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을 잃어 버린 아이/원제 A Child Called ‘IT’,
데이브 펠처 지음, 신현승 옮김
생각의나무, 188쪽, 8000원
로스트 보이/원제 The Lost Boy,
데이브 펠처 지음, 신현승 옮김
생각의나무, 334쪽, 9500원
가정이 얼마나 끔찍한 지옥이 될 수 있는지를 증언하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갈피마다 넘쳐나는 참혹한 아동 학대의 실상과 저항할 수 없는 절대 약자의 눈물겨운 투쟁의 기록들은 순식간에 읽혔는데, 읽고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우선 나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이 땅의 모든 아이들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다.
새싹처럼 여리고 착한 이 어린 생명들에게 매질을 하고, 성폭행을 하고, 가두고, 살해까지 하는 어른들 중 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부끄러워 낯이 뜨겁다.
아동 학대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주제다. 하지만 300주 동안이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희대의 ‘괴문서’, 『이름을 잃어버린 아이』나 『로스트 보이』에서 그려지는 정도의 아동 학대라면,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가히 충격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도대체 자신이 직접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열흘씩 굶기고, 뜨거운 난로 위에 맨발로 올려 세우고, 암모니아 가스를 가득 채운 욕실에 가두고, 팔이 부러질 정도로 매질을 하는 엄마가 세상에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자기 아이를 미치광이로 만들어 정신병원에 가두는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가 버젓이 나돌아다니는 이 세상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야기는 시종 죽음만도 못한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담담하면서도 끔찍할 만큼 리얼하게 보여준다. 단 하루도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단 하루도 마음 편히 먹고 자고 놀아보지 못한, 읽는 사람조차 믿어지지 않는 주인공의 하루하루가 거짓없이 진술된다. 끔찍한 학대의 과정도 충격적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마지막 꿈을 잃지 않고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나가는 주인공의 맹목적인 용기와 삶에 대한 애정, 막연한 모성에 대한 동경에는 그저 가슴이 먹먹해질 뿐이다. 우리 어른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12세 이전에 친엄마에게 당한 학대 이야기를 주로 적은 『이름을 잃어버린 아이』와 그 이후 소년원과 양부모들을 전전하며 겪은 또다른 학대와 유기에 대한 체험을 적은 『로스트 보이』를 읽고 난 한밤중, 나는 어린 시절 들었던 몇 가지 해괴하고 소름 끼치는 이야기들 가운데 아동 학대에 관한 아주 징그럽고 끔찍한 이야기 한 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미나리 장수 할멈의 거머리 이야기’로, 실화였는지 누가 꾸며낸 얘기였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산골 마을에서 그 이야기는 진짜 일어났던 일처럼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 즈음 우리 동네에는 이미 신통력을 잃어버려 더는 점을 치지 못하는 굿당 할멈이 미나리를 팔아 연명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점을 치고 굿을 하던 할멈의 신통력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과 일종의 외경심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특히 아이들은 여전히 할멈의 깊고 차가운 눈매를 마주칠 때마다 서늘한 공포를 느끼곤 했다.
이야기는 이 굿쟁이 할멈이 자신의 퇴화한 신통력을 복원하기 위해 이웃 마을에서 어린아이 하나를 몰래 업어왔다는 데서 시작한다. 그 아이를 굿당 구석에 놓인 작은 독 속에 가두어두고 있다는 소문이 뒤를 이었는데, 할멈은 미나리를 다듬을 때마다 미나리 대궁에 붙어 있는 거머리를 조롱박에 모아 담았다가, 아이가 들어있는 독 속에 하나하나 던져 넣는다는 것이었다. 거머리에 시달린 아이가 두 눈 가득 시퍼런 불을 밝히며 독기를 내뿜을 때 할멈의 신기가 되살아난다고 아이들은 말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야기의 대단원인데, 아이를 찾던 아버지가 마침내 굿당에 뛰어들어 구석에 놓인 독을 깨뜨리고 아이를 안으려는 찰나, 둥글게 부풀어 있던 아이의 배가 퍽 하고 터지면서 한 덩이 거머리 떼가 쏟아져 내렸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이 평화와 안온의 시절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세상에 대한 공포를 감수하면서 힘겹게 자라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볼이 통통하고 발그레한 이유를 아는가? 이전에 소설가 김영하로부터 그 이유를 들었다. 아동 유기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던 시절, 야위고 핏기 없는 볼을 가진 아이에 비해 그러한 아이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을 가능성이 작았다고 한다. 아이는 자신의 생존능력을 과시하는 상징으로 볼을 발그레하고 통통하게 진화시켰다는 설명이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가출한 아내 대신 초등학생 어린 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아빠와, 그 어린아이에게 아빠의 술시중을 들라고 닦달한 할머니가 고발됐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젊은 계모는 다섯살짜리 여아의 목을 개줄로 묶어 베란다에서 ‘길렀다’고 한다. 그 20대 계모는 손발과 가재도구로 아이의 온몸을 두들겨 팼을 뿐만 아니라 다리미로 등과 배를 지지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다섯살짜리 여아의 젖꼭지를 가위로 싹뚝 잘라버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인간은 아직 아동 유기와 아동 학대라는 야만의 폭력성을 핏속에 지니고 있는 원시인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자신 심각한 아동 학대의 희생자였던 책의 저자 데이브 펠처는 이러한 인간의 야만성에 대한 고발의 한 방법으로 자신이 겪은 아동 학대의 내막을 책으로 펴냈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 끔찍한 학대의 내용보다 그 학대를 뚫고 살아남아 성인이 된 저자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탈출 과정이 더 믿기지 않을뿐더러, 더 감동적으로 읽힌다.
5월은 갔지만, 우리의 아이들이 아이로서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진정한 5월은 아직 온 바가 없다.
심상대(소설가)
중앙일보 6월 5일
예전에 데이빗 펠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친엄마가 자기 아이들 중 유독 한 아이만 지독하게 학대하는 이야기를 읽고 얼마나 경악했던가.
현실은 소설보다 잔인했다. 중앙일보 북리뷰 커버스토리 제목은 <행복한 어린 시절?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어>다. 가슴아픈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