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당시 활동하던 하이텔의 모 작은 모임에 올렸던 잡글을 옛 글의 보관 차원에서 약간 수정하여 올림
요사이 부쩍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어머니나 형, 누나 등 식구들이 모이면 우리 어릴적 이야기가 주요 화재가 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추억을 먹고사나 보다.
1. 나의 살던 고향
내가 태어난 곳은 전남 순천시이다. 지도를 보면 전라남도의 동남쪽, 여수반도의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다. 6.25 전쟁전에 여수.순천 사건이 있었으며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광주로 이사오기전 5살때까지 나는 순천에서 자랐다.
나는 자잘한 일들에 대한 기억력이 좋은 편으로 아주 어렸을적 지냈을 뿐이지만 제법 많은 고향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
1970년대 초반 그곳은 행정구역상 '市'였지만 시골이나 마찬가지였다.
순천을 떠올릴 때면 집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곳이 있다.
집앞에는 제법 큰 개울이 흐르고 있었으며 시멘트로 된 다리가 있었다.
어린 나의 눈에는 무척 큰 개천과 다리로 기억되지만 다리에 난간이 없었던 점이나 누나가 다리에서 떨어졌으나 이마만 약간 깨진 일등을 미루어 볼때 그다지 큰 하천도, 높은 다리도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물이 맑아서 동네 아이들이 물에 들어가 물장구도 치고 송사리나 피래미도 잡으며 놀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너무 어렸었는지 냇가에서 헤엄을 치며 놀았던 기억은 없다.
우리집은 뒷마당이 꽤 넓었으며 뒷마당 맨 구석에 화장실(변소라 함이 옳을듯)이 있었고 마당을 빙둘러 화단이 있었다.
형과 함께 마당에서 공을 차거나 세발자전거를 타기도 했으며 안방인지 건넌방인지 기억은 확실치 않으나 창문에 매달려 뒷마당을 내다보며 놀았던 기억도 있다.
앞마당은 약간 좁았으나 무화과 나무가 있어서 곧잘 나무에 올라 열매를 따먹기도 했다. 무화과의 그 달콤한 맛은 어린 나에게 큰 유혹이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자주 나무에 올랐었다. 어머니에게 들켜 혼난적도 있지만 할머니께서는 눈감아 주셨던 것 같다.
내가 어느정도 문밖 출입을 할 수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 이미 형과 누나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나에게는 자연스레 친구가 생겼다.
앞집에 사는 남자아이 였는데 나이는 나보다 한살 많았으나 키는 내가 더 컸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사귄 친구였기에 당시에는 눈만 뜨면 친구를 찾곤 했다.
하루는 그 친구와 집앞 길에서 놀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너희 몇 살이냐?"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세살이요" 라고 답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나는 꽤나 오래전 일을 기억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것이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그다지 중요한 일인것도 아닌데 이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도 미스테리이다.)
집 뒷쪽 냇가 옆으로 언덕이 있었고 언덕너머에 군용 비행장이 있었다.
친구와 함께 언덕에 올라가 헬리콥터나 경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당시의 주요한 놀이중 하나였다.
우리집이 있는 골목 끝의 모퉁이에 할아버지가 주인인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고 구멍가게의 좌판에 놓여있던 과자, 풍선 따위를 구경하는 것도 놓칠 수 없는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그 중 나의 눈에 강렬하게 들어왔던 좌판위의 물건이 있다.
바로 그것은 '하얀 밀가루를 발라 놓은 분홍색 막대기 풍선'. 한 뼘 정도의 크기지만 불면 꽤나 커진다.
당시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막대기 풍선에는 밀가루가 발라져 있었다. 아마도 고무로 된 재질이 서로 늘어 붙지 않기 위함이었을 듯. 요새 어린 아이들은 막대기 풍선하면 야구장에서 나눠주거나 판매하는 응원용 막대기 풍선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밀가루가 발라진 막대기 풍선이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은 꽤나 선명했던지 아직도 어렴풋하게 분홍색 막대기 풍선의 영상을 떠올릴 수 있다. 물론 풍선이나 과자를 샀던 기억은 없다. 단지 구경만 하는 것으로도 어린 나에게는 흥미진진한 일이었으니까.
아버지는 당시 전자제품 구입에 굉장히 선구적인 의욕을 갖고 계셨다.
당시 우리집에는 동네에 흔치 않던 TV, 선풍기, 세탁기등이 있었으니 부자도 아닌 우리집으로서는 초호화판 전자제품으로 중무장 한 것이었고 그것도 TV나 선풍기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었던 것이니 동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TV는 긴 다리가 4개 달리고 여닫이 문이 있는 고전 TV의 전형적인 모델이었다.
그 TV를 통해서 나는 우리의 영웅이었던 '타잔'을 만날 수 있었고 영원한 어린이의 친구 '우주소년 아톰'과 '배트맨과 로빈'도 볼 수 있었다.
당시 몇년간은 보자기를 목에 묶고 배트맨 흉내를 내는 아이들(슈퍼맨이 국내에 등장하기 전이다.)과 "아아아~~~아아아아"를 외치고 다니는 작은 타잔들로 동네 골목길들이 시끌벅적 했었다.
어릴적 아이들에겐 학교는 동경의 대상이며 미지의 영역이다.
나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꽤나 학교에 빨리 다니고 싶어서 안달을 했었다.
형과 누나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아마도 할머니를 졸라서 갔던 것 같다.
학교에 가서 봤던 끝없이 넓던 운동장!
우리집 뒷마당 보다도 100배는 넓어보이는 운동장!
운동장 구석에 있던 능목, 구름다리, 시소, 그네.
그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하고있는 학생들.
쉬는시간이면 각 교실에서 떠들석거리며 밖으로 몰려 나오는 아이들.
아, 나도 빨리 학교에 다녔으면!
그러나 광주로 이사를 하게 되는 바람에 나는 결국 그 학교와 운동장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 놓지 못한다.
그리고 몇몇 기억의 단편들을 남기고 '순천시 매곡동' 우리집과 동네는 나의 삶에서 멀어져 갔다.