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그로 [ Bouguereau, William-Adolphe , 1825.11.30.~1905.8.19 ]

   1825년 라 로셸(La Rochelle)에서 출생했다. 1843년부터 1850년까지 에콜 데 보자르에서 공부했으며 피코(Picot)의 문하에서 작업했다. 50년 동안 매년 파리 살롱전에 작품을 꾸준히 출품했다.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은 완성하지 않은 스케치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여 살롱에 전시되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그의 작품은 새로운 조명을 받으며, 1984년 파리몬트리올 등지에서 주요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대부분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그도 형식과 기법면에서 매우 엄격하고 신중했으며 고전주의적인 조각과 회화를 깊이 있게 탐구했다. 또한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완전하게 익힌 다음에야 작업에 착수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성 세실리아》(순교자의 승리, 1855), 《필로메나와 프록네》(1861), 《바커스의 청년시대》(1885), 《산의 님프들》(1902) 등이 있다.

에콜 데 보자르

   국립고등미술학교의 약칭이다. 1671년 루이 14세의 대신이었던 장 밥티스트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에 의해 처음에는 왕립건축학교로 파리에 설립되었다가, 1793년 왕립 회화조각 학교와 합병되었다. 이 학교에서는 시험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에게 소묘·회화·조각·건축·판화 등을 교육하는데, 1968년 이래 건축 과목은 폐지되었다. 보자르(Beaux-Arts)의 건축설계는 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해마다 각종 콩쿠르를 개최하여 상을 수여하는데, 19세기에는 예술가에게 로마 유학의 기회가 주어졌던 로마대상으로 특히 유명하다.

이상은 네이버 백과 사전 검색 결과였습니다.

 

  19세기 아카데미즘의 상징인 부그로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은  밑그림에 불과하다며 전시 자체를 거부했다고 한다. 야수파의 마티스도 한때 부그로의 지도를 받다가  그의 아카데미즘에 질려 독립했다.

  그러나, 아카데미즘 타도를 외치며 투쟁했던 화가들이 바로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미술사를 장식하게 되면서, 부그로는 비록 생전에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지만, 사후에는 변방의 시시한 화가로 치부당하게 되고 말았다. 

  고흐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극과 극이라 하겠다.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 수 있었고 개인전 한번 열지 못한 반면, 부그로는 생존당시에는 화가로서 큰 명성을 누리며 무려 50회 이상이나 파리 살롱전에 당선되었다. 그렇지만 20세기와서 그들의 관계는 완전 역전되어 고흐가 최고의 인기를 누린 데 반해, 부그로는 빠르게 잊혀져 갔다. 80년대 초반에 미술사를 전공한 한 사람은, 부그로의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이후 부그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그의 위상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부그로의 저 엄격한 기법과 탄탄한 숙련성, 그리고 다루는 주제에 대한 완벽한 검증의식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살바도르 달리는 부그로가 자신보다 그림을 천 배나 더 잘 그린다고 말했다.  마이클 잭슨이 부그로의 그림을 두 점 구입하고는 아직 돈을 지불하지 못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한 일도 있다. 

이제 부그로의 그림들을 보시죠.  ^^

 

 

비너스의 탄생


  새침한 얼굴로 자신의 미를 과시하는  아프로디테(비너스)네요. 한쪽 무릎을 구부린 콘트라포스토 자세는 다른 그림들과 비슷하지만,  허리의 꺾인 각도와, 가슴과 음부를 가리지 않고 한껏 드러내며 머리칼을 휘젓고 있는 것은 독특하군요. 

   푸토들이 떼를 지어 붕붕 날고, 바다의 님프들은 약간은 질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듯.

putto(pl. putti) 푸토 :  르네상스 기 장식 조각으  린이 . 대개 비너스와 날개 달린 소년 하나만 있을 때는 큐피드라고 보지만, 이렇게 떼로 나올 때는 그냥 푸토라고 하더군요.

   '아프로디테'는 거품을 뜻하는  '아프로스 aphros'에서 나온 이름이다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의 거세한 남근을 멀리 던져 버리자, 그것은 넓은 대양의 해면 위를 둥둥 떠내려 가면서 거품을 일으키고, 그 거품과 남근으로부터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는데, 그곳은 바로 그리스의 키테라Cythera라는 섬(와토의 걸작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의 바로 그 섬) 주변이었다. 그 곳으로부터 서풍에 실려 키프로스 섬으로 떠내려간 그녀는, 그 곳에서 4계절의 여신 호라이들의 영접을 받고, 궁극적으로는 신들이 모여 있는 올림푸스 산으로 올라 가게 되었다.

보티첼리산드로 보티첼리(1444∼1510)의 비너스의 탄생


  사랑과 미의 여신인 비너스는 푸른 바다 거품으로부터 태어나 진주 조개를 타고 바다 위에 서 있다. 그림 왼쪽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가 있는데, 제피로스는 비너스를 향해 바람을 일으켜(볼이 빵빵하죠) 그녀를 해안으로 이끌고 있다. 비너스의 오른쪽에 펼쳐진 키프로스 섬의 해안에서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겉옷을 들고 비너스를 맞이하고 있다.

  보티첼리는, 꿈 속에 잠겨 있다가 방금 깨어난 듯한 표정과 나체를 감추려는 은근한 모습 (베누스 푸디카, 즉 정숙한 비너스의 전형적인 자세) 등으로, 신비로운 미의 여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수줍어하고 있는 비너스의 신체는 10등신(ㅡ.,ㅡ)이며, 모델은 당시 피렌체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꼽던 시모네타(폐병 환자로 요절함)로 전해지고 있다.

 

알렉산드르 카바넬 - 비너스의 탄생, 1863


   마네의 올랭피아가 살롱전에서 낙선하고 큰 비난을 받고 있을 때, 살롱전에 입상, 큰 호평을 받고 나폴레옹 3세가 친히 구입해 간 작품.  이게 더 야하지 않나요?

부그로의 그림과 같이, 푸토들(푸티)이 떼로 날면서 소라 고둥을 불고 비너스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누워 있는 비너스는 드물죠.

부셰 - 비너스의 탄생


 

비너스 조각들도 함께 감상을.. 


카노바

 

카피톨리노(전형적인 베누스 푸디카지요? 콘트라포스토의 자세도. ) 



기원전 100년 정도로 추정. 비너스가 목욕하고 있는 것을 훔쳐 보려고 한 판을 비너스가 신발짝으로 때리려고 하고 있네요..   ^^

 

다음 그림은  <프시케의 납치>입니다. 워터하우스 프시케 편에서 보신 그림이죠?


프시케와 에로스(큐피드) 그림 한 점 더


이들의 첫만남은 훨씬 예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듯한 그림도 있네요. <첫키스>


나비 날개를 달고 있는 어린 프시케에게 키스하고 있는, 어린 큐피드. 그러니까 얘들이 커서 저렇게 된다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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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 2004-06-11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그림, 너무 맘에 드는 군요. 나비날개를 보니, 프쉬케 맞군요.^^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 너무 좋아요. 당근 업어갑니다.*^0^*

로렌초의시종 2004-06-1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그로라...... 매끈하죠 티 한점없이. 가끔 보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아요~~~ 정말이지 물리적, 감정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미가 무엇인지 절실히 느낄 수 있고 말이죠. 하지만 이주헌씨가 말했듯이 아마 속은 텅비어 있는 그냥 주물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봐요^^ 뭐 앵그르도 그렇다고 하지만 그래도 앵그르는 조금은 덜 한 것 같아서 더 자주보는 것 같아요. 부그로보다는 말이죠.

panda78 2004-06-11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그로의 수많은 그림들을 주욱- 보면서 다시 느꼈지만, 계속 보면 지겨워지죠.
그렇지만 가끔 반짝- 하는 그림들도 있지 않던가요? 달콤- 한 것들이 땡길 때도 있고.. ^^
저는 오히려 앵그르가 너무 도자기 같아서 좀 그렇더라구요. 소재마저 귀족적인...
이주헌 씨 어머니는 무아테시에 부인 그림이 최고라고 생각했다죠? ^^;;
부그로는 별로 사랑을 받지 못하니 2회로 끝내고, 다른 화가를 찾아봐야겠어요. (사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적어서 올릴 것도 별로 없구... ^^;;)
누구를 하는 것이 좋을까... 혼자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지요.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