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작품선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진웅기.김진욱 옮김 / 범우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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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다." (<라쇼몽>) 이러한 서두는 의미심장하다. '어느 날'이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일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기이한 하루일 수도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기에 독자는 호기심을 가지며 계속해서 전개될 이야기에 주목하게 된다. 이제 하인배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홀로 라쇼몽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화자는 잠시 교토(京都)의 현실을 말한다. 교토에는 자연재해가 끊이질 않는다. 마을은 말할 수 없이 황폐해 졌으며 라쇼몽도 역시 이곳 저곳에 흠이 갔다. 자연의 재앙에 따른 인간의 황폐함은 하인을 비롯한 소설의 인물들 역시 그 내면이 황폐해져 있으리라 생각케 한다. 이어진 까마귀의 묘사는 불길한 예감을 더욱 일으킨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그 많던 까마귀가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늘상 보이던 그 무엇이 보이질 않을 때 사람들은 의문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 독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불길한 예감을 더욱 갖게 된다. 
  
  화자는 다시 하인을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대목이다. "작자는 위에서 '사나이가 비가 멎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썼다.······그렇기 때문에 '사나이가 비 멎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것보다는 '비에 쫓긴 사나이가 갈 곳이 없어 방황하고 있었다'라고 하는 편이 적당할 것이다." 화자는 하인과 친하지 않은가 보다. 하인의 심리를 화자는 잘 알지 못한다. 화자는 끊임없이 인물에 대한 의견을 정정하거나 덧붙인다. 독자는 의아하다. 화자의 시야에 의해 인물들과 사건을 볼 수밖에 없는 독자들로서는 이제 화자가 별로 미덥지 못하다. 나는 이것이 러시아 형식주의에서 말하는 '낯설게 하기'가 아닌가 한다. 화자도 잘 모르는 하인을 독자인 우리는 더욱 알 수 없다. 하인은 독자에게 낯설다. 그의 심리가 어떤지, 어떤 행동을 벌일 지 우리는 예측하기가 힘들다. 

  낯설게 하기는 소설의 시종 계속된다. "다락 위에서 비치는 불빛이 희미하게 이 사나이의 오른편 볼을 비추고 있다. 짧은 수염 속에 벌겋게 곪은 여드름이 드러나 보였다." 소설의 중간에서도 화자는 하인을 처음 본 듯이 이렇게 그의 외양을 묘사한다. 소설의 초반부에 이미 화자는 하인의 외양을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한 바 있다. 또한 "한 사나이가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여 가며 다락 위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라 말하며 마치 비로소 처음 등장하는 인물인 듯 묘사한다. 소설의 전체를 놓고 볼 때 낯설게 하기는 성공을 거둔 듯 싶다. 하인의 돌발적 행동은 독자를 놀래키기에 충분하다. 
  
  "비는 라쇼몽을 둘러싸고 쏴 하는 소리를 휘몰아온다. 하늘은 저녁 어스름이 짙어지면서 점점 낮아진다. 위를 쳐다보면 문의 지붕 비스듬히 내민 기와 끝이 뿌옇고 검은 구름을 무겁게 떠받치고 있었다." 하인을 향했던 시선은 차츰 하늘과 라쇼몽의 지붕, 그리고 기와 끝으로 이동해간다. '검은 구름'과 하인의 심리는 교차한다. 화자는 풍경을 살피다가 하인으로 시선을 돌린다. 둘은 별 연관이 없는 듯 하나 사실은 살핀 바처럼 매우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화자의 시점은 인물과 배경을 번갈아가며 향하고 있다. 
  
  하인의 심리를 확인한 화자는 하인의 결단을 말한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선 수단을 가릴 겨를이 없다. 하인의 심리는 침침한 구름, 시야를 가리는 비와 같이 명료하지가 않다. 그는 끝없이 고민한다. 그는 감정적이다. 
  
  주인공 외양의 특징 중 하나가 여드름 있는 얼굴이다. 홍안(紅顔)의 사나이는 아직은 감정적인 청년이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할 지 독자인 우리는 긴장하며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의 여드름 난 얼굴을 화자가 계속해서 그려내는 것은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물론 이 사나이는 아까 전까지 자기가 도둑이 될 생각이었던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혈기방장한 나이이기에 그가 어떤 선택을 하며 행동을 할 지 우린 긴장하며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하인은 게비이시청(檢非違使廳)에서 일하다가 도망 나온다. 그가 일하던 곳은 우리말로 하면 포도청 정도가 될 것 같다. 포도청이란 무엇인가? 죄를 벌로 징치(懲治)하는 곳이 아닌가? 그가 이 곳에서 도망 나온 이유를 우리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선과 악이 가장 극명히 대립하는 공간에서 그가 도망한 것은 그의 행로를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은 "하인 차림의 사나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끝을 맺는다. 미정형-'어느 날'-으로 시작된 소설은 종결 역시도 모호하며 허무하다. 
  
  화자가 주인공을 부르는 칭호는 다양하다. 하인, 사나이, 한 사나이 등 화자는 여러 가지로 주인공을 부르고 있다. 칭호가 바뀜에 따라 주인공은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외양의 묘사와 같이 반복되기도 하지만 심리면에서는 새로운 면모가 밝혀진다. 이는 주인공이 쉽게 정형화 할 수 없는 근대인의 표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규정 짓는 그 무엇이 사라진 근대 공간 속에서 인간은 이제 어디로 갈 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이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이러한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소설의 제목인 라쇼몽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삶(生)이 그물처럼 펼쳐지는(羅) 곳(門)이란 뜻이 아닐까? 이 곳에서의 삶은 인간의 원초적 생이다. 선악의 구분이 없으며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는 곳이다.  

  

          芥川龍之介(1892-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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