프랑에 삽니다. 피카소는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그의 화실에서 조촐한 자축 파티를 마련했습니다. 초대된 사람은 우선 세탁선 옆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 피카소의 화실로 갔습니다.

   일행은 브라크, 마리로랑상, 아폴리네르, 막스 자곱, 가도루드, 스타인 등 젊은 예술가 외에 뉴욕, 함부르크,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3명의 수집가인데, 이들은 피카소의 화실에 도착하자 긴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물론 벽에는 피카소가 입수한 <부인상>이 걸려 있었겠지요. 피카소는 루소를 위한 옥좌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잠시 후 모자를 쓰고 왼손에 스텍 단장, 오른손에 바이올린을 든 루소가 들어와 앉고 자리가 무르익자 루소는 아이들용과 같은 바이올린으로 자작곡을 연주합니다.


Scout Attacked by a Tiger (Eclaireur attaque par un tigre),1904,Oil on canvas,47 3/8 x 63 3/4 in. (120.5 x 162 cm),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La Tour Eiffel (The Eiffel Tower),c. 1898,Oil on canvas,20 5/8 x 30 3/8 in. Museum of Fine Arts, Houston

  춤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자작곡 (클레망스=죽은 첫 부인의 이름)을 연주했으며, 아폴리네르가 루소를 위한 즉흥시를 지어 바쳤는데, 장내는 그야말로 루소의 찬가로 가득찼습니다. 아마 이 밤은 가난하고 경멸받던 삼류화가 루소가 생애를 통해 받아 보는 최초의 축복이었을 겁니다. 이러한 전설적인 모임은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는 루소의 평소의 인성과 그의 재능의 우월함을 입증해 주는 결정적인 자료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The Flamingoes,1907,Oil on canvas,114 x 163.3 cm,Private collection

 


Liberty Inviting Artists to Take Part in the 22nd Exhibition of the Societe des Artistes Independants, 1905-6, Oil on canvas, 175 x 118 cm,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Tokyo

 

  오늘날 루소를 환상적인 천재로, 또는 입체파의 선구자적인 존재로 기록하는 이유는 그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환상과 전설, 그리고 단순화된 형태와 기하학적인 구성에 연유한 것입니다. 루소는 전위적인 젊은 화가들, 또는 시인들에게 주목을 받은데 반해 당시 화상이나 수집가들은 그의 작품에 대하여 멸시에 가까운 냉대를 보였고, 만년에 이르러 그것도 짧은 기간 동안 관심을 받습니다.

  화상 보오가르, 앳데겐이 루소에게 접근한 화상이며, 뷜헤룸 우데가 1909년 루소의 개인전을 개최하여 주었는데 이 개인전은 루소가 생전 처음으로 연 개인전이고 그가 죽기 1년전의 일이었습니다. 그가 어떠한 계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1880년경, 이미 동화적인 정취가 풍기는 꽃이나 나무의 화면에서 그의 독자적인 세계, 즉 꿈에서 볼 수 잇는 환상과 전설과 원시성이 서식하는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The Representatives of Foreign Powers Coming to Greet the Republic as a Sign of Peace , 1907, Oil on canvas, 130 x 161 cm, Musee Picasso, Paris

 

   루소는 1886년에야 비로소 앙데팡당전에 <사육제의 밤>등을 출품, 처음으로 화가로서의 공식 활동을 개시하게 됩니다. 루소의 회화 언어는 그 시대의 시대 감각의 과녁을 맞춘 위대한 환상의 화살이고, 그의 발언은 고향을 찾는 실향민들의 전설적인 외침이며, 그의 표현 양식은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처럼 이미지의 밀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는 사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Surprise! 1891,Oil on canvas,51 1/8 x 63 3/4 in. (130 x 162 cm),National Gallery, London

 

   만년에 이르러 루소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54세된 과부에게 열렬한 구애를 하였으나 매정하게 거절당합니다. 이 순정파 화가는, 그럼에도 그 매정한 여인을 잊지 못하고 비오는 날 역으로 마중나갔다가 비를 맞은 게 화근이 되어 병상에 눕게 되고 급성 폐렴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파리의 자선병원에서 눈을 감습니다. 1910년 9월20일, 향년 66세였습니다. 유체는 파유 공동묘지에 가매장되었다가 그 후 고향인 라바르로 옮겨졌는데,  그의 묘비에는 생전에 그를 아끼던 시인이자 미술 평론가인 아폴리네르의 백묵으로 쓴 시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아드위가는 평화롭게 잠자며

아름다운 꿈을 즐긴다.

한사람의 친절한  뱀마술사가

갈대피리 부는 소리를 들으면서....

냇물위에, 나무 잎새위에

은색의 달빛이 빛난다,

사나운 뱀들은 밝고

황홀한 가락에 귀를 기울인다.

-아폴리네르-

 

출처] http://www.breaknews.com/new/sub_read.html?uid=7844&section=section4&sec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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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06-22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
3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최대의 찬사를 받았을텐데요.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들이 참 많지요??

panda78 2004-06-2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역시 제일 안스러운 사람은 고흐지요..

반딧불,, 2004-06-2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져요.마져..
고흐...볼수록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